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재판정 모습오마이뉴스 남소연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여성들은 이런 시간을 자녀를 키우고 교육하는 데 우선적으로 써야 하므로, 변호사란 여성들에겐 부적합한 직업이다."
1876년 미국 미네소타 주 법원은 이렇게 이유를 대고 여성에 대한 변호사 자격 수여를 거부했다. 1925년에는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들이 여학생 입학을 반대했다. 여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면, 그 수만큼의 유능한 남학생들이 하버드 로스쿨로 가버릴 것이라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 학교의 2층 계단 복도에는 미국의 두번째 여성 연방 대법원 판사 루스 긴스버그의 초상이 걸려 있다. 긴스버그가 컬럼비아 로스쿨을 졸업했을 때, 그녀를 고용하려는 법률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미국시민권연맹이란 시민단체에 들어간 긴스버그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권리 실현을 위해 정열을 쏟았다. 그리고 클린턴이 긴스버그를 연방 대법원 판사로 임명하자,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미국 사회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는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것을 믿었다.
이제 우리도 그와 유사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부터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취임식은 없었지만 어제로 전임 한대현 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되고, 오늘부터 신임 전효숙 재판관이 실제로 업무를 시작했다.
전 재판관은 시민추천위원회에 의해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관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지만, 추천의 이유나 기대를 거는 까닭이 반드시 '최초의 여성'이란 형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추천이나 기대가 무망한 것이 아니라는 작은 증거로, 이화여대 신인령 총장으로부터 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해 본다.
전효숙 재판관에게는 후학들의 초청으로 연단에 서서 강연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때마다 전 재판관은 정의의 실현이나 제도의 개혁 등 거창한 담론의 대상을 화제로 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입신과 경력을 위인 전기처럼 포장하여 젊은 사람들을 자극하지도 않았다.
전 재판관이 즐겨 사용한 연제의 하나는 여성의 지위였다고 한다. 남자들뿐인 사법시험 1차 시험장 화장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기가 경험한 사실을 담담하게 펼쳐나가는 가운데 저절로 오늘날 여성의 위치와 문제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성이 여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 정도 소박한 감동을 주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전 재판관은 결코 성공한 여성의 입장에서 그렇지 못한 여성의 현실을 지적하는 태도를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남성 위주의 세계 속에서, 항상 해결해야 할 어떤 과제를 안고 있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드러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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