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인터뷰] 정구도 사무총장이 말하는 ‘전투병 파병’과 ‘노근리’

등록 2003.09.24 01:29수정 2003.09.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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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8월 30일 우리나라 전투병이 파병되면 배치될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 북부 모술 근방에서 미 101 공중강습사단 병사들이 이라크 민간인을 검문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투병을 파병하면 101 공중강습사단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30일 우리나라 전투병이 파병되면 배치될 것으로 보이는 이라크 북부 모술 근방에서 미 101 공중강습사단 병사들이 이라크 민간인을 검문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투병을 파병하면 101 공중강습사단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 미 국방부


미국이 최근 한국 정부에 대규모 전투병 파병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9월 3~4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미래동맹 정책구상 협의 당시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가 추가 파병 가능성을 타진한 이후, 전투병 파병이냐 아니냐를 두고 국내 여론이 둘로 나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이 요청한 것은 지난 4월 17일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서희·제마 부대와는 달리 대규모 전투 부대로 알려졌다. 부대 성격상 상황에 따라 현지 주민이나 무장세력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어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당성이 결여된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함으로써 '한국 역시 침략국'이라는 오명을 얻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구도 '노근리 인권평화연대' 사무총장의 느낌은 남다르다. 그는 부친 정은용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의 뒤를 이어 1950년 7월 말 충북 영동 일대에서 벌어진 미군의 양민학살 사건을 파헤치고 있는 인물.

"만약 우리가 전투병을 파병하게 되면 상황에 따라 총을 들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며 "파병 대상지로 거론되는 이라크 북부의 치안이 불안정한 만큼 자칫 죄없는 부녀자나 어린이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정 사무총장. 그는 "근본적으로 이라크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라며 "이번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무모한 결정은 없어야 한다"고 못박는다.

지난 9월 20일(토) 서울 홍제동에서 정 사무총장을 만나 노근리 사건 해결의 진행상황 및 이라크 전투병 파병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정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을 간추린 것이다.

a 노근리 학살이 벌어진 쌍굴다리 앞을 경운기 한 대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다.

노근리 학살이 벌어진 쌍굴다리 앞을 경운기 한 대가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다. ⓒ 정귀분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죄 없는 양민들이 죽어 간다는 것이다”


-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라크 사태를 두고 베트남전의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노근리는 다른 사건과는 달리 공중 폭격과 기총소사, 기관총 사격 등 3박4일 약 60여 시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자행된 학살 그 자체다. 즉 노근리와 이라크를 대등하게 비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비록 의도적은 아닐지라도 죄 없는 양민들이 죽어 간다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공중폭격과 전투의 긴장에서 오는 오인 사격으로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 일각에서는 한미관계를 고려해 고전하고 있는 미국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으로 예민한 문제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한미동맹도 물론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반전평화와 탈냉전, 민주주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그러한 흐름에 배치되는 성급한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이미 우리는 베트남전에서 큰 희생을 하며 그들을 도왔다”

- 한국전쟁 당시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미국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 일부 세력은 이번 전쟁의 본질은 논외로 하고 엉뚱한 한미동맹만을 앞세우고 있다. 일부에서 보은론을 펴면서 우리가 미국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미관계사 1백여 년에서 어찌 그것만 보려 하나.

우리가 미국에게서 항상 일방적인 도움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황명철 월남참전전우회 중앙회장도 말했듯 이미 우리는 베트남전에서 큰 희생을 하며 그들을 도왔다. 또 그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해방 후 주한미군을 철수시킨 적이 있고, 베트남전 때에도 7사단 등 2만여 명을 철수시켰다. 언제까지 파병의 이유로 한국전쟁을 거론할 것인가?”

a "전투병을 파병하는 무모한 결정은 없어야 한다." 정구도 '노근리 인권평화연대' 사무총장

"전투병을 파병하는 무모한 결정은 없어야 한다." 정구도 '노근리 인권평화연대' 사무총장 ⓒ 권기봉

- 그렇다면 파병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인가?
“이번 전쟁의 본질적 문제는 결국 정당성의 여부로 귀결된다. UN결의도 없을 뿐더러 침공 이유라고 말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온데간데 없고, 알카에다와 후세인과의 연관성도 미군 스스로 부정하고 있지 않나? 이번 전쟁의 성격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무모한 결정은 없어야 한다.”

- 어차피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전쟁에 정당성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맞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라크는 우리의 적이 아니다. 순진무구한 이라크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걸 보아라. 참 안타깝고 불쌍하다. 특히 노근리 사람들은 비상한 관심으로 이번 전쟁을 보고 있다. 큰 희생자는 군인이 아니라 민간인 특히 부녀자와 어린이들이다. 의도적은 아닐지언정 죄 없이 죽어 가는 양민들은 결국 노근리 상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명분이 있는 전쟁에서도 민간인들이 부지기수로 죽어나가는데 하물며 이번 전쟁은 명분 하나 없는 전쟁이다.”

- 이번에 파병을 요청 받은 전투병은 말 그대로 전투가 아니라 치안 유지를 위해서라고 하지 않나?
“우리가 가면 배치된다는 곳이 이라크 북부라는데, 계속 테러가 일어나고 있지 않나? 그곳은 전장이다. 만약 우리가 전투병을 파병하게 되면 상황에 따라 총을 들어야 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우리 적이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파병 대상지로 거론되는 이라크 북부의 치안이 불안정한 만큼 자칫 죄 없는 부녀자나 어린이에게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a 흰 색 원과 세모들은 총탄의 흔적을 표시해 둔 것이다. 노근리 쌍굴다리.

흰 색 원과 세모들은 총탄의 흔적을 표시해 둔 것이다. 노근리 쌍굴다리. ⓒ 정귀분


“제2, 제3의 노근리 사건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 만약 이라크 사람들이 원한다면 파병해야 하는 것인가?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들 문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할 테니 외세는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이라크 사람들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 싸움판에 우리가 뛰어들어야 하나? 치안이 불안정하고 반미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에 미군과 이라크인들 사이의 충돌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해를 입는 것은 양민들임을 알아야 한다.”

- 그러나 여전히 전후 재건 사업에 참여할 수 있을 뿐더러 실전 경험 습득 차원에서라도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지난 번에 공병부대와 의무부대 보낼 때 국익을 위해 보낸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북핵 문제가 나아졌나? 이라크 재건 사업에 우리 기업들이 지분을 받았나? 과연 무슨 성과가 있었나? 가시적으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주시해야 한다. 전투병 파병 문제는 단순히 국익 차원으로만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헌법 5조 1항에 ‘대한민국은 국제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다’고 쓰여 있다. 즉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은 이번 전쟁에 전투병을 파병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도 침략자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a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아쉬웠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아쉬웠다." ⓒ 권기봉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아쉬웠다"

- 노근리 사건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인가?
"부모님으로부터 노근리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숱하게 들어왔다. 그런데 한국전력공사에 다니며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무심코 아버지가 쓰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노근리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내 형과 누이가 노근리에서 죽었을 때가 2살과 5살 때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원고를 읽을 당시 내 아이들도 2살과 5살이었다.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한을 뼈 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 현재 광운대 경영학과 겸임교수로 알고 있다. 전공과는 상관 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아닌가?
"전공과는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94년 7월 미대사관에 양민학살에 대한 미정부의 공식사과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접수시키러 간 적이 있다. 마지못해 직원 한 명이 나와 진정서를 받아가긴 했지만, 걸어 잠근 문 앞에서 진정서를 접수시키려는 70대 노인들이 너무 딱해 보였다. 이 일도 결국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하는 일이고 나는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
"재정적으로도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아쉬웠다. 미국에 관련된 사건이라 그런지 우리 정부나 언론 모두 피하는 눈치다. 어떤 이들은 괜히 반미라고 호도하기도 하는 등 국민들의 관심도 많이 줄어들었다. 큰 진전이 없어 피해자들도 힘들어 하고 있는 실정이다."

a "일일이 자료를 쥐어주고 설명을 해줘도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취재를 기피하더라."

"일일이 자료를 쥐어주고 설명을 해줘도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취재를 기피하더라." ⓒ 권기봉


“우리의 문제를 왜 아직도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가”

- AP는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퓰리처상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언론이 피하는 눈치였다니, 무슨 말인가?
"이것을 이슈화해야겠다는 생각으로 94년 4월말부터 우리 나라 기자들을 접촉하기 시작했다. 만나지 않은 언론사가 없다. 그런데 일일이 자료를 쥐어주고 설명을 해줘도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취재를 기피하더라. 미국과 직접 관련이 있는 문제라서 그런지 간혹 젊은 기자들이 취재를 해가도 단신으로 한두 줄 보도되는 게 고작이었다. 물론 열심히 뛰는 한두 명의 기자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수년이 흘러갔다. 우리 나라 언론들, 유능한 기자들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문제를 왜 아직도 우리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가."

- 그리고 당시 우리 정부는 이 사건을 어떻게 대했다는 것인가?
"94년 YS 정권 때 국회의장과 각 정당 대표 앞으로 노근리 양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보냈지만 답장 온 게 하나도 없었다. 청와대에도 보냈는데 나중에 국방부로 이관시켰다고 하더라. 그런데 국방부에 알아보니 미8군에 조사 요청을 했다고 한다.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 아닌가. 이것뿐만 아니라 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진상규명과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보내는 등 수도 없이 진정서를 보냈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어디로 이관시켰다는 말뿐이었다. 물론 이관 받았다는 기관에서 온 회신은 아무 것도 없었다."

- 그렇다면 거기서 활동을 멈춘 것인가? 들어주는 곳이 없으면 난관에 부딪혔을 법한데.
"그렇게 2~3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 노력을 해봤다. 그런데 꿈쩍거리지도 않더라. 그래서 결국 97년 8월 청주지방검찰청 청주지구 배상심의위원회에 '손해 또는 상해 배상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그 것 역시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조사 한 번 없이 기각됐다."

a 노근리 사건 당시 한 쪽 눈을 실명한 양해숙씨.

노근리 사건 당시 한 쪽 눈을 실명한 양해숙씨. ⓒ 정귀분


“이런 태도가 계속되는 한 굴종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 작년 10월 국회에 ‘노근리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진전이 있었나?
“심의는커녕 상정도 안됐다. 그러다가 올 6월 12일 국회 행자위로 넘어갔고, 또 국방부 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다. 마치 94년 여기저기 문을 두드릴 때와 같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진상규명도 됐는데 정부나 언론은 변한 것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6대 국회도 얼마 안 남았다. 또 자동 폐기될 운명에 처할까 걱정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면 반 세기의 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

- 그러한 과정에서 느꼈을 감정이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옴짝달싹 하지 않아 참 슬프고 분노가 치밀었다. 지금 국적을 포기하려고 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진상조사도 했고 미국이 유감표명을 한 상황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면 지금이라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한 베트남만 해도 증오비를 세워놓고 길이길이 잊지 않으려 하고 있다. 이런 태도가 계속되는 한 굴종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에서 보듯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공식조사가 끝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 또 하나의 당사자는 미국 아닌가. 미국 정부의 태도는 어떠했나?
"이미 지난 60년 10월 서울에 있던 미국의 소청사무소에 손해배상을 신청한 적이 있지만 '진정서가 법정 기한이 지나 도착해 심의권한이 없다’며 반려됐다. 이후에도 대통령의 사과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클린턴 대통령과 상·하원 의장 등에게 20차례 이상 보냈으나 회신은 없었다. 한 외신 기자가, 미국은 민간인이 보낸 진정서에 대해 시간이 오래 걸릴 만한 사안이더라도 일단 회신은 해주는데 '아예 답신조차 없었네요?'하더라."

-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는 말인가?
"처음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더니 나중에 여론이 시끄러워 지니까 전투 중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미군이 조직적으로 노근리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들이 그네들 문서에서 드러나고 있다."

a 쌍굴다리 주변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

쌍굴다리 주변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 ⓒ 정귀분


- 그런데 지난 2001년 미국 정부가 유감을 표명하고 추모비 건립과 장학금 지급을 약속하지 않았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아닌가?
"노근리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주장의 핵심은 추모비 건립과 배상금 지급이다. 장학금은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서양에서는 책임 소재의 유무를 가리는 잣대로 배상금을 지급했는지의 여부가 관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배상금을 받아내지 못하면 나중에 가서 딴소리를 할 수도 있다. 68년 푸에블로호 사건 때 승무원이 무사히 귀환하자, 성명을 내어 북한 영해를 침범한 사실을 부인하면서 일전에 했던 사과 발언을 번복하지 않았나."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미국 정부는 유감 표명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미국은 죽은 군인도 일일이 유해를 발굴해가는 나라다. 만약 자기네 국민들이 외국 군대에 의해 그렇게 죽었다면 그들 역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지 않겠나? 지금 미국의 의도는 유사 사건마저 덮자는 이야기로, 원천적으로 말이 안 된다. 우리를 동맹이라고 생각한다면 미국은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 추모비 이야기는 무슨 말인가?
"미국 정부가 추모비를 세운다면서 거기에 이런 말을 넣겠다고 한다. '1950년 7월 이곳에서 희생되신 분들을 추모하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위대한 투쟁을 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희생되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면서'라고. 어디에도 노근리 이야기는 없다. 또 유감 성명을 냈으면서 사과는커녕 유감을 표명하는 문구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 추모비 하나를 세워 노근리는 물론 한국전쟁 때 있었던 수많은 학살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받으려는 얄팍한 계산이다. 이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a 노근리도 원래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었다.

노근리도 원래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었다. ⓒ 정귀분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도 책임 규명이 뒤따른다”

- 그런데 일부에서는 노근리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반미라고 보기도 한다.
“노근리 뿐만 아니라 매향리 문제나 소파 개정 문제만 이야기 해도 반미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렇게 곡해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진상을 규명하려는 행위와 책임을 묻는 것이 어찌 반미인가?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도 책임 규명이 뒤따른다. 지적 받아야 할 것은 힘을 무기로 삼아 거부를 일삼는 그들이지, 어째서 진상을 말하고 책임을 묻는 우리가 잘못인가.”

- 노근리 사건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한미관계를 껄끄럽게 한다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의 체제나 정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미국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인권을 중시한다. 아픈 부분은 도려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현안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깨끗이 해결해야 비로소 더욱 돈독한 우방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덮어두고 은폐하려고만 하면서 건전한 한미관계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의 골만 더욱 깊어갈 뿐이다.”

- 끝으로 한 마디 해달라.
“정부는 국민을 리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제 국민들이 먼저 나서서 문제제기 하는 것보다 정부가 먼저 앞장 서야 하지 않겠나? 노근리 사건을 전쟁 중 불상사로 치부하며 피해자들의 아픔만으로 강요하려 한다면, 우리의 역사적 정통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현상은 다를지라도 제2, 제3의 노근리 사건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나? 이 문제는 피해자의 몫으로만 남길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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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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