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민주인사 입국 추진 '반쪽행사' 우려

한민련 유럽본부 이영준씨 "명예회복과 귀국보장 거절"

등록 2003.09.12 12:07수정 2003.09.1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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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강구섭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다 간첩 등으로 몰려 입국이 금지돼왔던 해외거주 민주인사들의 고국 방문이 당국의 '선별 입국조치'로 자칫 반쪽짜리 행사로 전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달 초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범추위. 공동대표 최병모·천정배 의원)는 정부와 협의, 그 동안 귀국이 허용되지 않았던 해외민주인사 60여 명에 대해 조사없이 귀국을 보장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재독작곡가 고 윤이상(1995년 사망)씨의 부인 이수자(78)씨, 곽동의(74) 한통련 의장, 고 이응로 화백의 조카 이희세(72)씨 등 총40여 명이 오는 19일 고국 방문길에 오를 예정이다.

유신정권 시절 반국가단체 선고를 받은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등에서 활동한 해외민주인사들은 군사독재 시절 유럽·일본 등지에서 민주화운동을 했으나 간첩 등으로 몰려 고국방문 조건으로 반성문이나 전향서 작성을 강요받았으며, 그간 여권조차 발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공식사과 없는 명예회복은 없다며 귀국허용을 거절한 인사들이 생겨나고, 특히 국정원이 재독철학자 송두율(59) 교수 등 3명에 대해서는 '조사 후' 귀국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히자 송 교수 등이 입국을 포기하면서 이 사안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한편 이런 가운데 한민련(한국민주민족통일해외연합) 유럽본부 소속 이영준씨가 11일 밤 <오마이뉴스> 제보란을 통해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거절한다'는 요지의 글을 보내왔다. 이씨는 범추위가 귀국허용을 요구해온 대상자 64명 가운데 포함돼 있다.

이씨는 글에서 "해외민주인사들의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정한 명예회복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조작된 간첩단 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죄와 보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씨는 또 현재 국내 현실이 "조선조 말과 다를 게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귀국한다는 것은 한총련을 이적단체의 성원으로, '일본침략군 성노예 할머니'들을 다시 일본놈들의 희생물로, 친일파 자식들의 원죄를 옳은 것으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전향서, 반성문의 유혹을 뿌리치고 지금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나의 내면과의 약속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번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이란 행사를 거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끝으로 이씨는 이번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 사업이 "사분오열되어 있는 국내 운동권이 통일운동을 향해 새롭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간 해외민주인사들의 귀국허용을 추진해온 범추위측 임종인 변호사는 1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수구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내 사정을 고려해 달라"며 "일단 들어와서 과거 행적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진상규명에 노력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밝혔다.


"일단 들어와서 진상규명위해 노력해 달라"
범추위 임종인 집행위원장 인터뷰

▲ 범추위 임종인 집행위원장(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범추위)는 정부의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 및 귀국허용 방침에 따라 오는 19일 귀국하게 될 인사가 총 40명선이라고 밝혔다.

애초 범추위에서 추진한 입국인사는 총 64명. 하지만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 등 3명에 대해선 정부가 '선조사, 후귀국' 방침을 고수함에 따라 입국이 좌절되었고, 정부의 사과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요구한 인사들은 이번 입국자 명단에서 빠졌다.

이러한 이유로 '반쪽짜리' 행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해 범추위측은 "수구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내 사정을 고려해 달라"며 "일단 들어와서 과거 행적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고 진상규명에 노력해 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의 '조사 후' 귀국 방침에 따라 입국이 좌절된 송두율(독일 뮌스터대 철학과 교수), 김영무(독일 쾰른 거주), 정경모(일본 '씨알의 힘' 대표) 등 3인에 대해서는 "우리(범추위) 역시 원하지 않는 방식"이라며 "이들이 조건 없는 귀국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12일 이뤄진 범추위 임종인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

- 19일 입국이 확정된 해외인사는 총 몇 명인가.
"한통련 소속 30명, 유럽쪽 6명, 미국 2·3명 등 총 40명 가량 될 것 같다."

- '반쪽짜리' 명예회복이라며 정부의 귀국허용을 거절한 인사도 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 들어오는 분도 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귀국조건으로 내세운 분도 있는데, 뜻은 이해하지만 어려운 일 아닌가. 보수수구세력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국내 상황에서 이번 귀국은 어렵게 추진되었다. 일단 들어와서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 정부가 '선조사'를 내세워 송두율 교수는 이번에도 입국이 좌절되었다.
"조건부 입국은 우리도 원하지 않는다. 조작된 사건을 왜 본인이 입증해야 하나. 앞으로 송 교수의 입국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그간 해외민주인사들을 '간첩' 등으로 몰았던 것에 대한 정부의 사과는 있나.
"없다. 당장은 힘들어도 국내에서 진상규명을 위한 밑거름이 돼달라."

- 19일 입국하는 해외인사들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
"19일 입국 직후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범국민 환영행사를 하고, 광주로 내려가 5·18 묘역에서 참배를 한 뒤 부산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그리고 22일 서울에서 마지막 행사를 가진 뒤,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 박형숙 기자

다음은 이영준씨가 <오마이뉴스> 제보란을 통해 보내온 자신의 '입장' 전문이다.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에 대한 나의 입장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의 여러분들에게 노고와 성과에 대해 우선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여러 신문방송매체의 기사와 KBS에서 방영된 해외민주인사들의 삶에 대한 소식은 그 나름대로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데 있어서는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진정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는가라는 물음을 화두로 잡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엔 충분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우선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이란 어떤 목표를 추구했는가하는 점이 부각되지 못한 점 아쉽습니다. 그간 운동을 하다 중앙정보부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귀국한 사람도 있고, 그를 거부하고 오늘까지 있는 사람도 있기에 해외에서 운동을 한 민주인사들이 모두 같은 내용의 민주화를 추구했느냐고 묻게 되면 그렇치 않다는 말이 먼저 나오게 됩니다. 때문에 고향을 안간 것이냐, 혹은 못간 것이냐부터 이야기가 되어져야 되리라 믿습니다.

방송에서 알 수 있듯이 간첩단은 중앙정보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그 간첩단에 연루된 사람들은 무엇을 한 사람들이냐는 질문도 나오게 됩니다. 만약 그들이 방송에서 이야기한대로 중앙정보부의 조작으로 일신상의 불이익을 받았으면 그들은 마땅히 국가로부터 그에 대한 사죄와 아울러 손해보상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계기가 없이 일반적으로 이곳 유럽에서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한 우리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고향에 가고 싶어서, 혹은 나 개인의 노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서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국내 여러분들의 혹은 국민들로부터 동정을 사기 위해 한 일은 더욱 아닙니다. 물론 우리도 사람인데 왜 그런 애타는 심정이 없으며 그런 처지를 모르겠습니까.

허나 조국의 민주적 발전과 겨레의 화합이란 원대한 목표는 외세를 철수시키고 나라를 평화적으로 통일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 우리는 비록 해외에서나마 마음을 함께하여 독재와 싸우고 미제를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는 데 기여하자는 큰 포부를 갖고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는 민중이 역사의 주역으로 자리잡아가는 민주화를 바랬기 때문에 무엇이던 조그마한 결정도 '우리'라는 복수가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을 행동의 기본으로 삼고 일했고 또 오늘도 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 길과 이런 방법만이 나라의 주권을 찾고 겨레의 존엄이 역사에 자랑차게 자리매김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거리로 나오고 반독재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주변정세를 보면 마치 우리가 조선조 말을 살고 있는 듯 환상을 하게 됩니다. 이웃 일본은 지난 시기 이웃나라를 침략하고 우리 민족의 재부를 강탈한 죄악상에 대한 참회도 없이 또다시 세계 제2의 군사대국으로 치닫고 있는데, 나라의 살림과 국민의 생명을 책임졌다는 국회와 정치인들은 판잣집 짓고 허물듯 사색당파노름이나 하고 있습니다.

주권회복과 민족의 존엄을 찾기 위해 젊음을 불사르는 한총련 학생들을 이적행위를 한다고 마구 잡아 죄인으로 만드는 사회. 남자들만의 세상이었던 조선조 말 제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해 억울하게 젊은 시절을 일본침략군들의 성노예로 희생당하게 한 민족공동의 책임도 지지 않고 늙으시고 쇠약해진 할머니들에게 책임을 전가한채 개인 욕심만 채우려는 정상배들이 판치는 세상.

이완용의 자식들은 민족을 팔아 얻은 땅을 실정법이 어떻고 하며 다시 찾게 해주고, 민족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온 독립투사 자식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는 민족정기가 거꾸러진 나라.

이러한 나라에서 받는 명예회복이란 그간 낯설고 물설은 해외의 어려운 처지에서 운동한 우리에게 무엇이며 민족정기가 회복되지 못한 그러한 나라에 귀국한다는 것은 우리 해외 민주운동권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자문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귀국한다는 것은 운동의 차원에서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한총련을 이적단체의 성원으로, '일본침략군 성노예 할머니'들을 다시 일본놈들의 희생물로, 친일파 자식들의 원죄를 옳은 것으로 인정하는 꼴밖에 무슨 다른 큰 의미가 있는가 생각됩니다.

하여 나는 이번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이란 사업을 통해 국내 운동권이 사분오열이 아닌 통일로 치닫는 새로운 계기가 되고 민족자주를 찾기 위한 심도있는 운동으로 발돋음하기를 바라면서, 아울러 내가 나의 내면과의 약속에 충실하기 위해서 이번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이란 행사를 거절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립니다.

2003년 9월 10일 베를린 이영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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