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음악의 새로운 방법론(?)

문희준의 3집 [Legend]

등록 2003.08.04 12:44수정 2003.08.0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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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문희준 3집 'Legend'

문희준 3집 'Legend'

테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은 본인의 저서 [록 음악의 미학 : 레코딩, 리듬 그리고 노이즈(원제: Rhythm And Noise: An Aesthetics Of Rock)](2002년 발간)에서 록 음악을 레코딩 중심의 대중음악으로 논한다. 즉, 록 음악은 본질적으로 "몇몇 아프리칸-아메리칸 대중 음악에 기초를 두고 있고, 노래에 뿌리내리고 있으며, 범례적으로는 레코딩된 음악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오해하면 안된다. 그래칙의 말은 '록 음악의 레코딩'이야말로 연주나 작곡 같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록 음악을 다른 음악과 구별지어주는 특징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레코딩 예술로서의 록 음악이 제아무리 독특한 비트나 스튜디오에서의 노이즈 첨삭 등을 통해 생명력을 얻는다 하더라도, 연주자의 공력과 작곡자의 역량과 같은 근원적인 요소들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록 음악을 한다는 사람이 '레드 제플린'을 아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록 음악의 작곡법에 있어서든, 형식적인 미학의 측면에 있어서든.

여기, 레드 제플린을 모르는 가운데서도 대한민국의 록을 이끌어가겠다고 자부하는 한 젊은 뮤지션이 있다. 다름 아니라 인기절정의 아이돌 그룹 H.O.T의 리더를 거쳐,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해 거센 논란을 부르고 있는 사나이, 문희준이다.

그가 처음 작곡을 시도한 것은 H.O.T 3집에 수록된 "투혼"을 통해서였는데, 이는 당시 쏟아져나오던 수많은 댄스그룹들 속에서 '자작곡'이 가능한 그룹으로서 차별화를 꾀하려는 소속사의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단이야 어찌됐든, 이후 문희준은 H.O.T의 음반에 지속적으로 자작곡을 선보여 왔다.

그리고 해체 이후에는 록 뮤지션으로의 전향을 선언했으며 "Alone"과 "I" 같은 곡들을 통해 거센 찬반 양론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한편으로는 댄스그룹 출신이 록 음악을 논한다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 때문일 수도 있겠고, 또 한편 문희준의 정제되지 않은 언행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가 하는 '록'이 대다수 록 음악 청취자들이 인지하고 있던 '록'과 달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실제로 문희준이 선보인 이런저런 곡들은 '록 음악의 새로운 방법론'이라 할만큼 기존 록 음악과 많은 차이를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이는 단순히 고전적인 록 음악(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식의) 뿐만이 아니라 누 메탈(Nu Metal)의 방식과도 다른 종류의 창작 방식이었다. 3집 음반 [Legend](2003)은 이전의 방법론을 우직하게 고수하면서, 또한 전작에서 제기됐던 문제점을 다소 보완하는 식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댄스음악을 기초로 한 작곡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말하자면, 이것은 록 음악의 작곡 방식이 아니다. 2집 음반의 "My Life... And My Way"처럼 아예 멜로디라는 것이 존재치 않는 정도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체로 록 음악의 작곡은 기타 '리프'를 기초로 해서 이루어진다. 특징적인 기타 리프를 먼저 만든 뒤, 그 위에 보컬 멜로디와 여타 악기음을 하나씩 쌓아올리는 것이 록 음악의 방식인 것이다(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문희준의 록은 컴퓨터를 십분 활용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멜로디를 컴퓨터로 찍어 맞춘다는 얘기다.


이는 (악기도 다룰줄 모르는 경우가 흔한) 근래 젊은 작곡가들의 방식으로, 아이돌 스타들의 댄스 음악을 제조할 때 사용되곤 한다. 문희준의 경우 처음부터 곡 작업을 이런 식으로 배운 것 같은데, 이것이 댄스그룹 시절에는 본래의 음악성과 무리없이 섞여 들었으나 록 음악으로 '전향(!)'한 후에는 그 방법론의 큰 간극으로 인해 반발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런 곡 작업 자체가 새로운 록 음악의 방법론이라고 한다면야 할 말 없겠지만.

여러 장르에서 따온 특징들을 뒤섞는 '하이브리드' 성향 역시 여전하다. 가령 "내 님"은 해금 연주와 오케스트레이션을 기용한 '오리엔탈(?)' 발라드이고, 짧은 기타 리프에 스크래치를 버무린 "The rome"이나 "전설"은 린킨 파크(Linkin Park)에게 영향받은 듯한 누 메탈(Nu Metal)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다양한 요소들이 제대로 섞여 들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곳곳에 사용된 오케스트레이션은 주 선율을 그대로 쫓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스크래치나 드럼 루프 등은 불필요하게 남발된다는 인상을 남긴다. 사운드는 본인도 통제할 수 없을만큼 거창한 스케일로 치닫다가 끝내는 수습되지 못한 채 마무리하길 거듭한다. 또한 발라드와 하드코어를 맥락 없이 오가는 식의 급격한 곡의 변화 역시 곡의 인상을 난삽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이는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뒤섞는데는 일종의 '매개항'이 있어야 하는데 문희준 음악에는 그런 것이 없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완성도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이적 2집 같은 것과 비교해 들어보면 차이가 분명해질 것이다). 물론 이런 맥락 없는 장르 결합 또한 새로운 음악적 방법론이라고 한다면 할 말 없겠지만.

전작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던 보컬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냉정하게 말해 록 음악을 하기엔 호흡은 짧고, 울림통은 허약하다. 음반에 실린 보컬이 오토 튠이나 에디트를 거친 뒤임에도 음색이 매끄럽지 않고 음정이 불안정한 것을 보면 발성 자체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음악 실기 시험을 치르는 평범한 고교생의 보컬처럼 들린다면 지나친 비난일까. 그래도 "우린 너무 닮았죠" 같은 발라드에서는 결점이 덜 노출된다지만, "전설"이나 "G. 선상의 아리아"와 같은 급박한 진행의 곡에서는 역부족이다. 여러 번에 걸쳐 나눠 부른 흔적이야 말할 것도 없고, "Stop It Now~" 하고 짧게 으르렁대며 내지르는 것은 문희준의 성대로 미처 소화할 수 없는 부분으로 보인다.

2집 음반처럼 무리한 고음부를 넣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설적인 '팔세토' 샤우팅을 접할 기회는 없지만, 여전히 군데군데 청자를 피식 웃게 하는 부분은 존재한다. "The Rome"에서 '아아~'하며 들려주는 가성 창법은 곡의 나름대로 진중한 분위기를 으깨 버리는 요소이며, 김정민처럼 목에 핏대를 세워 내뱉는 쇳소리는 '콘서트 후반부에 고생하겠다'는 생각이 들 게 한다. 왜? 단련되지 않은 목에 그렇게 무리를 줬다간 금세 쉬어 버릴 테니까.

다음은 가사의 문제. 전작들처럼 단어를 나열하고 간신히 '글자 수'를 맞추는 지경은 아니다. 그러나 글쓰기에 있어 고심하는 자세의 부족은 여전히 드러난다. "The Rome"의 노랫말 한 구절만 보자.

"예고된 파괴 걷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욕심/그리고 평화를 위한 결심/그리곤 계속되는 혈투/모든 것이 선택된 운명 처절한 비명과 몸짓/인간의 탐욕의 결정체 이 모든 것이 전쟁에 의한 결과" ("The Rome" 중에서)

전쟁에 대한 비판과 평화 희구를 견지하는 가사라는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런 좋은 대의가 왜 좀 더 정제되고 세련된 언어로 표출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표현은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단어 선택은 평이하며, 세계관 자체도 통속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전쟁에 의한 결과'라는 식의 문단은 지나치게 안이하다. 대중 음악 노랫말에 시적인 감성과 언어를 요구할 일은 아니지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기로 했다면 보다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 님"이나 "우린 너무 닮았죠" 같은 사랑노래에 가면 상황은 점입가경이 된다.

"그대에게 꼭 한번만 묻고픈 말은 기다리란 그대의 말 거짓 아니죠"나 "내가 어른이 돼서 나를 닮은 아일 낳으면 힘겨운 일상과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있을까요" 운운하는 노랫말은 치기어린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런 노랫말 또한 '언어의 해체를 통한 새로운 방법론'이라면 더 할 말은 없지만.

전작들에서 꾸준히 제기되던 '표절' 의혹은 이번에도 계속된다. 린킨 파크의 "Don't Say"를 흉내냈다는 의혹이 제기된 "The Rome"이나 에반에센스(Evanescence)의 "Going under"와 비교되고 있는 "To Be Continued...", 감마레이의 "Free Time"을 베꼈다는 의혹을 사는 "웃어요"가 현재 회자되고 있는 곡들이다.

들어본 바로는 세 곡 외에 "내 님"이나 "전설" 같은 곡에서도 의심가는 부분들이 왕왕 있는데, 여기서 얘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멜로디의 일치나 곡 구성의 유사함이 단순히 우연일 수도 있겠으나, 1집 활동 당시부터 앨범 발매 때마다 유사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된다면 분명 문희준 본인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그것도 다른 상대가 아니라 린킨 파크나 콘과 같은 하드코어 밴드들이 계속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은가. 레드 제플린 안 듣고 콘 듣는 것도 좋지만, 듣던 음악을 오선지, 아니 모니터에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표절 역시도 '혼성모방'의 일환이라면 할 말 없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마무리 차원에서, 지금까지 제기한 문제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보유한 곡인 음반의 마지막 트랙 "To Be Continued..."를 장황하게 풀이해 보자.

우선 이 곡에는 멜로디라 할 만한 것이 딱 한 소절 존재한다. '공허한 마음만~'하는 짧은 소절 말이다. 그 짧은 멜로디 하나를 갖고 3분 30여초를 버텨낸다(게다가 이 짧은 소절이 표절 의혹을 받는 부분이다!). 그래서 이 곡에서 일반적인 록 음악의 방식인 기타 리프(대 선율)-보컬 멜로디(주 선율)의 관계는 찾아볼 길이 없다.

여기서 기타 사운드는 두 가지 역할로 나뉘는데, 하나는 디스토션을 걸어 사운드 층을 두텁게 하는 역할이고 또 하나는 기타 솔로로 장식적인 기능을 한다. 물론 기타 솔로는 편곡자인 문희준의 역량과는 무관한 부분이며, 기타 디스토션은 사운드의 두께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두께, 그래 두께다. 여러 사운드의 조각들이 마구 뒤엉킨 이 곡을 설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것이 '두께'만을 배가시킨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리라. 문희준이 자가제조한 잡다한 사운드 샘플과 사물놀이패의 연주, 스크래치, 프로그래밍 리듬 등은 모두 사운드를 두껍게 만든다. 두껍기만 할 뿐이다. 죄다 불협화음을 만들고 맥락도 부재하며 곡을 시끄럽고 요란하게 만드는 요소들이지만, 아무튼 두꺼운 만큼 화려하고 다채롭게는 보이는 것이다(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이것이 실험성으로 여겨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무지막지한 사운드의 층위가 편곡자에 의해 전혀 통제되지 않은 탓에 '전위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편곡자의 역량으로 감당할 수 없을만큼의 판을 벌려 놓았는데, 워낙 정리가 안되는데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식을 거스르는 요소들 뿐인 까닭에 분석 자체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하긴 '무조', '무작위'로 뒤섞은 곡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평가하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니까.

보컬은 변조가 심한데다 그나마 '생 소리'를 들려주는 부분에서는 표현력과 성량의 부족을 드러낸다. 낮은 톤의 나레이션은 그야말로 코미디이고, 곡의 유일한 멜로디인 '공허한 마음만'하는 부분의 보컬은 고등학교 실기시험이다. 가사도 그렇다.

"우리의 미래도 내가 바꿀 순 없지만/이래도 세상을 모두 포기할 순 없어" 운운하는 구절은 잘못 써낸 주관식 답안처럼 보인다. 여기에 이 곡에 제기되는 린킨 파크와 드림 씨어터의 표절 의혹까지 더하면…. 곡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긴 문단의 글이 가능한데, 하물며 음반 전체를 이야기하자면 어떻겠는가. 게다가 이렇게 고민 끝에 비평해봐야 '대답 없는 메아리'라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사막에 물을 뿌리는 것 같은 허탈함만 남게 된다.

물론 이 음악은 어떤 부류의 이들에게는 좋게 들릴 것이고, 그들에게는 록 음악이라 불러도 하등 문제 없는 종류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수많은 문제점들 또한 하나의 '새로운 실험', '록 음악의 방법론'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 강타는 한국 재즈 보컬의 신성이며, 자두 음악은 더더보다 낫다. JTL은 아티스트이며 유니와 빈은 페미니스트이다. 클릭비는 록 음악의 마에스트로이고 원타임은 힙합의 전설이다.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그들 나름의 세계에서 자위행위하듯 '록 음악의 지존'이니 '오이 세 개'니 떠들어대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들은 적어도 확신범이고, 필자가 이렇게 장문으로 떠들어댄다고 해서 생각이 바뀔 사람들은 아니다. 필자가 한 모든 비판은 앞서도 언급했듯 그들이 '새로운 방법론'이라고 우겨대면 그만인 것들이다.

그렇다면 뭐하자고 소용없는 비판의 글을 이렇게 길게길게 늘여 쓴 걸까. 음반의 주인공이 이 글을 읽는다고 해서 "생각 없이 내뱉은 너의 그 더러운 말로/평생을 상처로 살아가"는 것도 아닐 터인데. "작은 의자에 앉아 너의 그 검은 손으로 너의 인격을 죽여가"는 인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같은 사람이 꽤 많을 거라는 확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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