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편지 <붉은 서나물>

노가다 남편 두고 있는 여자 치고

등록 2003.07.22 08:06수정 2003.07.22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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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7월 모후산의 붉은 서나물
2003년 7월 모후산의 붉은 서나물김해화
2003년 7월 모후산의 붉은 서나물
2003년 7월 모후산의 붉은 서나물김해화



아내가 전화를 받습니다. 멀리 마산에 사는 아내의 친구인 모양입니다. 남편은 공사장을 떠돌다가 이제는 아예 소식도 없고, 어렵게 직장생활을 하며 딸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사람입니다.

서울 유명한 대학교에 진학을 했다는 딸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도 타고, 과외선생 아르바이트로 어머니보다 벌이가 좋다고 자랑을 하다가 아이 셋과 함께 세상을 버린 어미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나도 그렇게 아득했던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라우, 당신 알기나 해요?"

전화를 끊고 아내는 가시 돋힌 한 마디를 던집니다.

"노가다 남편 두고 있는 여자 치고 그런 캄캄한 세상 살아 넘기지 않은 사람 몇이나 되겠수, 그런다고 다 그렇게 죽으믄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 얼마나 되까, 그래도 얼마나 팍팍했으믄 그랬으까-"


아내는 창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 11층 여자도 참 좋았는데, 착하고 이쁘고, 남편 잘 못 만나서-"


IMF가 터지기 직전에 공사장에서 발목이 부서진 나는 IMF를 병원을 드나들며 산재살이로 보냈습니다.

첫 번째 수술 후 여섯 달쯤 입원을 하고 있다가 퇴원을 하고 통원치료를 하던 그때는 IMF의 한파가 극에 달한 때였습니다.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서 아파트 안이 뒤숭숭하던 그날도 아침 먹자마자 병원 다녀와서 집에서 뒤척뒤척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위층에서 세탁기 돌리는 소리며, 청소하는 소리가 하루 종일 끊이지 않았는데, 서민아파트 방음구조가 워낙 허술해서 위층의 은밀한 소리까지 다 들릴 지경이었으니 신경 쓸 일은 아니었고, 저녁무렵의 사고가 아니었으면 그냥 잊혀지고 말았을테지요.

저녁 무렵, 걷기 연습 삼아 시장수레에 물통을 싣고 이웃 동 앞에 있는 지하수에 가서 물을 받아 돌아오다가 아파트 입구에 아이들이 몰려있고 경비아저씨가 허둥지둥 그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별 큰일이야 있을까 하면서 다가갔더니 아파트 입구 옆 화단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파트에서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여자였습니다.

1층에 살다가 바로 쫓아 나온 통장이 살펴보더니 1101호 여자라고 하면서 넋을 잃었습니다.

위층 여자였습니다. 우리는 그때 1001호에 살았거든요. 내가 물을 받고 있는 사이 그 여자는 몸을 날려 세상 밖으로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잔디 위에 인형처럼 누워있던 여자는 곧 119구급차에 실려가고 경찰들이 들이닥치고, 밤새 우리 아파트는 웅성거리고 침울했습니다.

"청소도 깨끗이 해놓고, 빨래도 다 해 널어놓고, 키가 작으니까 의자를 갖다놓고 그 위에서 뛰어내렸어요. 남은 사람들은 어째야쓰까, 어저께 2만원을 빌리러 왔는디 지갑에 돈이 없어서 못 빌려줬어."

경찰들 틈에 끼여 11층에 다녀온 아내는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11층 남자는 구두수선을 했습니다. 짠순이었던 아내는 신발도 헌 신발을 얻어다 신고는 했는데 헌 신발은 자주 고장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헌 신발의 수선을 11층 남자에게 맡겼습니다.

수선이 끝난 신발을 그 여자가 들고 오고는 해서 아내와 그 여자는 잘 알고 지냈습니다. 가끔 돈을 빌려주고, 그 돈은 신발 수선비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지갑에 돈이 없어서 빌려주지 못한 2만원 때문에 아내는 오래오래 가슴 아파 했습니다.

깨끗하게 빨아놓은 아이들의 옷가지가 널려있는 그 집 베란다의 모습, 어제 <오마이뉴스>에서 본 사진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때 창원의 11층 베란다에도 그 여자가 마지막으로 빨아서 널어놓은 옷가지들이 며칠 동안 내걸린 채로였지요.

젊음으로도 노동으로도 사랑으로도 아내와 아이들을 지킬 수 없었던 사내, 이 땅에는 이렇게 힘없는 사내들이 자꾸 늘어갑니다. 실은 나도 힘없는 사내에 지나지 않아서 일터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이 새벽비가 한없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래도, 곧 장마 끝날거라니 좀 더 기다리며 살아남아야지요.

붉은 서나물


쌍떡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분류 : 국화과
원산지 : 미국
분포지역 : 한국·일본
크기 : 높이 1∼2m

미국 원산이며, 경기도 용인시 양지 근처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다.
높이 1∼2m이며 줄이 있고 연약하며 다소 붉은빛이 돈다.
잎은 어긋나고 쇠서나물처럼 생겼으나 털이 없다.
따라서 붉은빛이 도는 쇠서나물이라는 뜻에서 붉은서나물이라고 한다.

꽃은 9∼10월에 피고 두화(頭花)는 산방상으로 배열한다.
포조각은 1줄로 배열하고 줄 모양이며 관모는 흰색이다.

일본에서는 어린 순을 나물로 한다.

<2003년 7월 16일 모후산에서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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