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판 그리는 사람이 가장 열성적으로 놀이를 즐깁니다. 멍석 두루루 펴서 깔고 바닥 한번 대빗자루로 쓸고 숯이나 풀을 한 줌 뜯어 그리거든요.김규환
밤은 깊어가고 1시를 넘길 무렵 닭 네 마리를 사들고 왔다. 추석 전날 밤이 깊고 다들 술에 취하여 닭 잡아 죽 쒀 먹는걸 포기했다. 윷놀이를 마치고 각자 마을로 돌아가던 중에 일이 터졌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내가 장난치다가 들고 있던 닭으로 친구 옆구리를 치니 닭이“꽥-” 하더니 죽고 말았다. 살펴보니 창자가 터져 밖으로 나와 너덜거리고 있었다.
“야, 이건 안되겠다. 창시가 터져부렀어야~. 밤새 놔두면 쉬파리 똥 깔리겠는데…”
“논에다 던져 부러!”
창자 터진 것은 논바닥에 던져졌고 또 한 마리는 후배녀석들에게 인심을 써버렸다. 이제 두 마리만 남았다. 차대기에 닭을 짊어지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날 점심을 먹고 심심하던 차 동네 친구들 의중을 물었다. 삶아 먹는데 다들 흔쾌히 동의했다. 물가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야, 형채야! 평지 꼴짝으로 올라와라.”
“알았어. 오토바이 타고 올라갈텡께 먼저 가고 있어라잉.”
“니네 마을이랑, 강례 애들한테는 네가 미리 영만이를 통해 전화해 놓아라. 알았지?”
“지금 출발할 거지?”
“그래, 4시 반에 보자.”
영만이네에서 40인분 백철(白鐵) 솥을 하나 빌렸다. 마늘과 쌀, 소금을 준비하고 닭을 메고 울퉁불퉁한 길을 1km 가량 걸어올라 갔다. 1년에 몇 사람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 농로로 이어지는 다리거리에 예닐곱의 친구들이 돌을 주워와 물가에 솥 단지를 걸고 냇가에 걸린 나무를 한 다발씩 주워 오느라 바쁘다. 그 동안 닭 잡는 건 내 몫이다.
1급수 냇물을 붓고 끓였다. 소금간을 약간 하고 쌀을 나중에 넣어 푹 삶으니 솥에 한 가득. ‘누가 이걸 다 먹을까?’하는 엄청난 양이다. 이동전화가 없던 때라 데리러 간 아이는 이미 와 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규섭이 소식이 감감하다. 기다리다 냉면 그릇에 퍼서 대접에 술을 따라 세 그릇 씩 먹고 있는데 막차가 지나간다.
“아저씨, 닭죽 좀 먹고 가요~”
“종점이 쩌긴디 그냥 가면 된다요. 한 그릇 잡수고 가싯쇼.”
“나까장 먹을 게 있을랑가요?”
“하믄요. 있제라우. 아예 저녁밥으로 몽창드시고 가싯쇼.”
친구들은 고향에 온 탓인지 전라도 사투리를 마구 써댔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말이 종점이지 차 한 대 다니기에도 비좁고 길바닥은 엉망이다. 열댓 명밖에 살지 않은 마지막 마을 평지는 해발 400m가 넘는 곳이다. 젊은 기사는 한 그릇 후딱 떠먹고 먼지를 풀풀 흘리며 버스를 몰고 산 마을로 기어올라갔다.
비가 한 두 방울 오기 시작했다. 솥바닥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규섭이가 허겁지겁 달려왔다. 남은 세 양푼 넘는 분량을 솥째 부여잡고 바닥을 닥닥 긁어 배불리 먹는다. 미안했던지 설거지까지 해놓는다. 이내 날이 어두워졌다.
“그만 올라가자.”
“이걸 다 들고?”
“배부르겠다 뭐가 문제여? 아까 참에도 들고 왔음시롱~”
빗줄기가 굵어지자 비 맞은 닭처럼 잔뜩 웅크리고 서둘러 올라갔다. 남자 19명 중 14명이나 모였다. 비 들이치지 않은 대문간에서 오리 2마리를 걸고 윷놀이를 시작했다. 규섭이와 나는 한 패가 되고 상복이와 영만이, 형채, 인수 등 다른 편에도 똑 같이 여섯 명씩 갈렸다.
상복이가 먼저 시작했다. 윷짝을 자그만 간장종지에 집어넣는다. 손에서 빠지지 않게 “툭툭” 두 번 멍석 위에 쳐서 고르고 손을 뒤집어 “휘휘” 두 번 저어 “훅” 던졌다. 다음 차례는 오늘의 영웅 규섭이다.
규섭이 손에 건네진 윷이 사리인 다섯 ‘모’에 ‘걸’ 한 번으로 말이 엎어서 네 마리가 한꺼번에 나고 말았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먼저 붙은 두 사람은 그걸로 끝이었다. 상복이는 윷 깍쟁이 한 번 만져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다들 어리둥절. 평소 말 많던 인수 왈, “내 참 싱거워서. 에잇 못해 먹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