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오래된 흑백 그림-홍수1

비 많이 와 큰물지면 학교 가지 않아도 되었다

등록 2003.07.24 17:58수정 2003.07.2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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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나면 동네 앞길을 마구 쓸고 갑니다. 학교 가지 않아서 좋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세상만사 모두 스톱이었고 마당에서 물이 납니다.
홍수가 나면 동네 앞길을 마구 쓸고 갑니다. 학교 가지 않아서 좋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세상만사 모두 스톱이었고 마당에서 물이 납니다.김규환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은 7월 중순이었다. 비가 밤새 그치지 않아 도랑물이 꽤 불어나 있었다. 그래도 어쩔 건가? 방학을 하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했으니 오늘도 별일 없는 한 학교는 가야 한다.


비바람에 반투명의 파란 비닐우산, 대나무를 쪼개 우산살을 만든 우산을 썼다. 책가방은 옷 속으로 둘러맸다. 젖을까봐 겉에는 갈잎으로 만든 도롱이를 걸쳤다. 산촌에 내리는 비가 오지랖 세차게 퍼붓는 관계로 그렇게 단단히 준비해 나서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하루를 젖은 상태로 지내야 했다.

마을 어귀로 나오면 징검다리가 있었다. 예닐곱 띄엄띄엄 놓여 있을 뿐 넓은 도랑이 아니다. 거세진 물살이 주위를 어지럽게 한다. 징검다리 위로 물이 꽤 튀어 올라 신발을 적실 정도다. 어머니가 지켜보시는 가운데 물을 건넜다. 또래 아이들은 벌써 물을 건너 저 만치 논두렁길을 따라 마을에서 멀어져 갔다.

“조심히 댕겨오니라와~”
“알았어라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건너~”
“예.”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건너라던 어머니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첨벙첨벙 툭툭 튀어 재빨리 건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 얼마나 걱정이셨을까? 건너고 나서 어머니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엄마, 학교 갔다 올게요.”
“오냐.”


나중에 신작로로 바뀐 좁은 논두렁길은 앞서간 아이들의 발자국 자리마다 질컥거렸다. 자칫 헛디디면 발은 논두렁 아래로 푹 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을 수 있는 걷기 힘겨운 길이다. 허벅지까지는 이미 다 젖고 흙이 튀어 올랐다.

곧 학교에 도착하였다. 아이들도 대부분 와있었다. 오리가 넘는 평지마을에 사는 아이들만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이른 밥을 먹고 출발했을 것인데도 그 먼 거리에서 우산 쓰고 비 피해서 오려면 조금은 걸릴 것이다.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와글와글”
“개굴개굴”
요란한 소리에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장난하다가 붙잡힐 것 같으면 맨발로 밖으로 뛰어 나가 운동장까지 도망가는 아이도 있었다. 오전 시간인데도 교실 안에는 퇴비 발효되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탱탱 불은 살 냄새 때문이었다.

종이 땡땡땡 세 번 울릴 무렵, 나머지 아이들도 간신히 학교에 도착했다.

"차려!"
“경례”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러분, 물에 빠지지 않고 다들 잘 왔어요?”
“예-”
“요새 같은 장마철에는 조심히 다녀야 합니다. 물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예-”

수업이 시작되었다. 1교시는 음악시간이었다. 연신 들이치는 빗소리에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며 힘겹게 산을 기어오르는 ‘제무시’(옛날 GMC 자동차를 그렇게 불렀다)처럼 풍금 소리 마저 잘 들리지 않는다. 더 발에 힘을 주어 소리를 크게 해서 연주해 나가며 노래를 가르치던 선생님도 힘겨워 보인다.

지쳐갈 즈음 딴청부리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바닥으로 또르르 연필을 굴리자 옆 아이가 얼른 주워 다시 굴려준다. 이러기를 몇 번해도 선생님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니 아이들은 평지 마을 친구들이‘물 건너기 힘들어 간신히 어른들이 업어 건네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마을은 학교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었으니 아침에 출발할 때는 그렇게 까지 심한 건 아니었다.

“야, 글다가 이따가 집에 못 가면 어떻게 하지?”
“야 새꺄, 재숫대가리 없는 소리 좀 하지마.”
“그냥.”
“뭐시 걱정이다냐? 동네 또랑까지 가면 엄니 아부지 나오실 건디 뭐가 걱정이여?”
“봐봐. 비가 더 오잖냐?”
“집에 못 가면 빵도 줄 것인께 빵이나 실컷 먹고 교실에서 자면 될 것 아니여.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라.”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비가 추적추적 사흘 째 내렸다. 오늘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직 올 게 남았는지 장대비로 바뀌어 내린다. 나무 유리창 틈으로 물이 팍팍 튀어 들어온다.

급장이 “야, 당번! 걸레 갖고 와 닦아라”는 말에 당번 두 명이 세수 대야를 갖다 닦고 짜고를 반복한다. 수업시간이 안되었는데도 선생님께서 다시 오셨다. 걱정이 되셨나 보다.

“선생님 어떡해요?”
“별일 없을 게다. 염려 말거라.”

이제 시골에 가도 그런 일까지는 잘 나지 않지만 작년에 가본 고향은 더했습니다. 포크레인도 떠내려가던 걸요. 그래서 주변 정비를 한답시고 돌망을 씌워 산천을 망가뜨렸습니다. 이제 고향에 가도 그 아름답던 냇가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골에 가도 그런 일까지는 잘 나지 않지만 작년에 가본 고향은 더했습니다. 포크레인도 떠내려가던 걸요. 그래서 주변 정비를 한답시고 돌망을 씌워 산천을 망가뜨렸습니다. 이제 고향에 가도 그 아름답던 냇가를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김규환
선생님께서 별일 없다하니 약간은 안심이 되는 듯 아이들이 대부분 자리에 가 앉았다.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고 종이 울리자 선생님께서 비를 맞으며 교실로 황급히 들어오셨다.

“여러분 선생님 말씀 잘 들어요.”
“예-.”
“비가 갑자기 많이 와서 양지, 평지, 송단 마을로 건너는 냇가에 물이 많아 그냥 건너기 힘들답니다. 지금 학교를 파해 줄 테니 곧장 동네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가기 바랍니다. 그리고 따로 마을 이장님께 연락할 것이니 당분간 집에 있고 학교에 오지 마세요. 알겠어요?”
“예-.” 하는 아이, “와~” 하며 좋아하는 아이 두 패로 나뉘었다.

책을 챙겨 보자기에 단단히 동여매고 학교를 나섰다. 7-8m 가량 되는 냇가 도랑에 큰물이 져 있었다. 산골짜기마다 비가 왔으므로 한꺼번에 밀고 내려왔는지 징검다리는 보이지 않고 돌이며 나뭇가지가 거센 물결을 치며 떠내려오고 있다. 이러다간 마을 앞길도 위험해 보였다.

건너편엔 학생을 둔 어른들이 비옷을 입고 우산을 바쳐 들고 있다. 동네 청년들도 죄다 나와 앞길이 좁게 보였다. 벌써 2명은 이쪽으로 건너와 있었다. 수업하다 말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도 스무 명이 넘었다.

아이는 건너편에 있는 두꺼운 장대(간지대)를 잡고 한 명씩 물길을 건너야 한다. 안전 장치로 먼저 와 있던 형들이 집에서 가져온 지게 끈-‘띠꾸리’를 이어 아이 몸에 한 명씩 묶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도 이미 묶여졌다. 먼저 책보와 신발은 비닐 부대에 싸서 건너편으로 던져졌다.

“잘 잡고 건너야 한다. 절대 손놓으면 안 돼. 알았지?”
“응.”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한 명 한 명 건너기 시작한다. 간지대를 건너편에서 보내오자 아이는 대를 움켜쥐고 반대편에서 끌어주는 힘에 의지해 성난 물위를 수상스키 하듯 미끄러져 간다. 허벅지까지 물살이 들이쳤다. 아찔한 순간이다. 현기증이 절로 났다.

아래에 한 사람이 내려와 가까이 오면 안아서 길 위로 던지듯 올려준다. 이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대부분 집으로 갔지만 몇 명은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건너편에 남아 있던 아이들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오래 기다린 아이들은 차차 지쳐갔다.

아무 일 없이 다들 잘 건넌 탓인지 긴장도 현저히 풀어져 있다. 건너지 못한 아이는 둘이다. 마침 4학년 코흘리개 용식이 차례였다.

여느 때와 같은 방법으로 건너면 된다. 1미터 2미터 끌려가던 용식이가 그만 간지대가 미끄러워서인지 한 손을 놓고 말았다.

짚으로도 만들고 갈대로도 만들어 쓰고 다니며 일을 했던 비옷의 일종 도롱이라고 합니다. 꼴베러 갈 때도 입었죠. 밀집 모자 하나 쓰고 꼴을 베러 갑니다.
짚으로도 만들고 갈대로도 만들어 쓰고 다니며 일을 했던 비옷의 일종 도롱이라고 합니다. 꼴베러 갈 때도 입었죠. 밀집 모자 하나 쓰고 꼴을 베러 갑니다.김규환
“엄마~”하는 비명과 함께 2-3M 아래로 떠내려간 아이는 빙그르르 돌아 곤두박질쳐졌다. 흙탕물을 흠씬 들이마셨다. 다급해진 청년들이 끈을 잽싸게 잡아 당겼다. 그 때문에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물에 빠진 생쥐 마냥 흙탕물에 온몸이 젖었다. 사태를 수습하고 아이를 꺼내 일을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건널 아이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물길을 건넜다. 그날은 큰 일 없이 집으로 다들 잘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움푹 패인 마을 앞길에서 첨벙거리며 물과 흙을 가지고 놀던 해순이(가명)가 도랑 가에 접근하여 발을 씻으려다 홍수에 떠내려 간 사건이 일어났다. 냇가를 100M 이상 떠내려와 보 2개를 넘고 세 번째 보에서 동네 청년들이 건져 주었다.

다음날도 건너 갈 수 없었다. 물 빠질 때까지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 눌러 있어서 꿀맛 같은 낮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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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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