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예불, 속세의 새벽을 깨우다

새벽을 깨우는 산사(山寺)의 독경소리

등록 2003.10.06 08:23수정 2003.10.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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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가을의 차가운 새벽공기가 온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주위는 소리 한점 없이 고요하고 간간이 켜놓은 전구 불빛은 제 몸이 매달려 있는 나무의 주위만 동그랗게 밝히고 있다. 어디선가 낮지만 긴 여운을 두는 북 소리가 들린다. 새벽예불을 알리는 법고(法鼓) 소리다.'

법고(法鼓)가 새벽을 깨운다
법고(法鼓)가 새벽을 깨운다우동윤
운문사 범종루(梵鐘樓)에서 세 분의 비구니가 서로 북채를 넘겨 받으며 북을 울린다. 법고와 함께 범종, 목어, 운판이 차례로 새벽을 깨운다. 점점 빨라지고 깊어지는 불전사물의 소리가 운문사 경내를 가득 메울 쯤 가사와 장삼을 단정히 갖춘 비구니들의 흰 고무신이 흙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새벽,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고무신들이 분주하게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을 향하고 있다.


가지런히 벗어 놓은 흰고무신. 저마다의 표식을 그려 놓았다.
가지런히 벗어 놓은 흰고무신. 저마다의 표식을 그려 놓았다.우동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바라 본 대웅전 안에는 비구니들이 눈을 지긋이 감은 채 합장하고 있다. 만물이 깊은 잠에 빠진 새벽, 전생의 업보와 현생의 가르침, 그리고 내세의 성불(成佛)을 기원한다. 그 곳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탈속(脫俗)의 세계인 것 같다. 다만 간간이 들리는 비구니들의 기침소리와 대웅전 앞에 벗어놓은 흰고무신에 그려 놓은 저마다의 표식에서 현실을 느낀다.

새벽 3시 20분, 200여명의 비구니들이 외는 낭랑한 염불이 대웅전 밖으로 흘러 나온다. 운문사 새벽 예불이 속세의 새벽을 깨운다.

대웅전 문틈으로 본 새벽예불
대웅전 문틈으로 본 새벽예불우동윤
경북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 자리잡고 있는 운문사(雲門寺)에 닿으면 제일 먼저 빽빽이 늘어선 소나무가 반긴다. 운문사를 수려하게 감싸고 있는 송림이다. 송림을 지나 운문사 바로 앞까지 차를 몰고 들어오면 주차장이 있다. 낮에는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만 새벽 예불에는 돈을 낼 필요가 없다. 새벽 3시가 되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이 한다. 새벽 3시 15분에 세 분의 비구니가 불전사물(법고, 범종, 목어, 운판)을 울리고, 200여명의 학인 스님들이 대웅전에 모여 새벽 예불을 시작한다. 현재 운문사는 4년제의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운영되고 있고, 200여명의 학인 스님들이 경학을 공부하고 있다.

운문사 새벽 예불이 유명하다고 해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다고는 하지만, 새벽의 고요함과 경건한 산사(山寺)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다만, 경내를 놀라게 하는 카메라 플래시와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는 새벽 예불의 경건함을 해치니 주의하자. 가장 좋은 관람태도는 절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차피 새벽에 마주치는 스님들은 관람객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절의 일부가 돼 새벽 예불을 보고 들으면 된다. 경내 한 곳에 자리를 잡아 지긋이 눈을 감고, 운문사의 새벽공기를 맡고, 낭랑한 독경과 경쾌한 타악기가 만들어 내는 음악을 듣고, 가끔 눈을 떠 어슴푸레한 산사(山寺)를 둘러 보자.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18년(557년) 신승이 창건하여 원광법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일연선사가 차례로 중창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일부 건물이 화재로 소실됐다지만 여전히 대가람의 면모를 잃지 않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원광법사의 세속오계가 전수됐고, 일연선사가 고려 충렬왕 때, <삼국유사>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이렇듯 유서도 깊고 엄숙했던 절이었건만, 요즘 운문사를 찾을라치면 입구에 늘어선 수많은 '가든'들로 어지러울 정도다.

절 앞에서 매일 고기냄새를 풍겨대는 형국이다. 절과 함께 모텔, 민박도 적지 않다. 어차피 세태가 그런 것을 너무 불만스러워 하지는 말자. 좋게 생각하면 숙식이 쉬워 한 이틀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 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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