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의 '바꿔보자' 시각에 동의하며

박소영의 독서이야기(10)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등록 2003.09.06 16:20수정 2003.09.0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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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은... >의 표지 ⓒ 한겨레신문출판사

'네 눈의 깊이는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다.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 없이 너의 깊이가 있느냐.'

이 책을 읽은 뒤 문득 생각나는 문구입니다.


'홍세화'의 이름 앞엔 이방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녔지요. 20년간의 억울한 프랑스에서의 삶은 그에겐 힘든 시간이었을지라도 그의 저서들을 만나는 나에게는 더 없는 유익한 경험이 됩니다.

긴 제목에서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듯 '쎄느강은 좌우를 나눔'은 프랑스가 좌우 동거정부로 나누어 견제와 균형이 잡힌 정치 상황을 이름이요, '한강은 남북을 가름'은 우리의 분단의 단절을 상징하는 표현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지금 남과 북으로만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동서로 더 잘게 쪼개져 있으니까요.

이 땅의 주부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책은 과거에 한국 사회를 살았던 젊은이가 오늘 한국사회를 사는 젊은이에게 프랑스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토론장을 펼치는 지점에서 시작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찌 젊은이뿐이겠는가' 싶어지더군요. 좀더 토론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입니다.

이제 홍세화의 유명세는 갈 데까지 간 상황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이 땅의 주부들에게는 좀 낯선 이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의 저서들이 대한민국 주부들의 필독서가 되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문화비평이라는 형식의 거부감을 떨쳐낼 만큼 그의 글은 문학적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 위에 차근차근 열거되는 우리 사회의 현안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수치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만큼 문제의 심각성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격양된 감정을 추스르느라 중간중간 숨을 한 번씩 몰아 쉽니다. 다행히 문제만 나열하고 있지 않아 확실한 대안을 만날 때마다 유쾌해집니다.

주부들에게 사회적 관심 불러


이 땅의 주부들 또한 이래저래 사회현안에 대한 자신의 식견을 갖출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몰두를 가능하게 하는 책은 쉽게 만날 수 없지요. 홍세화의 책은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이 점에서 저는 그의 저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심정적으로는 사회주의'라는 그의 표현대로 이 책은 기존의 어른들에게는 '남의 것 소개해서 나라 흔들어 놓는' 허황된 내용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이 책의 시각은 '바꿔 보자'는 시각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분단상태를 국가 안보 이데올로기를 아무 데, 아무 때나 끌어와 사회정의의 요구를 막는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있다.'

'이혼을 너무 쉽게 하는 사회도 문제지만, 이혼을 못하게 막는 억압기제가 지나치게 두터운 사회도 바람직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프랑스보다 이혼하기는 매우 어려운데 결혼에 골인하기는 왜 그리 쉬운 걸까?'

'나는 교사들이 스스로 노동자의 길을 당당히 걸어갈 때, 스승의 길도 함께 열린다고 믿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 제 노동의 정당한 대가. 즉 깨끗한 돈에 만족하고 있는 사회계층은 노동자들뿐이다.'

'나는 한국의 교육을 불평등에 기초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사회현실을 보이지 않게 가리면서 합리화시키는 억압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홍세화는 조선일보의 주필 김대중을 과감히 비판하고, 국내 국회의원들에게 가차없는 질책을 보냅니다. 또 교감 선출 보직제 등 우리 사회에 대한 불신감의 원인을 파헤치고 각성을 촉구하지요.

'바꿔보자' 시각과의 대면

그럼, 홍세화는 프랑스 이민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요? 프랑스는 좋고 우리나라는 나쁘다는 단순한 이분법에 편승하다가는 책장을 덮는 순간 막연한 허탈감에 빠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서 떠나자, 떠나고 보자는 심리만이 남을 수 있으리만치 두 사회의 편차가 심하다는 느낌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의도는 '바꿔보자'라는 데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홍세화는 프랑스 사회를 향수와 포도주로 도색하지 않은 만큼 그 사회에서 배울 건 배워 우리도 한 단계 성숙하자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민중에 의해 형성되는 역사에 희망을 걸자고 말하지요.

이 책을 통해 저는 더 큰 영역을 바라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제 생활이 구조적인 틀에 의해 얼마나 좌지우지 될 수 있는가 새삼 체험하는 계기가 됐지요. 특히 이 책에서 밝히는 '사회정의'는 그에게 대중적인 힘을 실어준 '똘레랑스'(관용)처럼 많은 호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 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 프랑스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사회의 초상, 개정판

홍세화 지음,
한겨레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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