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출현은 한나라당 분열의 전주곡

[서영석 칼럼] 신당 출현의 진정한 효과 분석

등록 2003.09.20 19:14수정 2003.09.22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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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혁에 대해 명확하고 예리한 시각을 가진 관찰자는 흔하지 않다. - 에드워드 기번

어렵사리 신당이 출범하기는 할 모양이다. 민주당내 신당 진통의 본질은 구주류와 신주류의 힘겨루기에 있는 것도 아니요, 정치적 감각면에서는 아직도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한화갑 의원이나 추미애 의원의 얘기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당을 버리느냐, 마느냐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그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당개혁을 통한 정치개혁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자신들에 대한 사망선고로 받아들이는 사람들간에 빚어질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바로 그런 질문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정치개혁의 '개'자만 나와도 치를 떨면서, 하지만 그것에 치를 떤다는 사실 자체에는 대단히 쪽팔려 할 만큼 한가닥 이성은 남아, 호남정서니 뭐니 하는 온갖 감성적 수사로 포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저항이 갖는 의미는 사실 별 것 아니다. 그것은 합리와 이성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는 결코 억지와 딴지를 이길 수 없다는 세상의 진실에 대한 확인일 뿐이다.

이들이 어떤 저항을 하더라도 신당은 제 갈 길을 가고야 말 것이며, 필자가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잔류파들은 지역당으로 철밥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하고 있겠지만, 이들은 다음 총선을 통해 과거 민국당보다 못한 존재로의 전락이 예정돼 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잔류파는 박상천 정균환을 안고 가는 한 어떻게 개혁을 운위하더라도 결국 자기모순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이들은 개혁에 저항해 다수파를 몰아낸 일등공신들이기 때문에 중도통합파가 아무리 이들의 2선후퇴를 바란다 하더라도 물러날 리도 없고 민주당 잔류를 고집하는 한 물러나라고 할 명분도 없다. 조만간 이들의 철밥통 정신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것인지 이른바 중도통합파들은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잔류파의 운명은 신당 출현을 뒷받침한 시대정신이나, 신당 출현이 주는 진정한 효과에 비하면 사실 마이너한 것일 뿐이다. 신당 출현의 진정한 효과는 민주당내에서 생존만을 최상의 가치로 내세우며 정치개혁을 부정했던 사람들, 바꿔 얘기하면 영남지역주의와 본질면에서는 유사한 호남지역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내세웠던 낡은 패러다임의 정치인들을 한묶음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데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신당 출현의 역사적 의미는 이것이 한나라당에게 주는 충격,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이 의미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의 변환 속에서 정치권의 개혁은 당연히 민주당에서 시작돼야 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환 자체를 이해하고 그것이 개혁의 동력으로 작용하는데는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고, 다른 무엇보다 외부적 충격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내 진통은 패러다임의 변환이 실제 정치권에서 이뤄지는데는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확인이었을 뿐 신당의 출현이란 당연히 돼야 할 것이 된 것 뿐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만 보면 신당 출현 이외의 것들은 모두 종속적 변수이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소멸될 운명을 지니고 있다.


사실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의 인사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비호남의 악감정이 호남 포위란 환경을 조성하지 않았더라면 만들어질래야 만들어질 수 없는 정당이었다. 역대 어떤 시대보다도 완벽하게 성공한 호남 포위란 정치환경 속에서 이들은 거대야당이 될 수 있었고, 그것은 이회창씨의 대통령 당선을 위한 노력이란 에너지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당연히 한나라당은 대선 패배 이후 쪼개질 운명을 안고 출발했다.

개혁적 신당 출현의 가능성만으로도 5명의 의원이 탈당했다. 이제 그 개혁적 신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능성과 실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개혁적 신당에서 비롯되는 충격은 고스란히 한나라당으로 전이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현재로서는 개혁적 신당의 제일 상대역이 바로 한나라당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나라당은 본격적으로 개혁진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충격에 대한 반응은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패러다임의 변환을 한나라당에도 적용시키자는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60대 용퇴론, 5공-6공세력 용퇴론을 들고 나오는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움직임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또 하나는 하워드 블룸이 <집단정신의 진화>란 그의 저서 속에서 소개했던 아폽토시스(apoptosis), 즉 자살프로그램의 가동이다.

아폽토시스는 살아있는 거의 모든 세포에 미리 프로그램된 자기 파괴절차로 폭탄 심지에 비유할 수 있다. 아폽토시스는 세포 속에만 내장된 것이 아니다. 세포나 유기체와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사회집단에서도 마찬가지 양태를 보인다. 즉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감으로써, 유권자들이 표로 그들을 심판하기 전에 스스로 자살테러를 자초하는 것을 이른다. 한나라당 홍준표, 민주당 김옥두 의원의 수구 공조론 혹은 내각제 개헌론 제기는 자살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개혁의 충격파에 전면 노출돼 있는 한나라당으로서 다행인 것은, 민주당의 진통이 일종의 반면교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지금부터 민주당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진통 과정을 겪는다면 한나라당에 소속돼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최악의 불행이 될 것이다. 개혁 진통은 인적 청산 요구로 직결된다. 민주당내 소수파의 반발이 이토록 오랜 시간을 소모시켰는데, 한나라당으로서는 다수파의 용퇴 요구에 직면해 어떤 진통을 겪을 것인지 눈에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아마도 당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선거를 맞이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진통이 반면교사로 작용하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개혁통은 그래도 많은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민주당의 사례에서 보듯이 개혁파는 당을 결코 바꿔놓을 수 없다. 게다가 당내 소수파인 한나라당 개혁파의 설 자리가 그리 넓지도 않다. 이들은 일단 국정감사 이후로 미뤄놓았다고 하지만, 일단 시작되면 조기에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떤 결말을 맞을 것인가.

한나라당 개혁파로서는 개혁을 가장한 현상의 유지에 동의하든가, 뛰쳐나가든가 양자택일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미 민주당의 진통과정에서 정답이 나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리 큰 고민할 만큼 상황이 복잡하지 않은 것이 이들에게는 유일한 위안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거대한 소속 구성원들 모두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미 극복돼야만 할 구 정치, 낡은 패러다임의 정치에 대한 상징이 되고 있다. 정치권의 개혁은 우리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변환의 한 요소일 뿐이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고, 주류는 교체돼 가고 있는 소용돌이 속에 있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변환의 시기에 이미 맞지 않은 낡은 옷을 걸치고 있고, 이 옷을 벗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주체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자와 협력해 20년 이상 기득권을 누려온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필자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민정당 출신들의 이들 한나라당 주체세력들이 집단자살을 선택하지 않는한, 한나라당의 개혁은 불가능하다. 한나라당내에서 개혁하려는 사람들이 그들의 목표를 부분적으로라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탈당이다.

민주당이 진통 끝에 신당을 출범시킴으로써, 이러한 탈당이 그렇게 선택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세력들의 집합체인 한나라당 개혁이 어떤 방식으로든 펼쳐질 수 있다는 점, 바로 이것이 신당 출범이 주는 정말로 유의미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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