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모정, 안면도에 묻히다

[주장] 어머니를 외치는 동자 스님과 자식을 던지는 이 시대의 모정

등록 2003.07.23 14:12수정 2003.07.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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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발보아 극장에서 '샌프란시스코 세계 아동 영화제' 출품작인 주경중 감독의 '동승(童僧:A Little Monk)'이 지난 19일과 20일 양일간 상영됐다.

a 영화 <동승>의 한 장면

영화 <동승>의 한 장면

깊은 산사에서 세 스님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는데 특히 아기스님 도념(道念)의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짙게 묻어나는 장면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표현되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

비구니의 부정(不貞)한 몸을 빌어 이땅에 태어나 엄격한 주지 스님의 설법을 받아가며 성장하는 동자스님 도념. 산꽃이 가득한 봄날의 풍경과 갈대숲에 그려진 도념의 소꿉친구 사랑이 순박하게 피어나고 단풍 노을 속에 지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시처럼 영상에 흘러 관객을 사로잡았다.

자신의 과거를 모른 채 도라지 꽃이 활짝 피면 찾아온다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도념의 마음속에 어느날 절을 찾는 여신도(보살)의 아름다운 모습이 들어오게 된다.

a 영화 <동승>의 한 장면

영화 <동승>의 한 장면

마침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진 보살이 도념을 양자로 들이려 하나 도념의 토끼 사냥에 분개한 주지스님이 반대하니 도념은 홀연히 절을 떠난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새벽, 도념이 눈 쌓인 숲길을 지나 하염없이 걷는 뒷모습이 마지막 장면이다. 그가 울음을 삼키며 외치는 “어머니~“ 소리는 산굽이를 돌아 메아리 칠 뿐 어머니는 대답이 없다.

지난 주에 우리는 3명의 자녀와 동반 투신한 한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보았다. 카드빚과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파트를 뛰어내려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여인의 죽음도 그러하거니와 “엄마 죽기 싫어요, 살려주세요”라고 외쳤다는 고사리손의 꼬마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누가 그들로 하여금 14층 아파트에서 하늘로 몸을 던지게 하였는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5위, 하루 평균 19명이 자살한다는 한국에서 한낱 사건 뉴스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전세계를 둘러봐도 유래가 없는 엽기(獵奇)자살로 기록된다.

자살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모진 모정의 살인이었다. 엄연한 생존 개체의 권리를 저버린 어머니의 행실을 우리는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에게 불행한 미래를 안기느니 차라리 데려가겠다는 모정은 한낱 이기적 단견(短見)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이에 살려달라 애원했던 아이들의 절규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큰딸 아라(8세)와 아들 윤상(6세)을 먼저 던지고 막내 은서(3세)를 품에 안고 떨어진 어머니 손씨(34세)는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충남 태안 초등학교 동창 부부의 가정은 그렇게 산산 조각났다. 가구 공장에서 실직하고 노동판을 전전하다 이 소식을 접한 가장 조씨(34)는 넋을 잃고 영안실을 찾았다. "며칠 전에 술 한 잔 하자더니…."

유서에서 죽은 부인은 말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가 싫다. 죽고 싶다. 안면도에 묻어주세요."

죽기 전 “자살하면 뉴스에 나오느냐”고 물었다던 손씨의 말을 연상하면 그는 나름대로 사회에 무언의 메시지를 던지고자 동반자살을 감행한 것 같다. 생활고에 짓밟힌 모정이 자식을 죽이는 사회를 우리는 눈앞에 보고 있다.

3백만 카드불량자가 고통과 방황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즈음인지라 통장에 잔액이 있는 만큼만 사용이 가능한 직불카드제로의 전환 등 대책이 시급한 이 마당에 참여 정부는 신주류와 구주류 간 힘 겨루기에 정신이 없고 굿모닝 시티에서 몇십억이 오갔다는 법정 싸움만 들린다.

동자스님 도념이 외치는 통렬한 “어머님~”의 간절한 외침이 아파트에서 떠밀린 어린 것들의 살려달라는 절규와 함께 오버랩되어 귓가에 맴돌아 오늘 밤은 아무래도 소주를 청해야 되겠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죽음을 택한 '비정한 어머니'와 이승에서 피지못한 비운의 세 자녀가 하늘나라에서 평화 속에 살기를….

비록 이승에서는 잔인한 모정이었으나
묻혀서나마 친정 땅 고향 하늘,
안면도 뒷산에 편히 쉬시오.

정겨운 음성, 오늘도 맴도는
아이들의 쓸쓸한 영전을 향해
멀리서나마 삼가 명복을 빌 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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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하 기자는 미조리 주립대애서 신문방송학을 수학하고 뉴욕의 <미주 매일 신문>과 하와이의 <한국일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시사 주간신문의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로스엔젤레스의 부동산 분양 개발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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