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찌노미야(一宮) 마을의 ‘복숭아 공장’

야마나시현(山梨縣) 이찌노미야(一宮) 마을의 복숭아 공동선별장을 찾아서

등록 2003.08.13 16:24수정 2003.08.13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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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나시현의 이찌노미야 마을은 일본 제일의 복숭아 산지이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복숭아밭이 즐비하다. 봄철엔 벚꽃에 앞서 분홍색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 마을에선 이것을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계발해 해마다 그 즈음이면 복숭아꽃 축제를 벌인다.


일본 이찌노미야 마을의 복숭아 나무
일본 이찌노미야 마을의 복숭아 나무장영미
며칠 전 이웃에 잘 알고 지내는 어떤 부인이 이찌노미야 마을로 복숭아를 사러 간다며 나를 초대했다. 그곳에 가보면, 일본의 과일값이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복숭아도 싸게 살 수 있다고 귀뜸해주었다.

그 부인이 그곳에 가는 진짜 이유는, ‘오츄겐(御中元)’이라는 일본의 풍습 때문이었다. ‘오츄겐(御中元)’은 ‘오세이보(御歲모暮)’와 함께 가까운 친지와 신세진 분들께 정성어린 선물을 보내는 일본의 2대 풍습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설 명절 선물과 비슷한 풍습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7월1일 부터 15일 사이에 신세진 분들께 더위에 문안을 올린다는 의미에서 정성이 담긴 선물을 보내는 것인데, 이 시기 보다 늦은 경우엔 ‘더위문안(暑中見舞い)’, 입추를 넘긴 경우엔 ‘잔서문안(殘暑見舞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말하자면 그 부인의 경우도 입추가 지났으니 ‘잔서문안’을 하기 위한 셈인 것이다. 아마도 이곳 명물인 복숭아를 보내기 위해 시기를 늦춘 모양이었다. 가는 길에 부인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 주었다. 미국에 있는,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손자가 그곳에 갔을 때 그곳의 풍경을 보고 “아, 역시 복숭아도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었구나”하더라는 것이다. ‘과연 어떤 곳이길래…’ 나도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우리가 찾아 간 곳은 야마나시현의 후에후끼(笛吹)농업협동조합 산하의 복숭아 공동선별장(共選場) 중의 하나인 ‘이찌노미야 서부지소(一宮西支所)’였다. 이곳의 직원인 오기하라(荻原, 58)씨에 의하면, 이곳에선 이찌노미야 마을의 3개 지구(竹原田, 坪井, 田中)에서 모인 복숭아를 선별· 포장하여 오사카와 동경 및 그 일대로 출하하고 있다고 한다.

복숭아 공동선별장 내부 전경
복숭아 공동선별장 내부 전경장영미
공동선별장 안으로 들어서니 그곳은 그야말로 여느 ‘공장’과 다르지 않았다. 내부는 여러가지 기계 장치들과 컨베이어들로 꽉 차있었다. 컨베이어 위에는 회전초밥집의 접시같은 게 줄지어 올려져 있었고, 이 위에 집하된 복숭아들을 올려 놓으면 무게별로 정해진 포장대 위로 떨어졌다. 그 부인의 손자가 ‘복숭아 공장’이라고 했다는 말에 수긍이 갔다.


산지에서 집하된 복숭아를 선별대 위의 접시 위에 올리는 모습
산지에서 집하된 복숭아를 선별대 위의 접시 위에 올리는 모습장영미
각 포장대엔 8개 들이, 13개 들이, 15개 들이 등의 문구와 상자에 넣었을 때의 모양을 그린 그림이 그려진 종이가 붙어있었다. 포장대 앞에선 2, 3명이 한조가 되어 복숭아에 그물망의 포장을 씌워 상자에 정성껏 담고 있었다.

무게별 포장대 위로 떨어진 복숭아에 그물 포장을 씌워 상자에 담고 있는 모습
무게별 포장대 위로 떨어진 복숭아에 그물 포장을 씌워 상자에 담고 있는 모습장영미

선별이 끝난 15개 들이 상자
선별이 끝난 15개 들이 상자장영미
이렇게 상자에 담겨진 복숭아들은 다시 컨베이어에 올려져 자동으로 포장되며, 기계에 의해 갯수, 품질 등의 도장이 찍힌다. 사람이 이 상자들을 갯수별로 분류해 놓으면 짐을 실어 나르는 자동차가 한꺼번에 싣고 운송차량이 있는 곳으로 나른다.


자동으로 상자를 포장한 후 갯수 및 품질을 표시하는 기계
자동으로 상자를 포장한 후 갯수 및 품질을 표시하는 기계장영미
광센서기로 복숭아의 당도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
광센서기로 복숭아의 당도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장영미

선별장의 한쪽에선 광센서기로 복숭아의 당도를 검사하고 있었다.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전량을 검사할 수는 없으나 반 정도는 검사하고 있다고 한다. 센서기 위에 일일이 복숭아를 올려 놓아 검사하는 일은 어지간히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인 것 같았다.

취재 중 오기하라씨는 3, 4년 전에 이곳에 한국의 정 아무개라는 사람이 연수를 온 적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한국의 전주농협에서 사람들이 와서 이곳의 축제 때 ‘김치만들기’도 했으며 직접 판매도 했었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니 이 마을이 왠지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선 직접 주문을 받아 전국 어디든지 택배로 우송을 해주는 일도 하고 있었다. 가격도 일반 시중가와는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쌌고, 품질 또한 나무랄 것 없는 상등품이었다. 나와 함께 간 부인은 10여장이 넘는 택배 주문지에 받는 이의 주소와 자신의 주소를 일일이 적은 후 대금을 지불했다. 이로써 부인의 ‘잔서문안’이 일단락 된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주소 몇 개 챙겨올걸…’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인은 24개들이 복숭아 한 상자를 사서 함께 나누자고 했다. 서로 식구가 별로 없는 처지라 이것은 아주 합당한 제안이었다. 12개씩 나누고 1250엔을 냈다. 크기도 일반 수퍼에서 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컸는데 값은 반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개중에는 조금 진무른 부분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과일이 잔뜩 있었다. 더운 여름이라고 커다란 수박도 한통 냉장고에 넣어 놓았었고, 그 부인으로부터 받은 족히 1kg은 넘는 델라웨어 포도도 아직 남아 있었고, 손님 치르느라고 사다 놓은 복숭아, 포도, 배 등이 아직 남아 있던 터였다. 거기에다 또 커다란 복숭아가 12개 생겼으니 부지런히 먹지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찌노미야에서 사온 복숭아가 어찌나 달콤하고 물도 많은 지 다른 과일엔 손도 가질 않았다. 집에 남아 있던 다른 복숭아는 장마로 햇볕을 덜 받은 탓인지 맛이 형편없었는데, 이것은 어떤 것을 먹어도 맛이 쳐지지 않고 고르게 맛이 있었다.

일본에 온 후로 정말 오랜만에 과일을 실컷 먹어 본 것 같다. 그 부인의 말대로 일본의 과일값은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을 했었다. 수퍼엘 가도 몇개씩 낱개 포장되어 있고 가격도 비싸서 실컷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복숭아 공동선별장에 가보니 과일값이 비쌀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포장에도 신경을 쓰고 정성을 쏟으니 자연히 값이 비싸질 수 밖에.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를 먹게 해 준 그 부인에게 감사하다는 전화라도 한통 넣어야겠다. 늘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정보도 알려주시는 어머니 같으신 분이다. 본인도 외국생활의 경험이 있으셔서인지 누구보다도 내 처지를 잘 이해해주신다. 덕분에 맛있는 복숭아를 실컷 먹었노라고 한껏 치켜세워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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