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성의 화두, 다이어트를 말한다

한서설아의 <다이어트의 성정치>

등록 2003.07.23 23:43수정 2003.07.2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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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가슴, 어깨, 허리, 엉덩이, 허벅지, 다리, 손과 발,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얼굴의 부분부분들.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내 자신이 그것들을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심지어 혐오와 인정의 상태를 넘어서기까지 할 수 있을까." - 1996년 1월 26일

한서설아는 <다이어트의 성정치>(책세상 2000)라는 책을 쓰게된 동기를 위와 같이 설명한다. 어느 날 목욕을 하고 나와 거울에 비추어본 자신의 몸은 "어느 한 구석, 세상의 기준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는, 참으로 보편적이고도 불편하기 그지없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이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당하고 과장되어있는지를 알면서도 그러한 정의와 평가를 "고스란히, 아니 어쩌면 더욱 더 극단적이고 열렬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비단 그만 그러한 혼란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위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더 날씬해지기 위해 서슴없이 단식을 하고 수술대 위에 올랐다.

한서설아는 "원칙적으로는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이렇게 외모 관리에 집중하게 되는 데에는 무언가 더 근본적이고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는 이러한 문제 의식을 기반으로 여성의 외모와 몸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철저히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어 온 여성의 외모와 몸을 좀 더 진지하게 논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는 몸이 사회적·정치적으로 어떻게 인식되어왔고 통제되었는지를 제시하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서구의 지배층 남성들이 만들어낸 몸과 정신의 이원론-정신과 이성은 우월하고 몸은 열등하고 동물적이라는 인식-은 비서구인, 흑인,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격하시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통제와 지배를 정당화시키는 구실을 했다.


이를 지적한 것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The personal is the political)'임을 주장하는 1960년대 페미니즘이었다. 개인적 문제로만 인식되던 여성의 '몸'이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몸은 더 이상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과거 여성들은 한 남자의 여자가 되기 위해 남자가 원하는 몸을 가져야 했고 그런 그들에게 아름다운 몸은 '존재의 조건'이나 다름없었다.


코르셋과 전족, 백연(납성분을 포함한 분가루) 등은 남성의 마음에 들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이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것은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폭력이며 여성들은 이러한 폭력의 희생자였다. 반면 오늘날에는 여성들의 지위와 가능성이 높아져서 여성들이 굳이 몸을 매개로 하지 않고도 당당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외모 가꾸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통해 저자는 오늘날 여성들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보는 기존의 시각에서 탈피해야할 필요성을 발견한다. 현대 여성들은 여성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바꾸고자 열망하고 또 이러한 열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기꺼이 혹사시킨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저자는 다이어트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이러한 물음을 풀어나간다.

첫 번째 답은 여성은 여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사회는 여성의 외모를 곧 그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아름다운 여성을 선호한다. 남성에게는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인 외모가 여성에게는 여자로 인정받기 위해 꼭 필요한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시선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체화한 여성들은 역시 부지불식간에 날씬한 몸에 대한 욕망을 키워낸다.

두 번째 답은 여성으로 일하고 성공하기 위해서이다. 기업들이 채용 조건으로 단정한 용모를 버젓이 제시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성들 스스로가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이미지를 '날씬하고 세련된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고, 영화,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로 인해 여성들은 날씬한 몸과 아름다운 외모를 자아 실현과 사회적 성공과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캐릭터를 봐도 드라마 같은데서 뚱뚱한 여자가 지적이거나 전문직을 갖고 있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제가 봤을 때 거의 주부거나 아니면 아주 조연이거나 아니면 웃기는 아줌마, 그 정도예요. 설정도 그렇고, 텔레비전에서 그런 걸 많이 형성하는 것 같아요.… 뚱뚱하면 정말로 취업이 잘 안돼요. 그러니까 학점이 2.0대 애들에게 취업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3.5가 넘는 애들한테는 안 들어오는 거야. - 사례 J 중에서

이러한 외모 중심의 고용, 아름다운 외모가 하나의 서비스 노동으로 인식되는 구조는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같은 직종 내에서도 업무 차별이 일어나고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여성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고용의 가능성을 차단하기까지 한다. 또한 고용된 여성들은 상사와 동료, 고객의 성애화 대상이 되어 끊임없이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된다.

결국 여성들은 외모로 인해 온전한 사회적 노동권과 평생 평등노동권을 방해받을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날씬한 몸을 통해 인정받으려는 잘못된 욕구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여성들은 다이어트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 형성과 성공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즉 여성들은 다이어트가 자아에 대한 인식, 성공에 대한 욕구를 해결해주는 수단이라는 착각 때문에 끝없이 다이어트를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다이어트가 어떻게 개인적 문제로 귀착하는지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본능을 억제하는 의지의 문제'로 보고 다이어트의 성공 여부를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로까지 이어간다는 데서 답을 찾는다.

다이어트는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는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성공과 실패, 그에 따른 책임 역시 여성 개인의 몫으로 전가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몸을 혐오하는 시선의 억압성은 사라지고 혐오스러운 몸을 가진 여성 개인의 책임만 남는 것이다.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시도한 다이어트가 자기 혐오를 높이기만 하는 역설이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다이어트를 여자의 운명으로까지 받아들이고 "고통스러운 다이어트로부터 궁극적으로 해방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몸을 통제"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기꺼이 끼여든다.

정말 여자는 불쌍한 거 같아요. 끝없이 절제하고 끝없이 해야될 거 같아요. 끝나지 않는 전쟁같아요. 그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여자한테는 끝없는 숙제이고 전쟁인 거 같아요.
- 사례 I 중에서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러한 부당함에 대해 저항해 온 역사를 짧게 덧붙인다. 1960년대 말 이른바 '여성운동의 제 2 물결'이 일면서 브래지어, 거들 등을 던져버린 예에서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메이퀸 제도 폐지와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 중지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외모로 환원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어왔다.

저자는 우리가 치료해야 할 것은 "여성들에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이렇게 높여놓은 이 사회이지 그러한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그에 순응한 여성들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를 위해 이러한 도전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느 덧 여름도 절정에 달했다. 신문과 텔레비전에서는 매일같이 수영복을 입기 위한 체형 가꾸기, 노출의 계절을 대비한 다이어트법 등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마치 날씬하지 않으면 여름을 살아갈 자격도 없다는 듯이 말하고 여성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실천한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는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한다. 더불어 자신의 욕망과 사회의 시선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는 여성들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몸을 존재의 일부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며 아무런 죄의식 없이 먹고 마시고 움직이면서 당당하게 공간을 차지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럼으로써 우리가 상실했던 진정한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의의 외에도 20명의 사례 연구를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옮기고 있다는 점, 이를 통해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논의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 그럼에도 피상적이지 않다는 점 등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여성의 욕망을 통제하고 심지어는 자기 혐오에까지 이르게 하는 다이어트가 여성의 의무이자 미덕인 사회에서 <다이어트의 성정치>는 여성들에게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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