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파병하면 모술로 못 돌아가죠"

"모술지역, 긴급구호단체들도 철수할 정도로 위험"

등록 2003.10.17 16:51수정 2003.10.1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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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사회는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느냐를 놓고 찬반양론이 뜨겁다. 파병된다면 예상주둔지인 모술지역의 상황은 파병결정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정부가 주관한 현지조사단이 모술지역의 치안상태가 나아지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그 조사가 불성실한 조사였음이 드러남에 따라 모술지역의 상황에 대한 갖가지 예측이 난무하고 있다.

<사이버참여연대>에서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라크 모술지역에 3개월 동안 머물렀던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을 만나 모술지역 상황을 직접 확인했다...<필자 주>


모술지역 치안상황부터 물었다.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모술지역이요? 긴급구호팀들마저 철수하는 상황입니다. 긴급구호요원이라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도 구호를 위해 뛰어드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도 철수할 정도라면 위험한 것이죠.

UN은 700명 중에서 20명으로 구성된 연락사무소만 남겨놓고 나왔고 국제적십자도 직원들을 철수시킨다고 들었어요. 옥스팜(Oxfarm)이라는 큰 단체도 철수할 계획으로 알고있고. 우리도 철수했잖아요.

상황은 좋지 않아요. 긴급구호팀은 최소 12명은 있어야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한 팀을 꾸릴 수 있는데요. 그것도 구성할 수 없었어요. 비상상황시 한 차로 철수해야하니까 4명만 꾸려 일했어요."

구호라고는 하지만, 연일 사상자가 생기는 전쟁터다. 3개월 동안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


"예전에 세계일주할 때는 이라크에 못 갔어요. 백방으로 노력했는데도 비자가 안나오더라구요. 드디어 이번에 89번째 나라로, 여행가가 아닌 긴급구호팀장으로 이라크에 가게 된거죠.

저는 고대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이나 바그다드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고 그러니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의 대상이었죠.


그런데 가보니까 난리가 아닌거예요. 치안이 안좋아서 매일매일 무슨 일이 생기는 거예요. 학교정수기 안에는 폭탄이 들어있죠. 그럼 영국폭탄제거반에게 부탁해 폭탄을 제거하죠. 우물 파는데 쓰는 펌프를 누가 훔쳐가서, 그걸 잡으러 가야하기도 하고, 또 공사하다가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고 아무튼 매일매일 무슨 일이 생겨요.

그뿐이 아니죠. 3개월 동안이 이라크의 여름이었는데 평균 53도가 넘는 날씨였어요. 저녁에 샤워기를 틀면 컵라면을 익혀 먹을 만큼 뜨거운 물이 나와요. 그게 낮동안 지붕 위 물탱크에서 달궈진 거죠. 그 물을 받아서 식힌 다음에야 샤워를 할 수 있죠.

에어콘은커녕 선풍기라도 돌릴 수가 있나, 전기가 없잖아요. 그런데 방탄조끼를 입고 다니니 온몸은 땀띠죠. 따가워서 잠을 못자요. 너무 더워서 잠은 아예 안와요. 또 벽은 너무 뜨거워서 닿을 수도 없고. 잠깐만이라도 더위를 식힐 수가 없어요. 거기에 한국과 연락하려면 시차가 안맞으니 더 잠을 못자고, 그래서 제가 병이 난 거에요."

지금 한비야씨는 극심한 탈진현상으로 인해 안면근육이 마비되기까지 했다. 한국에 들어온지 한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 완치되지 못했다. 인터뷰를 시작한지 30분가량이 지나자 벌써 얼굴 한편이 굳어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굳어가는 뺨을 손으로 잡고 그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정부가 파견한 이라크 현지에 대한 1차 보고서에는 모술지역의 치안이 좋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담겨 있다. 조사보고서를 한비야씨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한참동안 꼼꼼히 읽은 후 답했다.

"이 조사보고서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작성했겠지만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 우리 군이 전투병으로 파병된다면 이 보고서에 적힌대로 '군사작전보다 치안유지 및 재건지원에 집중'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적어도 모술지역에서는요.

원래는 점령군이 그 지역의 치안유지를 담당하잖아요. 우리같은 구호단체들의 안전도 챙겨야하구요. 그런데 지금 점령군은 그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알테고 자기들도 시인할 거예요.

점령군 대부분인 미군에 대한 이라크의 반연합군세력의 공격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미군들은 그에 대응하기 급급하죠. 주민들 치안유지와 재건지원보다는 자기 안전유지가 더 급하다는 느낌을 줘요. 미군들은 그야말로 자기 코가 석자예요. 자기들 치안이 너무너무 급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치안에 신경쓸 경황이 없는거죠.

그래서 결국 우리같은 인도적 구호단체는 물론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죠. 긴급구호팀으로 현장에 가면 통상적으로 그 지역 점령군이나 유엔의 안전브리핑을 받거든요. 우리가 일일이 안전상황을 꿰뚫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유엔의 물자창고 등을 같이 쓰는데, 이번 모술의 경우는 반대였죠. 유엔 물자창고에 불이 나고 총알이 날아드는 상황이니까요."

검문검색이나 수색작업은 실제로 사람이 죽는 수준일까. 총격전이 벌어지는지, 사상자가 생기는지 물었다.

"그럼요. 수색작전에서 저항하는 이라크인들이 다행히 무기도 없고 잔챙이들이었다면 양쪽 사상자 없이 끝나겠지만, 만일 최후의 저항이다 이러면요?

시장에 가면 수류탄 정도는 굴러다녀요. 수류탄은 1달러에 4개씩 판다니까요. 미사일 있냐고 하면 아마 얼마줄래 이럴걸요. 별거 다 있어요. 돈만 있으면 무기야 얼마든지 있어요. 정말 위험하죠.

이런 상황이니 치안유지가 보통 일이 아니죠. 지금 당장이라야 미군보다 한국군에 대해 저항감이 덜하기는 하겠지만 우리도 미군과 같은 일을 하게 되면요? 이라크인들은 한국군이 뭐하러 오는지 아마 모를걸요. 왜냐면 CNN이나 BBC 등의 뉴스에서나 미국 내에서도 한국 파병은 크게 다뤄지지 않잖아요.

미군 대신 검문검색하고 데모진압하고 수색작업하면 어떨까 하고 물어봐야죠. 그런거 없이 이라크인들에게 미군이 좋아 한국군이 좋아 하면 당연히 한국군이 좋다고 대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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