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섬, 사도를 가다

기암괴석과 공룡발자국이 어우러진 사도의 비경

등록 2003.08.02 00:26수정 2003.08.0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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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내려와 산지 벌써 2년여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그 흔한 섬 한번 들어가 보지 못했다는 게 내겐 늘 아쉬웠다. 지금까지 여객선 터미널에는 지나다가 두어 차례나 가서 서성거려 보긴 했다. 내가 갈 때마다 터미널은 왠지 한산하기만 했다.

여수가 거느린 섬만도 무려 300여 개가 족히 넘는다. 그런데 대표적 관광지로 손꼽히는 거문도, 백도, 사도 등의 섬들을 들어가는 배편마저 생각보다 자주 없어 실망스러웠다. 그러다가 여객선 터미널에서 운항하는 배 외에도 다른 유람선들이 많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여름휴가를 맞아 엊그제 처갓집 식구들이 멀리 천안에서 여수까지 내려왔다. 그래서 그동안 가고 싶었던 사도에 함께 들어가 볼 것을 제안했다. 뭍에서만 살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모두들 무조건 대찬성이었다. 더구나 그곳에 가면 공룡발자국을 볼 수 있다는 나의 감언이설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는 것만도 가슴 설레는 일인데, 해수욕에다 공룡발자국까지 구경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 속에 나오는 공룡말고, 지금부터 수천만 년 전 살던 공룡의 자취를 육안으로 직접 보는 경험이란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다.

a 사도를 향해

사도를 향해 ⓒ 정병진

우리는 아침 일찍 돌산대교 밑에서 운항하는 여객선을 탔다. 섬을 제대로 둘러보고 해수욕까지 하고 오려면 일찍 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타고 들어간 여객선은 80여명 정원의 아주 작은 배였다. 배가 막 출발하자, 연세가 지긋해 뵈는 선장 아저씨는 의례 하던 것처럼 뽕짝을 틀어놨다.

그랬으니 마치 시골 완행버스 타는 기분이랄까. 그것도 오랜만에 맛보는 것이라 그런지 그런 대로 괜찮았다. 배는 물살을 가르고 시원스레 달리면서 주변의 이름 모를 여러 섬들을 지나쳤다. 가끔씩 보이는 고깃배들과 병풍처럼 둘러싼 섬들의 정취를 한껏 맛보며 한 시간쯤 달리자 드디어 사도다.

a 사도 입구에 세워진 티라노사우르스

사도 입구에 세워진 티라노사우르스 ⓒ 정병진

사도에 내려서자 두 마리의 거대한 공룡상이 우릴 맞이했다. 무서운 공룡으로 널리 알려진 티라노사우루스다. 녀석은 사도에서 서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룡 중 하나란다. 숨돌릴 새도 없이 우린 공룡발자국이 있다는 곳부터 찾아갔다. 발견된 공룡 발자국만도 4천여 개에 달한다는 안내문을 본 터라, 공룡발자국을 금방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관광 안내도에 나와 있는 지점에서 공룡 발자국을 아무리 찾아봐도 찾기 힘들었다.

a 공룡 발자국 표시

공룡 발자국 표시 ⓒ 정병진

겨우 발자국 형태의 노란 표지와 그 가까이서 발자국 하나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주위에 다리 공사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물이 차서 보기 힘들고 물이 빠져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하신다. 우린 별수 없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중도로 발길을 돌렸다.


a 양면 바다 해수욕장

양면 바다 해수욕장 ⓒ 정병진

중도와 증도 사이에는 양면 바다 해수욕장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양면 바다 해수욕장이라니. 참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조금 더 갔더니 사도에 들어오면서 배에서 바라보았던 얼굴바위를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볼 때는 실감이 나지 않더니만 가까이서 바라보니 정말로 사람 얼굴의 옆모습을 그대로 쏙 빼 닮았다.

a 얼굴바위

얼굴바위 ⓒ 정병진

그 바로 옆에 거북바위가 놓여 있었다. 거북바위를 설명하는 안내문을 읽어보니 이순신 장군이 이 거북바위를 보고 거북선을 착안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a 거북바위

거북바위 ⓒ 정병진

얼굴바위를 지나 조금 걸어가자 고래바위가 나왔고 거대한 바위 밑으로 규화목 화석도 있었다.

수천 만 년 세월의 역사를 간직한 섬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기암괴석들의 높이만큼이나 겹겹이 쌓였을 세월의 아득한 흔적을 우리가 어디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a 규화목 화석

규화목 화석 ⓒ 정병진

다시 돌아 나와서 양면해수욕장에서 잠시 해수욕을 즐겼다. 작은 해수욕장이지만 여느 해수욕장들과는 달리 물이 무척 깨끗했고 사람들도 많지 않아 번잡하지 않아 좋았다. 그늘과 샤워장이 없는 것이 흠이었는데, 공사중인 샤워장 시설은 거의 완공단계에 있는 것 같았다.

a 공룡 발자국이 또렷하다

공룡 발자국이 또렷하다 ⓒ 정병진

중도에서 돌아 나올 때가 오후 2시경이었다. 나오면서 보니 그 사이에 물이 많이 빠져서 여러 군데서 공룡발자국을 아침보다 훨씬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발자국이 길게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공룡발자국이 길게 나있는 곳은 가까운 추도라는 사실을 공룡 공원에 설치된 설명문을 보고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들어가려면 배를 따로 타야해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물길이 갈라지는 장면도 시기(매년 음력 2~5월 보름때)를 잘 맞춰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도에 사시는 할머니 인터뷰

섬을 빠져 나오기 전에 사도에서 살고 계시는 어느 할머니(66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지금 손질하고 있는 것이 뭐예요?
- 통바리요.

- 이걸로 무얼 잡나요?
- 문어, 게, 장어 뭐 대중없이 여러 가지 잡제라우.

- 이렇게 주로 고기 잡는 것으로 생활하시나요?
- 그러지라우. 그래도 포도시(겨우) 용돈 좀 벌어 쓰제 별 거 없어라우

- 요즘 사도에 관광객들이 부쩍 많이 찾아오는 데, 차라리 장사를 하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 그것도 젊은 사람들 야그지 늙어 가지고 그것을 어찌 할 수 있것소 .

- 이 섬에서 제일 젊으신 분이 몇 세나 되나요?
- 젤로 젊은 여자가 아마 마흔 여섯일 것이요. 젊은 사람들이 모다 우리 자석들부터 뭍으로 나가고 없고 우리 겉은 늙은 사람들 밖에 없어라우.

- 할머니는 이 섬에서 얼마나 사셨어요?
- 열여섯에 시집와서 한 사 십 년 되었소.

- 어떻게 이 섬으로 시집오셨어요?
- 그렁께 말이라우. 내가 여기 오기 전에는 개도에서 살았는디 그러다 봉께 시집을 일로(이곳으로) 안 오게 되었소.

- 사도에서만 사 십 년을 사셨다면 관광 안내 책자에 나와 있는 것보다 이 섬에 대해 훨씬 더 소상히 잘 아실 텐데 사도 자랑 좀 해주세요.
- 보시다시피 사면이 맥힌디가 한 군데도 없어서 물이 깨끗해요. 글고 고기도 많고. 겨울에는 여기가 추워라우.

- 보통 여수는 눈이 잘 안 내릴 정도 따뜻한 데 얼마나 춥기에 그런가요?
- 무섭기로는 바람이 젤로 무섭고, 태풍불면 배들도 큰 섬에다 갖다 대놔야 한당게요.

- 공룡 발자국이 많다고 해서 와서 보니 실제로는 추도나 낭도만큼 많지 않은가 보던데요.
- 많이 있제라우. 작년에 박사님과 학생들이 와서 바위를 들어내고 발자국들을 찾고 그랬는디….

이야기 도중에 저쪽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부르는 통에 할머니는 이야기를 마저 마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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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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