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에 저항한 혁명가의 생애

막스 갈로의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등록 2003.07.28 20:25수정 2003.07.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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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경악했다. 히틀러와 나치의 광기에 놀랐고, 유럽에서 가장 강한 사회주의정당이 자리잡고 있는 국가에서 강력한 군국주의가 탄생했다는데 대해 놀랐다. 도대체 사회주의자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미국의 패권주의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또다시 '사회주의자의 임무'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텍스트로서 읽힐 수 있는 책이 바로 막스 갈로의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푸른숲 刊)>이다.


절름발이에다 유대인이었던 로자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에 비해서 덜 알려져 있지만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라는 찬사를 받았고, 레닌에 필적할 만한 유일한 인물로 칭송 받았다. 16살에 사회주의정당에 투신하고, 22살에 '노동대의'의 집필을 맡으며,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한다. '폴란드 사회민주당'을 창당했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3살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국제주의 운동을 벌이던 각 국가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일제히 자국의 전쟁을 지지했지만, 로자는 일관되게 '전쟁 반대'를 외쳤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공존'을 내세우며, 레닌의 관료주의와 공포정치를 정면에서 비판한 것도 바로 로자였다.

이러한 로자를 파리대학 역사학 교수인 막스 갈로가 되살려냈다. 막스 갈로는 1932년 니스 출생으로 역사학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과 편집장, 국회의원, 유럽의회 의원 등의 이력을 지녔고, 미테랑 사회당 정부에서 정무장관과 대변인을 맡았다.

'로베스 피에르', '가리발디', '장 조레스', '드골', '빅토르 위고' 등 중요한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써냈다. 그는 로자를 통해 당시의 시대적 메커니즘이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밝힌다.

"나는 역사를 움직인 인물이 어떻게 기능했는가에 관심이 있다. 그가 잘 했는가, 못했는가를 말하려는 건 아니다. 한 인물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두어야 한다.…나는 특정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만든 메커니즘을 밝혀내고자 한다.…나는 그들이 어떻게 운명을 피해갔는가도 밝혀내고 싶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19년 1월 15일 폭력혁명을 선동했다는 병사들에 의해 살해당한다. 실제 그는 레닌의 공포정치와 관료주의를 비판했지만, 1917년 볼세비키 혁명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인터내셔널에서 여러 차례 레닌을 지지했다. 그리고, 당이 일상적인 선거에만 몰두하자는 당의 '수정주의'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을 제기했다. 타협을 거부하며, 일관되게 '원칙'을 고수하는 그는 다수의 정치세력들에게는 '시한폭탄' 같은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자는 겉으로 '평화와 타협'을 외치는 사회민주당의 다수파들이 결국은 전쟁으로 가는 길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 바라봤다. 당시 독일은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확장을 지켜보며,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기 위해 왕성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군부와 우파정당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군비확장의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


독일황제 빌헬름 2세가 국민을 동원하기 위한 이념적 테마로서 '슬라브 민족에 대항하는 게르만 민족'을 내세운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사회민주당 다수파와 각국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득표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민족주의'를 적극 지지하고 있었다. 민족주의와 식민지 확장, 사회주의 확장에 대한 군부의 불안 등이 겹쳐 엄청난 파국이 예견되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자의 임무를 방기한 정당들에 대해 로자가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본문을 읽어나가면서, 로자의 반대파에 대한 엄격함이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로자는 물소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여인이었고, 하루살이의 삶에 대해서도 연민을 드러낼 정도로 섬세했다. 정치계 거물이 된 뒤에도 장난감 놀이와 엄마 놀이를 하기를 갈망했던 그는, 타협하지 않는 혁명가였지만, 살인을 반대하고 폭력혁명을 거부하는 혁명가였다. 게다가 혁명과 정치를 혐오하며 일상적 삶의 중요성을 갈구했던 평범한 여성이기도 했다.

"선량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선량하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릅니다. 이것은 어떤 지성보다도, 옳다고 주장하는 우쭐함보다도 더 우월한 것입니다."

로자가 이끌던 스파르타쿠스단은 로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봉기를 일으킨다. 대학살을 피할 수 없고,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봉기계획을 반대하던 로자는 결국 그들과 함께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막스 갈로는 수 만 명의 무장병력이 집결했을 때 로자가 무장해제를 지시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만, '모험주의'와는 거리를 둔 그의 삶에 비쳐볼 때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평화의 시기로 평가되는 20세기초는 모든 것들이 과거와 단절되는 시기였다. 저자는 그러한 격동의 시기에서 이미 세계대전이라는 괴물이 잉태되고 있었고,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로자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20세기를 여는 1905년, 그해에는 모든 게 운동이고, 단절이며, 파괴였다. 아인슈타인(1879-1955)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프로이트(1856-1939)가 '정신분석 이론'을 정리하는 것도 1905년이었다. 피카소(1881-1973) 역시 '고전적인' 그림을 날려버린다. 1907년에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전시할 것이었으므로. 1905년 책은 닫힌다. 다른 시간-비극적인-의 서문이 쓰여지기 시작한다. 세계를 향해서, 그리고 로자를 향해서."

뒷면에 당시의 정치사건들과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 기타 사건들을 서술한 '연대기'와 주요 용어 해설 등이 첨부돼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푸른숲,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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