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병 파병, 왜 또다른 가해자가 되려합니까

등록 2003.10.19 00:47수정 2003.10.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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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드디어 전투병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전투병 파병은 이렇게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이루어지고 마는가 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정부가 결국에는 '파병을 결정할 것'이라고 예측을 했습니다. 북핵문제, 향후의 이라크 경제복구나 석유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이익, 그리고 미국 주도의 세계역학 관계에서 미국의 그늘에서도 가장 짙은 쪽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형편 등을 고려한다면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불을 보듯 뻔할 것이라는 이야기였지요.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결국 그런 사람들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파병결정'은 이미 오래 전에 내려졌고, 국민들에게 파병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한 의도적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정부의 이번 파병결정이 그간 이야기했던 것처럼 얼마나 '고뇌에 찬 결단' 이었는가를 실감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어떤 명분의 전쟁이든 간에, 물리적 충돌의 현장에서 논리를 찾는다는 것, 이성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명분을 찾는다는 것 역시 쉽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전투병을 파병한다고 했을 때, 아무리 투철한 명분을 개개인의 병사가 이해한다고 하여도 언어도 통하지 않고, 미군 이외의 다국적 군에게도 공격을 감행하겠다는 급진단체와 외세에 배타적인 이라크 민중들에 둘러싸인 우리 병사들이 그러한 현실을 얼마나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파병된다고 하여도 군대는 궁극적으로 아픔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닌, 전투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불안정한 상황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독재자가 사라지고 그간 가로 막혀온 민중의 온갖 요구가 터져 나오는 혼란한 사회가 당연히 쉽게 안정될 리 없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검은 황금'을 노리는 제국주의에 의해 통제되기를 원하는 민중은 더더욱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은 보수적인 우리 매체들조차 조리있게 설명한 바 있지 않습니까.

명분없는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왜 우리 군대를 파병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파병한다고 하여도 필수적으로 민중의 분출되는 요구와 정면으로 부딪힐 것을 왜 직시하지 못하는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미국의 전쟁이 석유를 위한 것이었음을 지적한 보도가 TV나 신문에서 몇 번씩 보도되었던 것을 보면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이 전쟁의 '깊은 뜻'을 잘 알고 있을 테지요.


몰락한 왕국인 러시아도, 둔해진 과거의 경제대국 독일도, 그리고 똘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마저도 미국이 가고있는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뭐, 놀랍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서구의 1등 자본주의 사회는 UN이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합법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힘없는 나라 대한민국이 무얼 하겠느냐는 사람마저 있습니다. 우리도 신속히 전투병을 파병하고 경제적 실익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미 의료, 건설 지원단이 파병된 마당에 무엇을 더 지체해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이 의외로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부(富)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현대사회의 중심국의 부는 구조적인 주변국의 희생 위에서 가능합니다. 이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강화되어 가겠지요. 덩어리 큰 자본이 더 큰 덩어리의 자본으로 전화해 가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저열한 원리가 아니던가요.

자. 이제 우리 정부는 전투병을 파병한답니다.

우리도… 수십년 미국과의 혈맹을 깨뜨릴 수가 없어서, 한반도 주변 상황에서 미국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 기타 등등 여러 이유로…세계 제국주의가 걸어가는 길의 끄트머리에 주변국들의 부를 조금이나마 얻어 챙기겠다는 생각으로…(과연 실현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투병을 파병한답니다.

군복무를 하는 것도 그리 좋은 경험이 아닌데… 해외에서 배타적 민중에게 둘러쌓인 채로, 우리의 전투병이 주로는 제국주의적 이익에 매우 부수적으로는 우리 대한민국의 이익에 복무하게 됩니다.

거듭되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워 끝내 독립을 쟁취한 베트남의 역사를 우리는 그리 잘 알고 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의 독립투쟁에 '적'으로 등장했던 가해자의 하나였기 때문이지요. 30만의 병력을 파병하고, 가장 용맹하게 그들과 맞서 싸웠던 강력한 적수였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 전쟁을 통해 근대화의 기틀을 잡았다고도 하긴 하더군요.

너무 과도한 상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려고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혼돈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우리의 전투병이 방아쇠를 언제 당길 지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요.

'국가적 이익'을 위해 파병을 결정하고, 정작 그 현장을 다녀온 사람들은 냉정하게 버려졌던 우리 사회의 과거를 우리들은 너무 쉽게 잊고 있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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