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교육권 구걸·애걸해서는 안준다"

[현장] 장애인 교육권 쟁취를 위한 전국 순회투쟁 문화제

등록 2003.08.25 14:58수정 2003.08.2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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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경보를 뚫고 그들은 모였다. 장애인 교육을 지키기 위한 바위처럼.

a 장애인교육권연대는 25일 저녁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폭풍우를 뚫고 '문화제'를 열었다.

장애인교육권연대는 25일 저녁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폭풍우를 뚫고 '문화제'를 열었다. ⓒ 윤근혁

24일 오후 7시 30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TTL광장에 '바위처럼'이란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랫말처럼 대회장 주변엔 '모진 비바람'이 몰아쳤다.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

'장애인 교육권 쟁취를 위한 전국 순회투쟁 문화제'에 참석한 이들은 장애인 반, 일반인 반 모두 100여 명뿐. 하지만 두 발이 없는 박현 장애인이동권연대 사무국장은 "비가 오면 참석한 많은 사람들한테 기억에 더 남을 수 있어 좋다"면서 밝게 웃었다.

참석자들이 입은 노란색 겉옷(몸자보) 앞쪽엔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입니다"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대회장 천장에서 비가 새는데도 이들은 누구랄 것 없이 힘찬 노래를 불렀다. 노란 겉옷 뒤쪽에 적힌 다음과 같은 글귀가 박수를 칠 때마다 움직였다.

"장애인 교육권 확보, 장애인 교육예산 확보, 장애인 교육전담부서 설치, 통합교육 확대."


a 비를 퍼 내는 진행팀들.

비를 퍼 내는 진행팀들. ⓒ 윤근혁

"최악입니다, 최악. 최악이라고요."

도경만 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전교조 특수위원장)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장애인교육권연대는 노들장애인야학, 전교조,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장애우권인문제연구소 등 장애와 교육 관련 14개 단체가 모여 만든 연대기구다.


행사 시작과 함께 진행팀은 합판으로 대회장에 들어오는 물을 힘겹게 밀어냈다. 하늘도 도와주지 않는 행사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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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교육권연대, "교육권 쟁취" 전국 순회투쟁 나서

장애인교육권 지키기 위한 전국 순회

장애인교육권연대 소속 회원 12명이 대전, 충남, 부산, 경남, 광주, 인천 등지를 6박 7일간 순회한 까닭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장애인교육에 대한 무관심을 밀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순회기간 내내 하늘은 비를 뿌렸다.

이들은 18일 순회투쟁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전국 순회투쟁은 장애인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알려내고 법에 보장된 교육권을 찾기 위해 진행되는 최소한의 몸부림이며 장애인들의 절규"라고 밝힌 바 있다.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이렇게 투쟁하고 나선 까닭은 '정부의 장애인교육 홀대 정책 때문'이다. 정부는 이미 94년 장애인에 대한 의무교육과 무상교육 약속을 뼈대로 한 특수교육진흥법을 만들었지만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장애인 단체의 평가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전국 학교에 있는 '복도엄마와 청소엄마들'. 현재 전국 초·중등학교에 장애아를 보내는 학부모는 모두 10만여 명. 이들은 복도에서 서성이거나 방과 후 교실청소를 하는 경우가 많다. 보조교사 한 명 없는 콩나물 교실이 장애아 학부모들을 이렇게 만들었다.<박스기사 참조>

"기대를 모은 참여정부도 지난 3월 특수교육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지만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 되었어요. 기획예산처가 장애인 교육 예산 273억원 전액을 깎아버렸어요. 돈 한푼 없이 어떻게 장애인 교육을 잘 하겠다는 겁니까."

a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 18일부터 7박8일 동안 전국을 누비며 장애인교육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펼쳤다.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지난 18일부터 7박8일 동안 전국을 누비며 장애인교육권 확보를 위한 활동을 펼쳤다. ⓒ 윤근혁

도경만 장애인교육권연대 집행위원장은 "문민정부부터 두 번의 정권이 바뀌었지만 장애인 교육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구걸'하는 장애인에서 '쟁취'하는 장애인으로

문화제가 시작되자 휠체어를 타거나 목발을 짚은 장애인, 두 발로 선 일반 참석자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박준, 류금신, 노래공장 등 가수들과 노래패의 공연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의 목청은 다른 어느 대회보다 우렁찼다.

이날 저녁 10시께 행사 마지막 차례로 무대에 선 박경석 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는 다음과 같이 뼈 있는 말을 던졌다.

"'쟁취, 쟁취!' 아니 장애인이 무슨 쟁취란 말을 합니까. 구걸이나 애걸이 어울리지 쟁취라니요. 망둥이가 뛰니까 장애인도 뛰냐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장내는 술렁였다. 다시 박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장애인한테 교육권은 생명이죠. 그런데 정부는 우리한테 이걸 그냥 갖다주지 않았습니다. 구걸하고 애걸해서는 이것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 힘을 합쳐 쟁취해 나갑시다."

이제야 참석자들은 박 대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구호를 외쳤다.

"장애인에게 교육권은 생명이다. 우리 교육권은 내가 지킨다."
"더 이상 죽을 순 없다. 장애인 교육권 쟁취하자."

"복도 엄마, 청소 엄마는 싫어요"
'장애아 키우기' 만화로 그린 장차현실 씨

▲ 장차현실씨와 그의 딸 은혜.
ⓒ윤근혁
'복도 엄마'를 아시는가. 그럼 '청소 엄마'는?

다운증후군인 딸 은혜(푸른숲학교 4학년, 14). 이 아이를 데리고 초등학교를 세 번씩이나 옮겨다니다 결국 대안학교로 빠져나간 한 학부모가 있다. 최근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 먹자'란 책(한겨레신문)을 펴낸 만화가 장차현실(40)씨. 그가 바로 우리 초등학교 속 '청소 엄마'였고 '복도 엄마'였다.

다음은 그가 이 책에서 그린 만화의 한 부분.

"××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수업 진행하기도 힘들고……." 이 같은 담임 선생님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 교실을 쓸었다. 왜냐하면 "아이의 장애가 그녀의 탓이 아니어도 왠지 죄를 지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청소 엄마'가 전국에 5만5천여 명. 이 가운데 한 사람인 그가 빗자루 대신 붓을 들었다. 그리고 남편 없이 장애아를 홀로 키우는 삶을 그림으로 그려냈다. 이 책에는 글감은 애절하지만 결론은 씩씩한 내용이 담겨 있다.

21일 경기도 양평 자신의 1층 집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 또한 활기가 있었다.

"좋은 선생님도 많아요. 문제는 담임선생님에게도 있지만 그 선생님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지요."

이런 점에서 그는 노 대통령이 공약한 특수교육 발전 방안에 대해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예산처는 이를 위한 예산을 모조리 깎아 버렸다.

"어쩐지, 웬일인가 했어요."
그는 "나라의 따뜻한 품을 느낀 적보다는 개개인의 따뜻한 마음 덕에 견뎌 왔다"고 어정쩡한 우리나라의 특수교육 정책을 비판했다.

딸을 올 3월 대안학교로 전학시킨 요즘, 그는 "한시름 놓았다"고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 학교는 어떤 일이든 대화 창구가 마련되어 있어 믿음이 가요. 학부모와 교사들이 만나 얘기하고 교사와 교사들이 교장선생님과 자유롭게 토의하는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죠. 민주적인 논의 장치가 저를 이렇게 안심시키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장애아들이 이런 학교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장애아를 가르치는 교사들한테 부탁할 말을 빼놓지 않았다. 14년간 절망과 희망을 오가며 딸 은혜를 키워 온 그의 신념이 다음과 같은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힘드시더라도 장애 아이를 보통 아이처럼 대해 줬으면 좋겠어요. 칭찬이든 야단이든 열외를 시키는 속에서 장애 아이는 소외감을 느끼거든요. 반의 구성원으로서 장애 아이를 참여시키고 할 일을 주셨으면 해요. 그러면 장애아도 거추장스런 존재가 아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끼실 수 있으리라 봐요."

*이 기사는 주간<교육희망> 352호에 실은 것입니다. / 윤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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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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