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없는 세상을 위한 '삼보일배'

전북도청 앞까지 부안 군민들 삼보일배

등록 2003.10.01 20:15수정 2003.10.0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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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철희


1일 부안군민 500여명이 삼보일배를 시작했다. 군민들의 이 삼보일배는 지난 달 30일 학생들의 무기한 등교 거부 투쟁 재결의로 부안 군민들의 핵폐기장 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어린 학생들의 희생을 그냥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며 시작된 것.

지난 9월 4일 부안 군청 앞에서 수협 앞 광장까지 하루 삼보일배를 진행했던 부안 군민들은, '90여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된 절규에도 대답없는 정부와 전북지역을 핵단지화 하려는 강현욱 전북도지사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다시 부안에서 전주까지 삼보일배를 하기에 이르렀다.

1일 오전 10시 수협 앞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은 부안핵대책위 공동대표들과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학부모들. 삼보일배를 하는 군민들 사이에는 초등학생, 중학생들도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를 두고 있는 한 아주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직장도 하루 쉬고 자리에 나왔다"고 참가 이유를 말했다.

김인경 원불교 교무의 삼보일배 선언문 낭독과 함께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삼보일배. 200여명의 삼보일배단과 이들을 따르며 묵상하는 행렬은 부안 읍내 길다란 도로를 노랗게 물들였다. 길가의 군민들은 길게 늘어진 행렬단을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고, 박수를 보냈다.

부안군민들의 삼보일배는 대책위 공동대표단과 함께 참가를 신청한 군민들이 교대로 참가하며, 1일부터 시작해 11일에는 전북도청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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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간의 삼보일배 고행에 참가 신청을 하고 무릎보호대를 착용하는 군민들 ⓒ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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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삼보일배에 참가하겠다며 광장에 온 한 어린이. ⓒ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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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새만금 삼보일배로 무릎이 심하게 상한 문규현 신부는 군민들의 아픈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시 한번 삼보일배에 나서기로 했다. 문 신부는 "부안의 문제는 전북, 아니 전국의 문제이고, 개발지상주의에 물든 우리 자신의 문제"라고 의견을 밝혔다. ⓒ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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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 핵폐기장 백지화 구호를 외치는 군민들. 부안 핵추방 교사모임 소속 교사들은 오늘부터 단식농성에 들어가기로 했다. ⓒ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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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의 긴 행렬 ⓒ 허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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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의 주민들도 삼보일배 행렬에 커다란 박수를 보냈다. ⓒ 허철희


핵없는 세상 만들기 ‘참회의 삼보일배’를 시작하며

우리는 오늘 깊은 참회의 마음으로 삼보일배를 시작하려 니다. 우리의 삼보일배 행동은 생명을 낳아주고 생명을 지켜주고 생명을 순환시켜 주는 대지와의 대화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내딛고 거룩한 대지에 고개숙여 생명의 언어로 참회할 것입니다. 한 걸음 내딛을 때 내 안의 이기심과 탐욕을 쓸어낼 것이며, 두 걸음 내딛을 때 죽어가는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일으킬 것이며, 세 걸음 내딛을 때 고통받는 모든 생명을 살리고 함께 하겠다는 상생의 도를 일깨울 것입니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일배를 할 때 생명의 영원성을 이 땅에 심어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 및 생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하여 모두가 하나되어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싸움은 아직도 고행의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땅에 핵발전소들이 들어설 때 우리는 생명의 위기를 초래하는 문명의 재앙물이라는 것을 일찌기 깨닫지 못하였고, 영덕·울진·영광·고창에 핵폐기장이 들어선다고 할 때조차 우리는 나 살기 바쁘다고 무관심했었습니다. 핵폐기장과 양성자가속기가 부안 땅에 들여오겠다고 하자 뒤늦게사 우리는 생명 및 생활 공동체의 위기를 절박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부안땅 뿐만 아니라 이 땅 어디에도 핵폐기장이 지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이 땅의 다른 누구도 대신 짊어져서는 안된다며 핵없는 세상을 호소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하나되어 노란 촛불을 밝히며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질기게 싸워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투쟁은 아직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의 참회가 부족하고 우리의 생명운동이 지극하지 못한 듯 합니다. 이제 우리는 내 안의 마음을 더욱 정갈하게 참회하여 더 크고 더 깊은 거룩한 대지와 온몸으로 대화하며 고행에 들어가겠습니다.

우리의 삼보일배 고행은 핵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내 안의 몸부림이자 이 세상을 향한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고행은 더 이상 누구더러 이 땅 생명의 순환과 생활의 터전을 대신 지켜달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의 진지한 성찰이자 우리 스스로가 지켜나갈 수 밖에 없다는 주권재민의 사상을 대지에 새기는 몸부림이고 메시지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고행은 참회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을 새롭게 개벽해 나가고자 하는 창조적이며 자발적인 주민생명 운동이며 인권과 민주주의 운동입니다. 우리의 생명운동은 핵산업이라는 인간의 오만과 착취에 기반하는 죽음의 굿판을 중단시키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자연·인간·생명·문화가 상생하는 에너지의 사용을 촉구하는 새로운 생활양식의 문화운동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삼보일배 고행은 부안에서 출발하여 전주로 향할 것이지만, 이 세상의 모든 곳 모든 만물과 열린 마음으로 생명의 대화를 나누며 핵없는 세상의 언어를 침묵으로 써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소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고행은 곧 승리의 세상을 여는 아름다운 발걸음이 될 것임을 확신합니다.

2003년 10월 1일
/ 핵폐기장 백지화 핵발전소 추방 범부안군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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