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2주기... 테러 위협에 '촉각' 호주

[르포] 잇단 적신호에 보안당국 긴장... 보수언론 분위기 조성

등록 2003.09.11 16:01수정 2003.09.1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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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시내 중심가. ⓒ 허겸


9·11 테러 2주기를 맞아 미국 등 주요 동맹국을 중심으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호주 정부가 전문가들의 잇단 테러 위협 경고에 따라 대(對)테러 정책을 전면 조정하고 나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같은 움직임은 이라크전 참전 이후 높아진 테러 위협에 대한 호주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의지로 풀이될 수 있어 향후 테러 가능 시기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와함께 테러 관련 특집물이 보수성향 언론을 중심으로 연일 쏟아지고 있어 9·11 테러 2주기를 맞는 호주 사회를 급속도로 냉각시키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한달 앞으로 다가온 발리 폭탄 테러 1주기를 앞두고 점차 고조될 전망이다.

제2의 '9·11테러' 우려 항공보안 강화

호주 정부의 대테러정책은 항공보안 강화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미국이 호주 등 주요 동맹국에 항공기 테러 가능성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호주 국영 'AAP 통신' 5일자 보도에 따르면 항공 안전에 관한 의회 조사위원회에 참석한 호주국립대의 클라이브 윌리엄스 교수는 화염병이나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주류 등의 기내 반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테러 전문가로 초빙된 그는 이날 위원회에서 테러리스트들이 깨진 병을 무기로 사용하거나 알코올이 담긴 병을 화염병으로 사용할 수 있어 주류 등 병 종류의 기내 반입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앞서 지난 4일 열린 연방 정부의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은 현재의 비행 시스템으로는 어떤 비행기든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공항 등 주요시설에 접근할 수 있다며 허술한 보안 체계를 지적했다. 호주 비행협회의 한 관계자는 아미달, 밀두라, 알베리 등 고위험 지역을 비행하는 소속 회원들이 잠재적인 미사일 테러 가능성에 불안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호주 정부는 민간 여객기를 상대로 한 테러리스트들의 지대공 미사일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국적 항공사인 콴타스(Quantas)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콴타스, 테러 가능성 놓고 '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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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팝업 창 ⓒ SMH 인터넷판

존 하워드 호주 수상은 "민간 여객기에 대한 지대공 미사일 공격 가능성이 항공기 납치 테러보다 큰 것으로 본다"며 "이에 대비하기 위해 여객기 내부에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장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콴타스 항공측은 미사일방어시스템의 효용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 5일자 보도에 따르면 항공사의 최고경영자(CEO) 지오프 딕슨은 견착 미사일 공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좀더 균형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사일 위협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콴타스 항공측의 이같은 판단에는 감당 못할 비용에 대한 현실적인 고려도 있었다.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보잉 747이나 767 기종에 설치하기 위해선 6억 9200백만 호불의 예산이 들어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콴타스 항공이 지난해 보안 유지비로 투입한 예산은 모두 1억8000만 호불로 이는 전년대비 46% 증가한 수치였다.

따라서 딕슨 회장은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공항 주변 지역에 대해 정부가 집중적인 검문, 검색을 실시하는 것이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드니 올림픽 당시 연방경찰 보안감독관을 엮임한 폴 맥키넌은 검문·검색만으로 공항 주변에서 발사될 지 모를 지대공 미사일 공격을 막아내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사정거리가 5.5km인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 SA-7의 경우 발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단 6초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시드니 공항 괴한 침입... '구멍 뚫린' 공항 보안

이처럼 항공 보안에 국가적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지난달 27일 밤 두 명의 괴한이 시드니 공항 세관에 침입해 두 대의 메인 컴퓨터 서버를 도난해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나서 이같은 내용을 속보로 타전한 'AAP 통신'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컴퓨터 기술자 차림의 이들은 위조 신분증을 통해 1급 통제구역인 격납고 내 세관에 침범한 뒤 두 시간 동안이나 현장에 머물며 컴퓨터를 해독해 중요 정보를 빼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연방 야당인 노동당은 허술한 보안 시스템을 들어 연일 정부 여당을 성토하고 나섰다. 상원의원이자 노동당 관세 대변인인 마크 비숍은 "호주 안보에 직결되는 세관 시스템이 이처럼 허술하게 운영되는지 몰랐다"며 "회기중 크리스 엘리슨 연방 관세 장관에게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엘리슨 장관은 호주 최정예 첩보기관인 DSD가 이번 사건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결과를 지켜보자고 답했다. 법무부 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이 세관의 문제일 뿐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는 아니라며 애써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테러 '특수(?)' 틈탄 테러 보도 '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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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오스트레일리안> 5일자 1면. ⓒ 허겸

한편 테러 가능성을 우려하는 언론 보도가 연일 계속돼 9·11 테러 2주기를 맞는 호주 사회에 한류가 흐르고 있다.

보수성향의 전국 일간지 <디 오스트레일리안>의 경우 이달초 테러 관련 기사를 3일 연속 1면 머릿기사로 다루는 등 이같은 분위기 조장에 앞장섰다. <디 오스트레일리안>은 지난 3일 '바시르 4년형 선고(Bashir jailed for four years)' 기사를 통해 인도네시아 법원이 테러 조직 연계 의혹을 받고 있는 바시르에 대해 경미한 형량을 선고한 것을 우려하는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어 4일에는 '민항기 대상 미사일 테러 위협(Missile risk new terror for airlines)' 기사를 통해 지대공 미사일 테러 가능성을 둘러싼 국내외의 논란을 전했고, 다음날인 5일에는 '호주의 테러 거점 갈수록 증가(Australia's terror web grows)'라는 보도를 통해 콴타스 항공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무슬림계 호주 시민권자의 알 카에다 접촉 의혹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밖에도 인터넷 <뉴스닷컴에이유>나 상업방송 채널에서는 호주에 체류중인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알 카에다간의 연계 의혹을 파헤친다는 명목으로 중동 출신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이들 언론들은 주로 CIA 등 정보기관의 말을 인용해 호주가 국제테러 조직 네트워크에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같은 테러 보도의 '홍수'로 호주 사회는 빠르게 보수화되어가고 있다.

테러 위협 속 동요 않는 한인 사회

그러나 호주 한인사회는 테러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전반적으로 평온한 가운데 한인촌을 중심으로 한가위 명절을 되새기는 분위기다.

캠시에 거주하는 김현종(52. 타일업)씨는 "한인 라디오방송을 듣다보면 테러에 대한 얘기를 가끔씩 듣게 된다"며 "하지만 우리같이 그날그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테러 얘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호주지부의 제이 권(28)씨도 "업무의 특성상 외부에 돌아다닐 일이 많지만 거리낌 없이 다닌다"며 "비지니스에 몰두하느라 테러 위협에는 사실 커다란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재외공관측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성이 없다며 익명을 요구한 주 시드니 총영사관의 한 영사는 "미국과의 유대관계로 호주가 테러의 표적이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체감 분위기는 그리 심각하진 않지만, 테러 개연성이 있으므로 미국 관련시설 등을 이용할 때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테러 위협에 대해 호주 사회주의자 동맹(Socialist Alliance) 소속 루이자 아나(21. 시드니대)씨는 미국과 우방국이 뿌린 만큼 거두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출신 이민자인 그녀는 "국제사회에서 악명높은 미국의 횡포가 결국 '테러'라는 형태의 반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뿌린 만큼 되돌아 오는 '증오의 씨'와도 같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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