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가 나면 동네 앞길을 마구 쓸고 갑니다. 학교 가지 않아서 좋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세상만사 모두 스톱이었고 마당에서 물이 납니다.김규환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은 7월 중순이었다. 비가 밤새 그치지 않아 도랑물이 꽤 불어나 있었다. 그래도 어쩔 건가? 방학을 하려면 며칠은 더 기다려야 했으니 오늘도 별일 없는 한 학교는 가야 한다.
비바람에 반투명의 파란 비닐우산, 대나무를 쪼개 우산살을 만든 우산을 썼다. 책가방은 옷 속으로 둘러맸다. 젖을까봐 겉에는 갈잎으로 만든 도롱이를 걸쳤다. 산촌에 내리는 비가 오지랖 세차게 퍼붓는 관계로 그렇게 단단히 준비해 나서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하루를 젖은 상태로 지내야 했다.
마을 어귀로 나오면 징검다리가 있었다. 예닐곱 띄엄띄엄 놓여 있을 뿐 넓은 도랑이 아니다. 거세진 물살이 주위를 어지럽게 한다. 징검다리 위로 물이 꽤 튀어 올라 신발을 적실 정도다. 어머니가 지켜보시는 가운데 물을 건넜다. 또래 아이들은 벌써 물을 건너 저 만치 논두렁길을 따라 마을에서 멀어져 갔다.
“조심히 댕겨오니라와~”
“알았어라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서 건너~”
“예.”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건너라던 어머니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첨벙첨벙 툭툭 튀어 재빨리 건넜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으니 얼마나 걱정이셨을까? 건너고 나서 어머니께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엄마, 학교 갔다 올게요.”
“오냐.”
나중에 신작로로 바뀐 좁은 논두렁길은 앞서간 아이들의 발자국 자리마다 질컥거렸다. 자칫 헛디디면 발은 논두렁 아래로 푹 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을 수 있는 걷기 힘겨운 길이다. 허벅지까지는 이미 다 젖고 흙이 튀어 올랐다.
곧 학교에 도착하였다. 아이들도 대부분 와있었다. 오리가 넘는 평지마을에 사는 아이들만 아직 오지 않고 있었다. 이른 밥을 먹고 출발했을 것인데도 그 먼 거리에서 우산 쓰고 비 피해서 오려면 조금은 걸릴 것이다.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와글와글”
“개굴개굴”
요란한 소리에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장난하다가 붙잡힐 것 같으면 맨발로 밖으로 뛰어 나가 운동장까지 도망가는 아이도 있었다. 오전 시간인데도 교실 안에는 퇴비 발효되는 듯한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탱탱 불은 살 냄새 때문이었다.
종이 땡땡땡 세 번 울릴 무렵, 나머지 아이들도 간신히 학교에 도착했다.
"차려!"
“경례”
“선생님, 안녕하세요~”
“여러분, 물에 빠지지 않고 다들 잘 왔어요?”
“예-”
“요새 같은 장마철에는 조심히 다녀야 합니다. 물에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죠?”
“예-”
수업이 시작되었다. 1교시는 음악시간이었다. 연신 들이치는 빗소리에 더위에 지쳐 헉헉거리며 힘겹게 산을 기어오르는 ‘제무시’(옛날 GMC 자동차를 그렇게 불렀다)처럼 풍금 소리 마저 잘 들리지 않는다. 더 발에 힘을 주어 소리를 크게 해서 연주해 나가며 노래를 가르치던 선생님도 힘겨워 보인다.
지쳐갈 즈음 딴청부리는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바닥으로 또르르 연필을 굴리자 옆 아이가 얼른 주워 다시 굴려준다. 이러기를 몇 번해도 선생님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긴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니 아이들은 평지 마을 친구들이‘물 건너기 힘들어 간신히 어른들이 업어 건네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마을은 학교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었으니 아침에 출발할 때는 그렇게 까지 심한 건 아니었다.
“야, 글다가 이따가 집에 못 가면 어떻게 하지?”
“야 새꺄, 재숫대가리 없는 소리 좀 하지마.”
“그냥.”
“뭐시 걱정이다냐? 동네 또랑까지 가면 엄니 아부지 나오실 건디 뭐가 걱정이여?”
“봐봐. 비가 더 오잖냐?”
“집에 못 가면 빵도 줄 것인께 빵이나 실컷 먹고 교실에서 자면 될 것 아니여. 그러니 걱정 붙들어 매라.”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비가 추적추적 사흘 째 내렸다. 오늘은 상황이 달라졌다. 아직 올 게 남았는지 장대비로 바뀌어 내린다. 나무 유리창 틈으로 물이 팍팍 튀어 들어온다.
급장이 “야, 당번! 걸레 갖고 와 닦아라”는 말에 당번 두 명이 세수 대야를 갖다 닦고 짜고를 반복한다. 수업시간이 안되었는데도 선생님께서 다시 오셨다. 걱정이 되셨나 보다.
“선생님 어떡해요?”
“별일 없을 게다. 염려 말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