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살살 하시고, 다시 하나 둘 셋 끙!"

[새벽을 여는 사람들 34] 산부인과 분만실 간호사 김부자씨

등록 2003.08.12 15:32수정 2003.08.1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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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축제의 장이에요. 진정한 가정을 만들어 주며 생명의 기쁨을 선사하는 행복의 장이죠!"


초보 실습 시절 산모의 고통 어린 비명 소리에 놀라 적어도 분만실 근무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짓궂은 운명이 간호사 김부자(29)씨를 분만실로 이끌어 어느덧 4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때론 고된 밤 근무에 지쳐 무려 27시간 동안 시체처럼 잠들어 버린 적도 있다. 가끔은 공휴일에 쉬는 사람들이나 혹은 퇴근 후 편히 누워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쩔 수 없이 눈길이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그깟 유혹에 넘어갈 김씨가 아니다. 오히려 더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보람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음에 쾌감을 얻는다는 김씨는 분만실을 '축제의 장' 이라 소개하며 탄생의 신비로움을 예찬했다.

김진석
"숨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몸에 힘 빼세요!"
"다음 번에 배 아프실 때에는 애가 나와요, 힘 주세요. 끙!"

분만실엔 태아 심장 측정기를 통해 들리는 아기의 건강한 심장 소리가 울렁인다. 1분에 120번-160번 뛰어야 할 아기의 심장이 어느 순간 60번-80번으로 떨어져 김씨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산모를 통해 아기에게 산소를 공급하자 가까스로 아기의 심장이 제 속도를 찾았다.


아기도 세상에 태어날 것을 아는 걸까? 포효하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귀에 담고 있으려니 괜한 설렘에 듣는 이의 심장마저도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반면 산모의 간헐적인 신음 소리를 들을 때면 입에 있는 침이 바짝 바짝 타들어간다.

이를 지켜보는 산모의 남편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 그는 끝내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서성이며 바라만 보다 조용히 자리를 뜨고 만다. 아내를 바라보는 깊은 눈 속엔 감히 말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미안함과 고마움이 서려 있다.


김진석
"모든 아이가 하나같이 다 다르고 매번 신기해요!"

김씨가 매번 새 생명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산모들은 "매일 받는 아기가 지겹지도 않느냐?"고 의아해 한다. 이에 김씨는 "어떻게 뱃속에서 저런 아기가 태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란다.

"항상 사람이 꼭 원하는 상황에서만 살아 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때론 원하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하는 게 사람의 인생살이인 거죠. 어느 상황에 처해 있든 아무리 싫어하는 일일지언정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왠지 무섭고 겁이나 피하고 싶었던 분만실 근무를 처음 하게 됐을 땐 그저 막막했는데 나중엔 쉬는 날이 싫을 정도로 일의 재미에 빠져버렸어요. '신입'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믿음'과 '인정'을 받고 싶어 정말 열심히 일했고 나름대로는 차근 차근 성장하고 있는 제 모습에 만족을 느껴요."

그는 자신의 일에 100% 만족하여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이에 김씨는 결코 안주하지 않는다. 그간 틈틈이 짬을 내 환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치료법들을 따로 공부해왔고 현재는 사이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김진석
"호흡 살살 하시고, 다시 하나 둘 셋 끙!"
"축하해요! 아들입니다!"

8월 12일 화요일 새벽 4시 27분. 2.98Kg의 건강한 사내 아이가 태어났다. 아들일지 딸일지 몰라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는 아기의 아버지는 산모에게 연신 고맙다며 앞으로 다 갚아주겠노라 다짐했다. 이어 그는 "아기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건강히 자라만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그저 감격해할 따름이었다.

주치의로부터 아기를 받은 김씨가 아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울음소리를 듣고 신체 정상 유무를 확인하며 발 도장을 찍는다. 작은 손과 발에는 정확히 다섯 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붙어 꼼지락거린다. 아직은 낯선 세상 빛에 눈이 부신지 꼬옥 감겨진 눈이 좀처럼 떠지지 않는다.

김진석
"역시 엄마 품이 좋긴 좋구나!"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드디어 눈을 뜨며 새까만 눈동자를 은근 슬쩍 공개한다. 가만 보니 요녀석 앙증맞게 윙크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세상의 공기를 맛보려는 듯 콧구멍을 벌렁거리다가 입을 오물거리며 급기야 하품하는 모습까지도 선보인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 갈 듯 고통스러워하던 산모의 얼굴엔 눈물의 흔적조차 희미하다. 아기를 안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를 옆에서 바라보는 김씨 또한 "갑자기 아기의 심장 박동수가 느려져 걱정했는데 아기가 건강히 태어나 그저 감사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렇듯 그 누구보다도 탄생의 신비와 생명의 소중함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김씨에게 근심이 하나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구조 등으로 인해 급격히 줄어든 출산율이 그를 안타깝게 한다.

"저출산율은 범국가적인 문제예요. 왜 아기를 낳으려 하지 않는지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또 많은 어머니들이 일하며 아기를 키울 수 있을 만한 탁아 시설을 비롯한 사회 복지 제도가 하루 빨리 선진국처럼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점점 늘어가는데 아직도 임신과 육아를 뒷받침해줄 사회 복지 제도가 너무 미흡해요.

아기를 낳는 것도 힘든데 차후에 아기를 기르는 건 더 힘든 게 현실이에요. 부모님이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잖아요. 게다가 아이 한 명을 기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도 문제예요. 아이에게 무리하게 과잉 투자하는 부모들의 마음가짐도 좀 바뀌었으면 해요.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과잉 조기 교육 열풍이나 부모들끼리 서로 경쟁하는 명품 투자를 보면 참 안타깝죠."

김진석
이어 김씨를 또 가슴 아프게 하는 이들이 있다. 그 누구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그이기에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김씨의 마음에 애잔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모든 이들의 삶은 전부 다 제각기 나름의 의미와 값어치를 지니고 있어요. 물론 언젠가 사람은 죽지만 죽기 위해 태어난 인생은 없어요. 생명이 다할 때까지는 그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해요. 힘든 순간만큼은 절벽에 떨어질 것처럼 막막하지만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추락한다고 미리 앞날을 단정 짓지 말고 고 순간을 참고 견뎌냈으면 해요.

죽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결국 그 짐은 남아 있는 자들의 몫으로 돌아가 더 힘들게 만들 뿐이죠. 특히 요즘 젊은 세대들은 '죽음'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제발 세상의 다른 면을 한 번 더 보고 남아 있는 자들의 슬픔도 생각했으면 해요."

김진석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김씨가 평가하는 우리나라 복지 정책의 점수는 20점이다. 하나만 낳아 기르는 것도 벅찬 요즘에 아직 미혼인 그녀는 언젠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고 당당히 밝힌다. 미래의 아기들이 풍요로운 사회 복지 정책 안정에 의해 행복했으면 한다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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