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재선, 슈워제네거에 달렸다?

공화당 기선제압 관측 성급... 백악관, 오히려 부담느껴

등록 2003.10.09 09:16수정 2003.10.09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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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8일 당선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8일 당선후 첫 기자회견을 갖고있다. ⓒ AP=연합뉴스

슈워제네거는 레이건과 닮은 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 선거가 아놀드 슈워제네거라는 또 한명의 배우출신 정치인 탄생을 알리며 막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할리우드 배우 출신이면서 대통령까지 당선됐던 로널드 레이건 전대통령이 공화당 소속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다는 점을 떠올리고 있다.

주지사 소환선거를 치르는 캘리포니아 주민들
60% 넘는 높은 투표율 속에 무리없이 끝나

▲ 크리스토퍼 와드씨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이날 선거는 아침부터 유권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다가 퇴근시간이 시작된 오후 6시경부터 많이 밀리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해 실시한 주지사 선거의 50.7%를 훨씬 상회하는 투표율인 60%를 기록한 이번 선거는 캘리포니아 전 지역에 걸쳐 1만 5235개의 투표소에서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쎄리토스 지역의 한 투표소에서 투표 진행요원을 맡은 롱비치 시청의 레크리에이션 부서 직원 크리스토퍼 와드(Christopher Ward, 42)씨는 "투표소가 작년에 비해 60% 가량 줄었고 투표율은 오히려 높아져서 무척이나 분주한 하루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선거절차를 잘 알고 있어서 특별히 힘든 일은 없었다"고 밝혀 주민들의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음을 보여줬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다 마치고 투표소에 들렀다는 쌘타애나 지역 거주자 마이크 칼리쓰(Mike Carlisle, 40)씨는 "소환에는 반대하고 후보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슈워제네거가 당선될까봐 걱정이다"라고 심정을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선거일이 보통 임시공휴일로 지정된다고 알려주자 "투표를 위해서 아무 때나 3시간까지 시간을 낼 수가 있어서 다른 동료들 중에는 일찍 퇴근을 하거나 낮시간에 투표를 하고 온 사람들도 있다"며 자신은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투표 진행요원으로 절차 안내나 통역을 맡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로 은퇴한 노인들이 많이 참여한다.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의 투표소에는 번역된 안내책자나 통역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된다.


투표 장소는 일정치 않아서 교회나 마을의 클럽하우스, 국민학교 강당, 또는 소방소 등을 이용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서 줄을 지어 늘어서 있으면서도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투표를 하러 온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투표를 하며 자유롭게 참여민주주의의 현장을 보여주는 것도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 박우성 기자
레이건 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할 당시 그는 영화 배우로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1960년대 초, 영화 배우조합의 의장이었던 레이건은 당시 벌어진 영화계의 (공산주의)색깔논쟁에 휩싸였다. 이 일을 겪으면서 자유주의적이었던 그의 성향은 보수주의로 변했고 전국을 순회하는 TV쇼의 호스트로 활동했다.

그는 보수주의의 대변인으로 불리게 됐다. 마침내 1966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선 그는 백만표가 넘는 큰 차이로 주지사에 당선돼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슈워제네거는 90년대 이후로 꾸준히 지원해온 방과후 프로그램을 위한 주민발의안을 추진해서 작년에 통과시킨 것 이외에는 정치적인 경험이 거의 전무한 인물이다. 내년 대선 이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자리를 확보하고 싶었던 공화당이 그를 지명한 것은 그의 영화배우로서의 인기도가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영화 홍보하듯 전개된 선거운동

실제로 슈워제네거는 선거운동이 시작될 무렵 언론에게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 적이 있다.

"나는 무언가를 팔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미국인들이 보디빌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때 나는 그것을 팔아야 했고 나는 결국 해냈다. 사람들이 나의 액센트를 흉내내며 '당신 이름이 슈왈쯘슈닛쩰, 뭐 그런 거던가?'하고 놀릴 때 나는 나 자신을 액션히어로로서 판매해야 했다. 내가 지니고 있는 어눌한 억양과 우람한 근육이라는 조합에도 나는 이루어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판매해왔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슈워제네거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태도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주요 이슈에 대한 자신의 입장에 대한 설명을 계속 미루고 자신과 타 후보들간의 정책과 공약들을 비교하기보다는 그 자신의 지명도만을 이용해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마치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처럼 연예인들이 주로 초대되는 유명한 토크쇼에 출연해서 선거 출마선언을 하는가 하면 각종 방송사에서 주관한 주요 후보들간의 토론회에 계속 불참하는 모습을 보여 경쟁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기도 했다.

지난 9월 24일에 실시된 생방송 토론회는 슈워제네거가 참여하는 유일한 생방송 토론회라는 이유로 평소의 토론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수퍼볼 토론회'라고도 불린 이날의 토론회는 더욱 뜨거운 열기에 휩싸이게 됐고 이 때문에 서로간의 인신공격성 발언들이 난무하면서 그에 대한 재치와 순발력을 비교하는 장으로 전락해 버린 채 후보들간의 정책비교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선거 승리는 유권자들의 정치불신 결과

a 투표소 안쪽, 두줄로 늘어선 주민들이 참을성있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투표소 안쪽, 두줄로 늘어선 주민들이 참을성있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박우성

하지만 이러한 비판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지율은 선거기간 내내 계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선거연기를 위한 데이비스 주지사측의 고군분투와 법원의 재판결과 번복, 민주당 내부의 분열분위기 등은 중진 정치인들에 대한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불신감만을 키워준 것으로 보인다. 10월 1일을 기해 전면적으로 인상된 자동차등록세도 그의 당선에 유리한 작용을 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데이비스를 위한 마지막 카드였던 성추행 사건과 히틀러 찬양 의혹과 같은 과거 전력도 오히려 '더러운 정치 공세'라는 비판적인 시각 속에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데 실패했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상대후보의 비리 폭로라는 정치인들의 공방에 얼마나 큰 실망을 느껴왔는가 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여러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된 슈워제네거에게는 그 동안과는 달리 해결하기가 훨씬 힘든 복잡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여전히 강력한 민주당 세력, 원활한 협력 미지수

슈워제네거는 총기에 대한 규제와 낙태, 동성애 등의 문제에서 보수적인 공화당원들과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갖고 있다. 선거 기간 중에 연방하원 의원인 멕클린탁 후보가 노골적으로 "나는 그의 색깔을 잘 모르겠다"며 공화당원들 사이의 불안감을 공략했던 것도 이런 점을 겨냥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민주당이 주의회를 비롯 거의 모든 행정기관의 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운영을 위한 전폭적인 협조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부스타멘테 부지사는 "선거기간 동안 매우 당파적인 캠페인을 펼쳤지만 이제 캘리포니아 운영을 위해 일할 때"라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항상 그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의 정국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시사했다.

애초 380억불에 달하던 주 예산 적자는 지난 7월 말 예산안이 주의회를 통과하면서 80억불 수준으로 줄어있다. 그러나 슈워제네거가 약속한대로 자동차 등록세 인상을 철폐할 경우 40억불의 예산수입이 부족해지는 것도 큰 부담이 된다.

내년 1월 10일까지 새로운 예산안을 제출해야 하는 슈워제네거는 선거기간 동안 세금 인상은 절대 없을 것이고 -전체 예산의 40%에 달하는-교육 비용도 절대 줄이지 않을 것("not to raise taxes or cut education spending")이라고 공약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선거 막판에 제기됐던 16명에 달하는 여성에 대한 성추행 사실도 골칫거리다. 그는 "때때로 저지른 나쁜 행동"에 대해서 즉시 사과했지만 "이번 폭로는 정치적 공세며 일부는 사실과 다르다"며 모두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를 통해 뼈아픈 패배를 겪은 일부 민주 당원들은 투표마감직후 슈워제네거의 범법사건(성추행)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재소환을 추진하자며 흥분을 하기도 했다. 곧 가라앉긴 했지만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a 라 팔마(La Palma) 지역의 한 한인교회에 설치된 투표소 내부풍경

라 팔마(La Palma) 지역의 한 한인교회에 설치된 투표소 내부풍경 ⓒ 박우성

대선 앞둔 백악관 오히려 부담스러워 해

부시 행정부는 오랫동안 민주당의 아성이었던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공화당이 확보하게 된 것에 대해서 매우 반기는 눈치다. 캘리포니아는 인구수에 따라 50개 주 중에서 제일 많은 54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승부처다. 부시는 전화를 통해 슈워제네거의 주지사 당선을 축하하면서 다음주 즈음에 만나 캘리포니아에서 있을 두 번의 기금모금행사에 대해 협의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슈왈제네거의 당선이 오히려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백악관 당국자들은 인기가 급락한 데이비스를 상대로 쉬운 싸움을 벌인 슈워제네거가 주정부의 예산적자, 보수적인 공화당원들 그리고 민주당이 장악한 주의회와 악전고투를 벌이다 침몰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부시의 운명이 45%의 반대자들과 성추행 사실을 비난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주지사에게 맡겨진 것이다.

여러 선거전략가들은 이번 선거결과가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이 재정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데이비스 주지사 개인에 대한 반대표를 던졌음을 보여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얘기다. 만성적인 정부 예산적자와 경기 하강 등으로 불만을 가진 미국인들이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은 결국 부시 행정부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주지사, 슈워제네거
공식적인 당선 확정은 11월 15일 전에 발표

▲ 10월 7일 실시된 소환선거 투표소 앞
ⓒ박우성
전체 투표용지의 99.8%에 대한 집계가 끝난 현지시각 10월 8일 오후 3시 현재(한국시각 10월 9일 오전 7시) 캘리포니아 주총무국이 게시한 인터넷 개표현황에 따르면 소환찬성이 전체 투표자의 55.2%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전체 투표수의 45.8%를 획득 각각 31.8%와 13.4%를 얻은 부스타멘테와 맥클린탁 후보를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투표마감 직후 각 방송사들이 출구조사를 통해 밝힌 예상과 거의 일치하는 결과이다.

주 총무국은 선거법에 따라 내일(10월 9일)까지 공식집계 마감, 4주 후인 11월 4일까지 정밀검표 종료, 11월 9일까지 카운티별 공식집계 보고 등의 정해진 시간에 맞춰 11월 15일 전으로 공식적인 당선자를 발표하게 된다.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다"

지난 밤 각 방송사의 출구 결과를 통해 슈워제네거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보도됐을 때 LA 센츄리 플라자 호텔에 모여있던 슈워제네거의 지지자들은 열광하며 기쁨을 나눴다. 그가 처음 주지사 출마를 선언했던 투나잇 쇼의 진행자 제이 리노의 소개로 연단에 오른 슈워제네거는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며 "이곳에 '완전히' 빈손으로 왔던 나에게 캘리포니아는 '완전히' 모든 것을 갖게 해줬다. 그리고 오늘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여러분이 나에게 준 신뢰다"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로 미국 역사상 주민의 소환에 의해 주지사직에서 물러나는 두 번째 주지사가 될 데이비스 현 주지사는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의 판단을 존중한다. 방금 슈워제네거에게 전화를 해서 인수인계를 위한 절차에 잘 협조하겠다고 전했다"라고 말하며 선거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이번 선거와 함께 상정된 법안 가운데 하나인 주민발의안 54에 대해 찬성 36%, 반대 64%로 부결이 확실시 되는 것으로 보인다. 방송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주민발의안 54에 반대하는 투표자들은 인종과 상관없이 골고루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발의안 54는 소수계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으로 인해 부당한 역차별이 발생한다면서 이것의 철폐를 주장했던 지난 1996년의 주민발의안 209를 제안한 와드 코넬리(Ward Connerly)가 다시 한 번 추진시킨 법안으로 한인을 비롯한 소수계 커뮤니티에서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사안이다.

부스타멘테 후보는 "비록 선거에 패배했지만 열심히 일해준 모든 캠페인 실무자들과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전하고 "주민발의안 54의 부결은 매우 의미심장한 결과"이며 "이것은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더 이상의 '억지 정책'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한편 방송사들의 출구조사를 통한 분석에 따르면 선거 막판의 폭로전으로 기사회생의 가능성을 기대하던 데이비스 주지사는 경기 악화와 그의 업무수행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절반 이상의 라티노 유권자와 노동조합원 유권자들이 주지사 소환 찬성에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가들은 이들이 바로 지난해 데이비스의 재선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줬던 두 그룹이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 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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