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을 하고 싶으신가요?

낭만 속에 들어 있는 아픔들도 있습니다

등록 2003.09.01 08:26수정 2003.09.0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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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비 갠 뒤 빗방울이 나무잎새를 타고 똑똑 떨어지는 숲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지요? 이른 새벽 밤새 맺힌 이슬방울에 옷을 적셔가며 걸어본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요?


아주 어린 시절입니다.
이른 아침 학교 가는 길은 신작로까지 나가려면 풀길을 헤치고 가야만 했습니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밤새 내려있는 이슬이 신발이며 바짓가랑이를 젖게 하였기에 신발을 벗어들고, 바지를 접고는 풀에 맺힌 이슬을 털며 가야했습니다.

먼저 앞서간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 덕을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간혹은 개구쟁이들이 매어놓은 풀매듭에 걸려서 넘어지는 날이면 윗도리까지 이슬에 흠뻑 젖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그 촌스러움을 잃어버렸습니다.
맨 처음에는 흙을 밟지 않고도 종일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지 몰랐습니다. 비가 와도 신발에 흙을 묻힐 일이 없는 도시생활에 길들여져 가는 동안 마음도 그만큼 각박해졌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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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렇게 어린 시절의 촌스러움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다 어른이 된 후 그 촌스러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독한 향수로, 추억으로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도시생활에 길들여진 나의 삶의 터전은 나를 붙잡고 또 붙잡았습니다.

놓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쌓아놓은 모든 것은 그러면 무엇이냐? 그 시골에 들어가면 너는 잊혀지고 말 것이다. 그랬습니다.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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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나를 붙잡고 있는 것.
나뭇잎이 떨어질 때에는 푸근한 땅에서 쉬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제발 나를 놓아줘!'
간절히 애원했는지도 모릅니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 그 동안 도시에서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던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작은 농어촌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는 어린 시절 늘 보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것을 아이들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감사했습니다.

'그래. 놓아버리니까 이렇게 편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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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이러다가 잊혀지고 묻혀지는 것은 아닐지, 삼분지 일로 줄어든 수입을 가지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인지, 나의 생각을 가족 모두에게 강요한 것은 아닌지….

시골로 내려 온 지 6개월 여까지는 서울에서 만났던 지인들에게 안부전화가 자주 왔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뜸해지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뜸해졌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잊혀진다는 것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으로 길에서 허비하던 세 시간을 글을 쓰고 산책하고 사색하는데 보탰습니다. 그리고 휘발유 값을 삼분의 일로 줄였습니다. 작은 텃밭을 가꾸며 부식비도 줄이고, 아이들은 내가 어린 시절 그랬듯이 학원에 보내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풍족하진 않지만 아주 생활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물질을 쌓아두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우리 집의 재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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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렇게 시골생활에 익숙해지고 지난 시간들을 얼추 계산해 보니 풍성하게 남는 장사를 했습니다. 환절기만 되면 앓던 천식도 없어지고, 아내와 나는 눈이 좋아졌습니다. 아이들은 도시생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지천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그들이 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하지만 마음만큼은 여느 때보다도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를 포기하니 다른 하나가 나를 덥썩 붙잡은 셈입니다.
조금 천천히 가자고 생각했는데 어떤 일들은 훨씬 빨리 나의 삶으로 찾아왔습니다.

도시에서 생활할 때 계획이 있었습니다. 은퇴를 한 후에 작은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집필활동을 했으면 하는 것이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이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내 마음대로 가꿀 수 있는 텃밭이 100여평 있습니다. 그러니 은퇴한 후에나 이룰 수 있었던 꿈을 빨리 이룬 셈입니다.

a 제비나비

제비나비 ⓒ 김민수

물론 낭만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골 생활 1년 7개월 째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도시에서 생활했더라면 보지 못할 것들과 느끼지 못할 것들을 참으로 많이 보고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간혹 친구들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친구니까 좀 솔직하게 얘기합니다. 그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좋게 여기기까지는 남모를 아픔들도 있다. 그리고 포기한 것들도 많고, 감내해야 할 아픔도 많으니 겉으로 드러나는 낭만적인 것만 보고 좋겠다 하지 말라고 말입니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분들 중 많은 경우에 도시의 편리함을 농촌에 그냥 옮겨오고, 전원이 주는 풍요로움을 더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 전원이 주는 풍요로움을 느끼고자 한다면 도시의 편리함들을 어느 정도는 포기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풋풋한 시골 사람들의 인정까지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이웃들과 풋풋한 정을 나누지 못하는 한에 있어서 전원생활은 또 다른 소외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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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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