꽃편지 <좁쌀풀>

자연이 아프면 사람도 아픈 거야

등록 2003.07.21 06:37수정 2003.07.2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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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3년 7월 지리산의 좁쌀풀

2003년 7월 지리산의 좁쌀풀 ⓒ 김해화

a 2003년 7월 지리산의 좁쌀풀

2003년 7월 지리산의 좁쌀풀 ⓒ 김해화

꽃편지에 대한 한 통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1년 넘게 꽃편지를 띄우면서 답장을 바란 적은 없지만
그래도 편지의 답장을 받는 일은 행복합니다.


자연이 아프면 사람도 아픈거야

지난 주말 오후부터 아프기 시작하던 두통이 아직 말끔하지가 않습니다. 지독한 아픔이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손과 발을 담가 발물욕을 하기도 하고, 손끝을 잘근잘근 눌러보기도 했지만 도통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녁이 되면서 체기까지 같이 느껴지면서 뒷 어깨와 머리가 베개를 벨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손과 다리는 기운이 빠지면서 냉기가 돌았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죽염 탄 물을 한 바가지 정도 마시고 구토하고 나서야 잠을 좀 잘 수 있었습니다. 체기가 가시고 나서도 두통은 여전한 게 그 원인만은 아닌 듯했습니다.

그 전날 오후에 목욕 갔다가 한기를 지독히 느끼고 오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 켠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아무래도 낮에 교회 앞에 나무들 틈새에 자라난 산딸기를 따 먹은 게 탈이 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주일 새벽에 기도를 마치고 이것저것 일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 기척이 났습니다. 나가 보았더니 교인 한 분이 열심히 쓰레기를 정리하며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풀약을 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마당이 넓다보니 제 손이 가기 전에 풀들은 웃자라기가 일쑤고 결국 완전히 포기하고 있을 즈음이면 풀깎는 기계를 가지고 와서 깎곤 하던 분인데, 제가 약 치는 걸 싫어하는 걸 아셔서 그런지 약을 치기 전에 제게 미리 귀뜸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집 앞엔 그냥 두세요. 제가 맬께요"라고 했지만 놔두시라고만 하는 겁니다. 옆에서 일을 거들다 안으로 들어와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어쩌나, 그냥 보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나가서 그냥 두시라고 해야 하나.

안되겠다 싶어 제가 고집을 피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고 호미를 들고 나섰습니다.
"이제 방학이니 제가 슬슬 매도 되요. 그냥 두세요"하며 바로 일할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도 완곡하게 저를 말렸습니다.
깨끗하게 약을 치시겠다고, 수고하지 마시라고.
더이상 그분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분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 농사지으며 풀과 싸우며 지냈을 그분께 풀도 사람과 같이 사는 거라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얼마나 바쁘게 사는지 아는데, 그런 분이 시간을 내어서 주일 새벽에 교회에 나와 봉사를 하고 있는데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마음을 접고 들어와서부터 저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비록 웃자라 있긴 했지만 밭에 음식 찌꺼기를 버리러 갈 때마다 내 발 아래 채이던 풀들이 이젠 정겹게까지 느껴졌는데, 빨래 널러 가다가 잠시 봄볕에 피어난 하얀 별꽃과 청초하게 아름다운 꽃마리,

붉은 혀를 내민 것 같은 주름잎을 발견하기도 하고,
풀을 매다가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투명한 메뚜기 새끼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리고 쌉쌀한 입맛을 참으며 키워낸 토종 민들레가 봄에 탐스럽게 피어나곤 했는데, 마당 한 켠엔 우리 아이들이랑 같이 자라다 지난 봄에 생명을 다한 강아지가 땅 속에 편히 잠들어있기도 한 곳인데.

그러나 그 분에게 이런 일들을 일일이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 아이들이 예배를 마치고 마당에 나와 네잎 클로버를 찾는다고 여기저기 풀들을 뜯고 다녔습니다.
전 그런 아이들을 보며 큰 소리로 다그쳐야 했습니다.
당장 가서 손 씻고 오라고. 큰 일 난다고.
아이들이 잔디밭에 철푸덕 앉아서 노는 것도 말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교회 앞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보고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흐드러지게 익어 땅에 툭툭 떨어졌는데, 마치 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했습니다.

주변을 살피며 그곳까지 농약이 묻어나지 않았으려니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몇 개를 따서 입에 넣고 조금은 마음이 께름직하여 몇 개는 따서 물에 씻어 입에 넣었습니다.
시면서 단 맛이 아쉽게 입속으로 넘어갔습니다.

아무래도 이 딸기 때문에 머리가 그렇게 아픈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마치 풀처럼 제 얼굴빛도 검어보이는 게.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주변의 풀들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시커멓게 변하면서.
죽음의 냄새가 교회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풀들이 죽어가는 냄새인지, 농약냄새인지.

이젠 집에 들어서기가 괴롭습니다.
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위안을 삼을 만한 것은,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농약 때문에 아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의 자연이 아프면 사람도 아픈 거야"라고 설명했더니 금세 알아들었습니다.
아이들도 누렇게 죽어가는 풀들을 제 눈으로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였습니다.

이제 방학이 되면 다시 올라오는 풀들을 그 분보다 더 열심히 돌보아야 할까 봅니다. 내년 이른 봄에도 그 하얀 별꽃을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 나목

좁쌀풀

쌍떡잎식물 앵초목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분류 : 앵초과
분포지역 : 한국·일본과 동아시아
서식장소 : 햇볕이 잘 드는 습지
크기 : 높이 40∼80cm

햇볕이 잘 드는 습지에서 자란다.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자라고 원줄기는 높이 40∼80cm로서 윗부분에서 가지가 다소 갈라진다.
잎은 마주달리거나 3∼4개씩 돌려나고 바소꼴 또는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검은 점이 있다.

꽃은 6∼8월에 피고 황색이며 원추꽃차례에 달린다. 꽃이삭에 잔 선모(腺毛)가 있다.
꽃받침조각·꽃잎 및 수술은 5개씩이고 수술대는 밑부분이 서로 붙는다.
열매는 8∼9월에 결실하며 삭과로 둥글고 꽃받침이 남아 있다. 어린 순은 식용한다.

한국·일본과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한다.


<2003년 7월 6일 지리산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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