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원
“야, 나 날 잡았어. 다음 달 19일이다.”
“그래? 축하한다. 결국 결혼 하긴 하는구나.”
“그래 고마워. 그리고 알지? 부탁 좀 하자.”
“무슨 부탁?”
“자~식 알면서, 사회 좀 보라고.”
“또 나야?”
“야 그럼 볼 사람이 누가 있냐? 그냥 하던 사람이 해.”
얼마 전 친구와 전화로 나눈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터인지 친구나 선후배들의 결혼식이 있으면 으레 제가 사회를 보게 됐습니다. 첫 시작은 군을 막 제대했을 무렵이었습니다. 요즘 추세로 보자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나도 결혼하는 친구가 생기는구나' 하고 설레는 기분으로 식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회를 보기로 했던 친구가 식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떨려서 못하겠다며 시쳇말로 '드러누워'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까지 모인 자리에서 “그럼 네가 해라”, “그런 말하는 네가 해라”하며 옥신각신 말다툼이 벌어진 것입니다. 신랑은 신랑대로 “소심한 인간들”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아이! 알았어, 알았어. 내가 할게. 빨리 들어가! 하여간 인간들하고는….”
저도 모르게 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습니다. 순간 친구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 된 것이었습니다. 제 예식장 사회의 출발은.
그 다음부터는 거의 자동이었습니다. “너 예전에 해 봤잖아”하는 한 마디는 더 이상 저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금까지 착실히(?) 경력을 쌓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사회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그리 어렵다거나 크게 할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식순을 못 외우면 어쩌나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예식장에서는 아주 친절하게도(?) 식순은 물론, 그때 그때에 맞는 멘트까지도 일목요연하게 적은 종이를 준비해 놓습니다. 또 요즘은 도우미를 하시는 분들이 뒤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적절하게 일러 줍니다.
요컨대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하객들 앞에 선다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주위의 사람들은 한사코 제게 사회를 미룹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주 능수능란하게 언변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말투라도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요.
어쨌건 식순이야 다른 결혼식이나 엇비슷하겠지만, 예식마다 다른 멘트가 들어갈 때가 있긴 합니다. 바로 주례 선생님을 소개하는 순서입니다. 각기 걸어오신 길이 같지 않으니 그 소개가 다른 것이야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요즘은 흔히 말하는 '대타' 분들과도 종종 호흡을 맞추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의 소개는 그리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본인들께서 알아서 식순이 적혀 있는 종이에 <아무개 재단 이사> 정도로 간략하게 적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곤혹스러운 경우는, 양가 중 한 쪽에서 소위 '한자리' 한다 하는 분들을 모셨을 때입니다. 그런 분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읽는 제가 민망해 질 정도로 긴 소개가 따라 붙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친구의 결혼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친구에게 어떻게 소개를 하면 좋겠냐고 묻자 적어 오겠다더니, 잠시 후 말없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대충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오늘 주례를 맡아 주실 분은, 00대학과 00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시고 xx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시고 미국 아무개 대학에서 연수과정을 거치시고 00신문 편집장을 거치신 후 현재는 00연구소 소장으로 계시며 00기관 자문위원과 xx대학 겸임 교수로 계신 김아무개 선생님이십니다.'
맥빠진 웃음이 나왔습니다.
"야 이거 뭐야. 네가 쓴 거야?"
"아니 그 분이."
친구 역시 쑥스러운 웃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본인이 썼단 말야?"
"아이, 그냥 읽어 줘. 어른들 다 그렇지 뭐."
"이거 무슨 입사지원서도 아니고 뭐야. 오늘이 너 결혼식 날이지, 이 사람 면접 보는 날이냐?"
어쨌든 친구는 잘 부탁한다며 등을 떠밀었고, 저는 그 분이 원하시는 대로 읽어 드렸습니다. 짧지 않은 문장이라 "오늘 주례를 맡아 주실 분은" 까지 읽은 후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들여 마신 후 나머지 부분은 단번에 읽어 내려가려 했지만, 흡연자라 그런지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결국 "00신문 편집장을 거치신 후" 까지 읽은 후 한번 더 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아무튼 제 말이 빨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하객 사이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나던 건 헉헉거리는 저를 보며 킥킥거리던 친구들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결혼식 전후에 있었던 어느 선배의 결혼식에서는 결국 더 크게 웃어 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형의 학교 교수님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외이사를 하는 게 자랑거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본인이 그런 소개를 원하셔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분이 다급한 손짓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이력에 추가를 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라고 하시더군요. 몇 번 겪던 일이라 그러시라고 식순이 적힌 종이를 내밀자, 그 분은 거침없이 쓱쓱 몇 자를 추가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켜보던 저는 그만 그 앞에서 "킥!" 하고 웃어 버릴 뻔했습니다.
그 분이 자랑스럽게 첨가하신 이력은 다름 아닌, 없어진 지 10년이 지난 정당(政黨)의 지구당 부위원장 직함이었습니다. 식이 끝난 후 친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렇게까지 덧붙이고 싶을까 하며 웃음 섞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미리 귀띔으로 전해 받은 이력을 보여 드리고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무어냐" 고 간단히 소개해 달라고 주문하시는 분들도 계시기는 합니다. 아쉬운 건 그런 분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 분들이 살아오신 혹은 걸어오신 길을 얕잡아 보거나 폄하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귀한 자식' 결혼하는데 널리 알리고 자랑하고픈 부모님들의 심정 역시 물론입니다.
다만 축복과 사랑이 어우러진 그 축제의 자리가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좀 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행과 이야기가 많은 분들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건 그 자리의 주인공은 부부가 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아름다운 연인, 두 사람이니까요.
하긴 어찌 그 분들만의 탓이겠습니까. 부족한 저 역시 한 몫 하겠지요. 늘 습관처럼 치르고 돌아서선 넥타이를 풀어버리는 타성에 젖어 말입니다. 이제 앞으로 맡게 될 결혼식에서는 이제까지 안 하던 말들을 조금씩 덧붙여 볼까 생각 중입니다.
"오늘 주례를 맡아 주실 분은 평소 아무개군과 아무개양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며, 늘 삶에 보탬이 되는 맑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이라던가 "아무개군이 항상 부모님처럼 소중히 믿고 따르는 분이며 이들을 친자식이상 배려해 주시는…" 하며 말입니다.
아직 올해 안에 사회자로서 서야 할 결혼식만 두 번이나 더 남아 있습니다. 조금 부끄러울 것도 같고, 안 하던 짓 하면 이상할 것 같기도 하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노력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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