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길만 골라서 가고 있는 한나라당

[서영석 칼럼] 왜 한나라당의 전략적 목표는 거꾸로 달성되는가

등록 2003.09.09 09:45수정 2003.09.0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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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국정브리핑 창간할 때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안다. 뭐, 그렇다고 큰 역할 한 것은 아니며, 회의 두 세 번 참석한 것이 고작이다. 정치전문 프리랜서 기자를 자임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먹고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필자의 역량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일종의 생존철학이다.(단, 수고의 댓가는 반드시 받는다)

말은 거창하게 편집자문위원이지만, 진짜로 편집에 자문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다만 회의가 있다면 달려가서 한마디 하는 것이 거창한 편집자문위원의 할 일인데(공무원들이 만든 자문조직이 대개 그렇지 않은가), 그마나 창간 이후에는 회의 한번 열지 않았으니 역시 별 역할을 할 계제가 못된다.

이런 넋두리 하려고 이 말 꺼낸 건 아니다. 어제 국정홍보처 관계자를 만났더니, 한나라당에서 국정브리핑 편집자문위원 명단을 달라고 요구해서 줬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필자 이름을 딱 찍어서 거론하면서 무슨 불만을 토했다고 얘기하는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꺼려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필자 같은 사람이 국정브리핑에 계속 간여하면 재미 적어~~ 뭐 이런 식이 아니었는가 짐작되기는 한다. 한나라당에 대한 필자의 쓴소리가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거대 야당 덕분에 그나마 몇푼 되지 않는 자문료 챙기는 것도 앞으로 힘들어질 모양이다.

사실 필자의 한나라당에 대한 감정은 일종의 애증(愛憎)이 교차한다고 하는 종류의 것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한나라당과 조금이라도 관련을 맺고 있는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심지어 조선일보에서도 한나라당의 한심함에 대한 증오와, 그래도 노무현 정권과 각을 세우는 유일무이한 집단이란 점에서 보내는 사랑(?)이 교차하고 있다는 징후를 보곤 한다.

필자는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과 신한국당을 오래 출입했었기 때문에, 또한 필자의 출신지가 한나라당 지지지역과 겹치기 때문에, 한나라당에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은 많다.

하지만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이다. 과거 한나라당도 잘못 나갔고, 지금도 최악으로 가고 있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자 민정당 출신인 최병렬 대표 체제 아래에서 그런 잘못은 더욱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은 최악이라는 기록을 계속 갱신하고 있다. 더 나빠질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만 줄달음치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지금 한나라당 지도부나 민정당 출신 주류들이, 자신들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점이다. 그리고 입만 열면 개혁을 떠벌리는 한나라당 초선들, 이른바 '청년 수구'들 역시 현실인식이란 측면에서는 노땅 척결대상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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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전에 한번 지적한 일이 있지만 지금 한나라당의 전략상 오류는 그들의 주적(主敵)으로 신당이 아닌 노무현 대통령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거의 결정적인 오류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무자비한 공세의 대가가 과연 뭔가. 이 나라의 이른바 몇 안되는 주류들, 혹은 조선일보의 화풀이로는 제격일지 모르나,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저렇게 많은 국회의원을 뽑아줬는데, 맨날 하는게 쌈질이냐"는 인상밖에 못주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지금 국민들의 보편적인 정서는, 그들이 진보든 보수든 간에, 정치판이 새롭게 개혁되기를 열망하는 쪽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수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사람들마저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이 시대 개혁의 조류 때문이란 것을 인식하고 있다. 당연히 이에 맞춰 보수를 대변하는 집단도 리스트럭춰링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얘기다. 잠재적인 한나라당 지지성향의 사람들의 압도적인 정서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을 주적(主敵)으로 설정함으로써, 당연한 결과로 변화의 개혁 그 자체를 적대시하고 있는 셈이 돼 버렸다. 어떻게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기대할 것인가. 노무현 정권의 인기가 떨어지면 한나라당 인기가 올라가야 하는데도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사정에서 연유한다. 딱하게도 한나라당은 아래나 위나 철저하게 이런 반성과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의 의결에 한나라당은 많은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다수야당의 맛 좀 볼래??? 우리도 화나면 무서워... 뭐 이런 생각이었을 게다. 그래서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이자 민정당 출신인 최병렬 대표가 직접 나서서 '퇴로 없는 전쟁'이라는 공갈도 치고, 도대체 왜 그 자리에서 왜 그런 악역을 맡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홍사덕 총무도 '노무현 정권 6개월의 중간평가'라는 엉뚱한 소리를 해대며, 청년수구들을 몰아붙여 어떻게든 건의안은 의결을 시켰었다. 그 결과가 어떤가. 자기 당의 박희태 전 대표와 경남 지역 의원들에게 사망선고를 내린 격이 되고 말았다.

모 방송사가 남해 하동 지역에서 비공식 여론조사를 했더니 다음 총선에서 김두관-박희태가 대결한다면 더블 스코어차로 김두관을 지지하겠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사실 신당바람이니 뭐니 해도 아직은 부산-경남은 무풍지대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 무풍 지대에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면 신당의 대의도 좋고, 뭣도 좋지만 역시 핵심은 사람이다. 한나라당이 당력을 기울여 한 행동의 댓가가 경남지역의 신당 간판을 만들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고도 최병렬 대표는 정기 국회 국정감사 때 김두관 장관 출입을 금지시키겠다느니, 강경투쟁도 불사하겠다느니, 김두관 장관 키워주는 일에 전력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심한 전략적 사고다. 그러다가 추석 끝나고 김두관 장관이 자진 사표라도 내면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미 한나라당에 대해 '사대주의 정당'이라는 등 있는대로 할말 다 쏟아낸 판인데, 욕만 실컷 얻어먹고 인심만 잔뜩 잃고, 그야말로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 것 아닌가.

더 웃기는 꼬락서니는 한나라당의 이른바 '청년수구들'의 움직임이다. 국정감사와 예산심의에 전력해야 하니 내부 개혁투쟁은 잠정 중단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들에게 정기국회는 한판 뜯어먹는 잔칫상이다. 게다가 내년에는 선거마저 있으니, 국정감사에서 한건 해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나야 다 선거운동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산안 심의는 또 어떤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예산이 어떻게 배분돼야 나라가 잘 운영될 것인가 하는 점에 관심 갖는 의원은 별로 없다. 이들은 예산 심의 때 어떻게든 자기 지역구에 조금이라도 더 예산을 따내 다음 선거때 "필사의 노력으로 한건 했다"고 큰 소리 치는 것이 당면한 목표다. 그런 잔치상이 앞에 있으니 당 개혁이고 나발이고 관심 없다, 뭐 이런 결과로 낙착된 셈이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어제 무슨 회의에서 "할만큼 했고,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면서 "이제 당력을 집중해 대여투쟁에 나서고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에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나라당은 전혀 할만큼 한 일도 없고 상황이 바뀐 것도 없다.

왜 그런가. 떨어진 한나라당 인기, 실추된 한나라당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정기국회 국정감사도 좋고 예산심의도 중요한 일이지만, 부단한 당내 개혁 노력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잠재적 지지계층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다.

민주당은 뭐 이런 잔칫상을 몰라서 당내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줄로 아는 모양이다. 한나라당에게 더 시급한 일은 대 정부 투쟁이 아니라 대 신당투쟁이다. 신당과는 그 질적인 측면에서 다를 것이고, 달라야 하겠지만, 부단한 내부 갈등을 통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이래 계속 해먹고 있는 낡은 세력의 척결, 이런 종류의 개혁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당내 개혁 논의가 없는 인적 청산 갈등이 어떤 모양새를 띠게 되는지는 민주당 갈등이 120% 보여줬다. 한나라당 청년수구들은 정기국회 끝나고 나서 뭐 어쩌겠다, 이런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하는데, 정기국회 끝나고 인적 청산 갈등에 휘말리면 바로 선거다. 사분오열된 당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선거를 맞이하든가, 아니면 개혁없이 선거에 임해야 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인적 청산 갈등은 본질상 오래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주류인 민정당 출신들로 다음 선거를 맞이하게 되면 그 상대가 누가 되든 백전백패라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런 인식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한나라당은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을 살펴보면 이런 개혁과 인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필자가 한나라당에게 희망이 없다고 여러차례 주장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한나라당은 필자의 이런 지적을 새겨 들어야 한다. 괜히 필자에게 시비만 걸지 말고.

(사족) 최병렬 대표가 취임한 뒤 디지털 정당화하겠다고 거창하게 공약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디지털 정당 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김형오 의원이 그 자리를 팽개쳤다고 한다.

김형오 의원은 "최 대표 취임 이후 '한나라당이 디지털 정당으로 변모한다'며 기대치만 잔뜩 부풀여 놓고 정작 지원은 아무 것도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짜냈더니 중앙당 사무처에서는 "배분할 예산이 없으니 홈페이지를 대충 뜯어고치는 것으로 마무리 짓자"고 했다는 것이다.

김형오 의원은 "홈페이지 몇몇 부분을 뜯어고치기 위해 추진위원회를 만들었다면 웃기는 얘기"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이것이 한나라당의 실상이다. 한나라당 초선의원들이 '청년수구'란 욕을 얻어먹지 않으려면 사고와 인식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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