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을 꿈꾸지 않는 새장 속의 아이들

아들이 일깨워준 교훈

등록 2003.09.08 08:35수정 2003.09.0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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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거리를 지나다가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 선 새장을 보았습니다. 물론 새장 속에는 형형색색의 예쁜 새들이 암수 짝을 지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작고 고운 빛깔의 어린 생명들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새장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고 말았습니다.

계란을 쥔 듯이 주먹을 쥐면 그 공간 속으로 딱 들어올 만한 크기의 새는 십자매와 카나리아였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앵무새는 중병아리만큼이나 제법 몸집이 커 보였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친 것은 잿빛 앵무새였습니다. 비상을 꿈꾸지 않는 멍하고 슬픈 눈이었지요.

a 새장 속의 새

새장 속의 새 ⓒ 안준철

오래 전에 집에서 새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형제 없이 혼자서 크는 아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생일선물로 십자매 한 쌍을 사 준 것이지요.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아이가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새장을 바라보며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저 새를 하루에 한 번씩 풀어주면 어떨까요? 발에 끈 같은 것을 묶으면 되잖아요."
"왜? 새가 답답할 것 같아서 그러니? 그렇다면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을 거야."

"아니, 왜요?"
"한 번 자유를 맛본 새가 다시 새장에 갇힌다면 더 답답할 게 아니겠니?"

"아, 그렇구나."

아들아이는 알았다는 듯이 더 이상 말이 없더니 잠시 후 혼잣말로 이렇게 말을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이라도 마음껏 날아보면 좋을 텐데…."


그 무렵의 일입니다. 퇴근을 앞두고 집으로 전화를 넣었더니 통화중이었습니다.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몇 번을 더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중 신호음이 들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삼십 분쯤 지나 한 아이와 면담을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보니 현관문을 열어주는 아내의 손에 무선전화기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아내의 눈치로 보아 썩 내키지 않는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네, 그래요… 다들 하는데 걱정이 되기도 하지요. 그래도 저희는 그렇게 결정했어요. 네, 네, 걱정해주셔서 고마운데요… 얘 아빠도 싫어하고요. 내년에는 몰라도 아직은 학원에 보낼 생각이 없네요. 네, 알아요, 그럼요. 걱정이 왜 안되겠어요. 하지만 저희는…."


전화가 몇 차례나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전화를 건 쪽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갔습니다. 아내는 아들의 학원 수강문제로 며칠 째 시달려 오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들아이와 친하게 지내온 동무들이 하나같이 비싼 돈을 주고 과외를 받거나 학원 수강을 하고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불안심리가 가중되어 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아이가 학원수강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며칠째 전화가 줄을 이었고, 그때마다 아내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고 어떻게 대학을 보내려고 하느냐는 식의 얘기를 반복해서 들어야만 했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자녀에게 무책임하다는 핀잔처럼 들리기도 하여 아내의 불편한 심기가 더 심해졌던 것입니다.

아내는 처음부터 아들의 학원 수강을 원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들아이가 늦은 밤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따뜻한 가정의 공간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리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말하자면 학원 수강으로 인해 학교 성적이 조금 나아진다고 해도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이 더 많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무렵 아들에게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공부를 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이른 아침 시간에 아들은 그날 학교에서 배울 내용을 혼자서 미리 예습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기 위해서 가방을 챙기는 아들의 이마에는 언제나 의문부호 같은 것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의문부호는 수업시간에 학과 선생님이 해결해주셨지요. 그러니 학교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이 클 수밖에 없었겠지요.

제 자랑이 되겠는데, 아들아이가 아침 공부를 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 데는 제 공이 좀 컸습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것은 아니고, 아들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약 5년 동안 저도 아들과 함께 일어나 아침공부를 같이 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제가 아들을 깨우다가 나중에는 자명종 소리에 같이 잠이 깨어 차례대로 세수를 하고 각자 방에 들어가 공부를 하곤 했습니다.

방학 때에는 일어나자마자 가까운 산을 찾거나 학교 교정을 몇 바퀴 돌고 와서 아침 공부를 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도 산을 찾거나 학교 운동장을 도는 것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45일 간의 긴 겨울방학을 함께 보내곤 했으니 부자간의 정도 흠뻑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눈만 쳐다봐도 좋을 만큼 말이지요.

그런데 아들과 함께 그런 보람된 시간을 보내면서도 늘 제 마음속에 던지곤 했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지금 자유로운가?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행동은 자발적인가? 혹시라도 부모로부터 맹목적인 성실을 강요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는 비상을 꿈꾸지 않는 새장 속의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들아이는 중3이 되어 사춘기를 겪는지 학교 성적이 좀 떨어졌는데 그때 성적을 올릴 생각으로 입시학원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2개월쯤 다니다가 그만 두었지요.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학원 수강으로 성적이 조금 오르긴 했지만 남이 해준 공부 같아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적은 올랐지만 실력이 오른 것 같지 않다는 것도 아들이 말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최근의 일입니다. 어느 모임에 나갔다가 초등학교에서 특기적성 시간에 한문을 가르친다고 자기를 소개하신 분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어 자연스럽게 이런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아이들이 한문을 재미있어 하나요?"
"예. 그런 편이에요. 아이들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되고요."
"한문도 일종의 문학인데 한시 같은 것도 배웁니까?"
"그런 것을 배워야 실력이 깊어지고 아이들도 흥미 있어 하는데 학부형들이 싫어해서 많이 배우지는 못해요."

그 이유는 들어보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런 대답이었습니다.

"학부형들은 오로지 자격증이나 급수 시험에만 관심이 있어요. 아이들은 모처럼 한문을 재미 있어하다가 시험 때문에 결국 흥미를 잃고 말지요. 그런데 그 자격증이라는 것이 사실은 별 쓸모가 없거든요. 그래도 남들이 따니까 따야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결국 그 아이는 소중한 시간과 비싼 돈을 지불하고 학원 수강을 했지만 그로 인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 셈입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은 자녀를 배움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부모가 그의 삶을 전적으로 대신하려는 잘못된 태도 때문이지요. 아이들은 새장 속에 가두어놓고 부모가 대신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우리 나라 청소년들은 세계교육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최장 시간 수업을 하거나 자습을 하면서 딱딱한 교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거리에 청소년들이 없는 것을 보고 외국인들이 깜짝 놀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최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사교육비 경감을 이유로 방과 후 학교 안에서의 과외 허용 방침을 내놓은 것을 보면 교육에 대한 기본인식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학교교육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 이 사회에 팽배해있는 학부모들의 불안심리를 없애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교육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일과는 무관합니다. 오히려 국민들이 교육에 대한 건강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계몽하고 설득하는 것이 교육정부가 할 일입니다.

교육은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새장을 활짝 열고 그들이 날아갈 푸른 창공을 보여주는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미물들의 삶과 교육방식이 그러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오만한 우리 인간만이 타율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라도 학교는 비상을 꿈꾸는 아이들로 가득 차야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사회도 희망이 있습니다. 정부의 교육개혁이 배움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교육은 그 순수한 목적(배움의 기쁨)에 부합할 때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 아들이 저에게 일깨워준 교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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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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