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딸 도윤이 입니다.박균호
드디어 수학여행 때문에 아내가 집을 비워서 3박4일동안 생후36개월이 채 안된 딸아이를 저 혼자 보살피게 된 것입니다. 퇴근을 하고 놀이방으로 딸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딸아이는 반갑게 저를 향해 "아빠"를 외치며 달려오지만 저는 '엄마 없는 집'으로 딸아이를 데리고 가려니 미안하기만 하지요.
그래서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딸아이가 엄마를 찾기 전에 이런 저런 말을 쉬지 않고 던집니다.
"근데, 도윤아! 엄마가 일이 생겨서 멀리 갔어요. 도윤이하고 아빠하고 며칠 지내면 엄마 돌아올 건데…. 엄마 올 때까지 아빠랑 둘이서 재미있게 놀자. 빨리 집에 가서 아빠가 맛있는 것도 주고 재미있는 책도 읽어줄게."
그런데 제 말을 차근히 듣고 있던 딸아이는 대뜸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집에 가서, 엄마 어딨어? 엄마 어딨어? 하면 안돼요!"
그러니까 엄마는 집에 없으니까 엄마를 찾지 않겠다는 다짐조의 말입니다.
아마도 아내도 이런 상황을 딸아이한테 어지간히 주지시킨 모양입니다. 과연 딸아이는 집에 가서도 "엄마는?" 이란 말을 단 한번도 하지 않더군요. 대신 최근에 재미있어하는 '인터넷 동화 구연'을 보여달라고 난리입니다.
저녁에는 이웃 선생님댁에 마실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댁의 아이들과 문구점에 다녀온 딸아이는 아빠 엄마와 같이 가지 않아서인지 빈손이더군요. 저한테 살포시 다가오면서 하는 말이 "아빠, 도윤이는 아무 것도 안 샀어"라고 말합니다.
그 빈손이 눈에 밟혀서 딸아이와 손을 잡고 문구점에 갑니다. 녀석은 당연히 색칠을 할 수 있는 그림동화책을 집어들었고 제 품에 안겨 집에 오면서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나 내일 꼬꼬마 놀이방에 가서 선생님하고 친구들 하고 같이 공부할 거야."
그러더니 웃음이 사라진 얼굴로 아주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 내일 꼬꼬마 놀이방에 가서 공부 마~니 할 거야."
공부를 많이 하겠다니 결코 미운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왠지 아이답지 않은 그 '포부'가 왜 그렇게 안쓰럽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찾는 딸아이는 단 한번도 엄마를 찾지 않고 저와 색칠공부를 하다 결국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허둥지둥 아이를 챙기고 출근준비를 하는데 딸아이가 결국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출근시간이라 달래줄 시간조차 없이 딸아이를 안고 대문을 나서는데 딸아이가 또 비장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 이제 안 울 거야."
출근을 하고 콧물이 그치지 않던 딸아이가 걱정이 되어서 놀이방으로 전화를 했는데 놀이방 선생님은 딸아이가 기운이 하나도 없고 밥도 잘 안 먹고 '엄마 보고 싶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까 기운이 정말 한없이 빠지고 딸아이가 가엾어지더군요. 엄마가 돌아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말입니다.
퇴근을 하고 딸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녀석은 완전히 무표정 그 자체입니다. 아무 것에도 흥미가 없다는 그 표정을 그 나이의 아이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지요.
그래도 여전히 딸아이는 제 엄마를 찾지 않습니다. 그런 딸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에 데려가서 약을 짓고 집에 돌아와 딸아이에게 콜라를 조금 내밀었습니다. 처음으로 녀석이 웃음을 띠고 생기를 보이더군요.
평소 비판해마지 않았던 '거대 상업 자본주의의 상징' 에게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더군요.
시골의 저의 어머니는 제가 지금 딸아이 나이일 때 제 곁을 3일씩이나 떠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겨우 4살인 딸아이는 36살인 제가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그 아픈 마음을 어떻게 제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수학여행중인 제 엄마가 전화를 걸어와도 녀석은 짐짓 받지 않겠다고 오기를 부리다가 전화기를 제 귀에 대주었더니 한참을 통화합니다. 아빠는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의 몫을 다할 수 없고 엄마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의 몫까지 완전하게 챙기지 못하는 법인가 봅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녀석은 조금 명랑해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녀석이 엄마를 찾고 떼를 쓰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은데 녀석은 엄마를 찾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니 어릴 적부터 너무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에 길들여지고 단련된 것은 아닌가 해서 마음이 아프군요.
오늘 아침은 일어나면서 잠투정도 하지 않고 심지어 저에게 장난까지 거는 여유를 보이던 딸아이 녀석이 혹여 지금 놀이방에서 엄마 보고 싶다며 풀이 죽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단 며칠간의 아내의 부재에도 갖은 곤란한 경우를 겪는 것을 생각하면 홀로 자식을 키우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평소에 절실히 생각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겠지만 그런 분들에 대한 사회, 제도적인 배려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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