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잃은 '바지저고리 장관' 보도

[거꾸로보는 교육기사6] '윤 교육장관 몰매' 속에 웃는 교육관료

등록 2003.09.26 15:45수정 2003.09.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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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생각을 바꿔야 해요. 모 인사는 저 보고 '바지저고리' 장관 만들고 장관 '뺑뺑이 돌리기' 하는 데가 교육부라고 하더군요. 이러다 한 6개월 뺑뺑이 돌리면 장관이 바뀐다고 합디다. 여러분들 저 뺑뺑이 돌리지 마십시오."

지난 3월 7일 윤덕홍 교육부장관이 취임식장에서 교육관료들과 악수하고 있다.
지난 3월 7일 윤덕홍 교육부장관이 취임식장에서 교육관료들과 악수하고 있다.오마이뉴스 남소연
윤덕홍 교육부장관이 지난 3월 7일 취임식에서 교육관료들을 앞에 두고 한 말인데요. 6개월을 넘긴 오늘, 이 같은 그의 부탁은 안타깝게도 무시되고 있는 듯합니다. "정말로 생각을 바꾸어야 할" 교육관료들은 여지없이 장관을 "바지저고리로 만들고 뺑뺑이 돌리기"를 하고 있는 듯합니다.

울고 싶은 윤덕홍 장관

지난 22일 교육부 국정감사장에서 윤덕홍 장관은 한 마디로 '개망신'을 당했죠. 다음은 이 내용을 다룬 <경향신문> 24일치 사설 내용.

"판교 학원단지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현안인 교육과 집 값이 맞물린 예민한 문제이다. 그런데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학원단지 조성에 대한 부처간 정책협의가 없었으며 자신은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답했다. …일 국의 교육수장으로 이런 말을 하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판교 학원단지 건설을 둘러싸고 윤 장관은 코너에 몰려 언론들의 몰매를 맞고 있습니다. 23일, 24일치 신문들은 일제히 사설과 기자칼럼을 써가며 '윤 장관의 조직장악력 부족'과 '무능'에 대해 질타하고 나섰는데요. 한나라당 의원들과 언론의 공격에 이어 23일 국무회의에서는 노 대통령의 꾸중까지 들으니 윤 장관이야말로 눈물이 나올 정도인 것 같네요.

24일치 조선일보 사설.
24일치 조선일보 사설.조선닷컴
24일치 <조선일보> 사설은 이 문제를 갖고 윤 장관한테 또 다시 직격탄을 날렸는데요.


"만일 국이나 과의 토론이 부총리에게 전달되지 않아 빚어진 일이라면, 부총리는 자기 방 문턱을 그렇게 높여놓음으로써 바지저고리를 자초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른 장관과의 관계가 거북해질까 봐 이런 중대정책에 대한 이견을 입밖에 못 내고 죽어지냈다는 것인가. 이러고도 국무위원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면 이건 보통 배짱이 아닐 것이다."

맞습니다. 윤 장관은 야단 맞을 만합니다. 평소 교육부 주변에서는 윤 장관을 두고 "동네 아저씨처럼 스스럼없고 솔직하다"는 말이 들리긴 하지만 이 말이 그의 '조직 장악력 부족'을 감싸주지는 못하는 게 분명하죠.


교육부 직원 450여 명과 고작 11명의 실·국장 간부들도 장악하지 못하면서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부 수장 노릇을 하긴 어렵죠. 인사권은 폼으로 있는 게 아닌데도 정권은 바뀌었지만 관료들은 대부분 그대로인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윤 장관 몰매 보도에 대한 변명

이런 점에서 언론의 화살이 그한테 쏠리는 현상을 탓하기는 힘드네요. 하지만 나는 여기서 윤 장관 대신 변명을 한 번 해볼까 합니다.

'정말 윤 장관만 잘못한 걸까요? 협의 내용을 보고하지 않은 교육관료들도 잘못했고 지난해 부처간 협의회를 총괄한 교육부 수장도 잘못하긴 마찬가지 아닌가요.'

'학원' 글자가 쓰인 단지 두 개. 전교조 홈페이지에서.
'학원' 글자가 쓰인 단지 두 개. 전교조 홈페이지에서.연오랑
최근 교육부는 '소리 없는 전쟁 중'이란 얘기가 들립니다. 기존 교육관료와 교육관료 개혁세력간의 내부 신경전이 팽팽하다는 얘긴데요. 여기서 교육관료 개혁세력은 몇몇 장관 측근이 전부인 형편이죠.

교육부 관계자들이 대놓고 "윤 장관은 빨리 그만 둬야 한다"고 말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는데요. 노회한 교육관료들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이미 교육부 안 '전쟁'은 '죽느냐 사느냐'할 정도로 심각성을 띠고 있는 것이죠.

이 때 언론의 몰매가 윤 장관한테만 쏠린다면 이미 게임은 끝나는 것 아닐까요. 더구나 이번 일은 교육관료와 윤 장관이 모두 잘못한 일인데 말입니다.

떼 지어 '바지저고리 장관'을 만들고 있다면…

보고 내용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사람도 잘못이지만 왜 교육관료들은 이런 중요한 내용을 윤 장관한테 보고하지 않았을까요. '바지저고리 장관'도 문제지만 수십 명이 떼를 지어 '바지저고리 장관을 만들고 있는 것'도 문제 아닌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해서도 취재한 언론사는 없습니다.

사실 국정감사 직전에도 교육부는 교육관료의 장관에 대한 보고 회피로 홍역을 치른 일이 있었죠. 혹시 지난 8월 25일 1차 회의를 연 교육현장안정화대책위원회를 기억하시나요?

이 위원회는 지난 4월 한 교장의 자살을 계기로 만든 것인데요. 언론엔 보도되지 않았지만 1차 회의를 앞두고 윤 장관이 격노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첫 회의를 앞둔 8월 20일쯤 교육부 교원정책심의관실은 '교육현장안정 종합대책안'을 만들어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20여 명의 위원들한테 사전 회의문서를 뿌렸는데요. 이 문서 표지엔 '제출자: 윤덕홍 교육부총리'란 말이 선명하게 찍혀 있더군요.

이 대책안은 '교원노조법 개정, 학교 주변 집회 금지, 교원단체 단일 교섭화' 등 법을 고쳐야 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내용을 담고 있었죠.

그런데 정작 회의 3일 전인 22일 저녁까지 윤 장관한테는 사전 보고가 되지 않은 것이 취재 결과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윤 장관의 측근 인사는 "당일 퇴근 후 밤 11시 30분께 이 내용을 우연히 알게 된 윤 장관이 '보고 받지 못한 자료가 벌써 위원들에게 전달된 건 이해할 수 없다'며 화를 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다음 날 윤 장관의 불호령으로 대책안의 내용이 벼락치기 식으로 손질되긴 했지만 엉클어진 보고체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이었죠

사전보고 회피, 어찌 이번뿐이랴

이 밖에도 교육관료들의 보고 회피 사례는 제법 있을 듯한데요. 이렇게 가다간 윤 장관 말대로 스스로 보란 듯이 '바지저고리 장관'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바지저고리 장관에 대한 공격 보도를 하더라도 균형을 따져 가며 했으면 좋겠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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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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