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메뚜기의 고단한 삶

메뚜기는 한 철이지만 숭고한 임무를 완수하는 삶을 산다

등록 2003.10.20 23:58수정 2003.10.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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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를 보는 날 첫 장면에서 펼쳐지는 누런 벼이삭이 출렁이는 들판을 보고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다소 낭만적인 생각을 했다. 그 영화가 공포영화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낭만적인 영화 또한 아님에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출렁이는 벼이삭과 함께 어린이들이 메뚜기를 잡는 풍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찬 이슬을 참고 견디며 이른 아침에 만난 메뚜기 한 쌍
찬 이슬을 참고 견디며 이른 아침에 만난 메뚜기 한 쌍김훈욱
요즘은 농약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한 메뚜기를 보호하기 위해 양재천변에 메뚜기를 방사하는 것이 방송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고, 어느 농촌에서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그 고장 쌀을 선전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메뚜기 잡기 행사를 개최하고 있을 정도로 귀한 곤충이다.

어릴 적 내가 자란 고향에도 메뚜기가 많이 있었다. 풀숲이나 논두렁에 가면 메뚜기가 하도 많아서 얼굴에 부딪히기도 하고 어떤 놈은 몸에 앉아 쉬기도 할 정도였다.

미국 어느 지역에는 메뚜기떼가 출현하여 농작물의 피해가 심하다는 뉴스를 접하고, 유명한 소설에도 메뚜기 떼의 피해가 묘사되어 있지만 어릴 적 기억으로는 메뚜기가 그렇게 나쁜 곤충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가끔 벼 잎사귀를 포함한 풀잎에 앉아 빠른 속도로 잎을 갉아 먹는 모습이 보였으나 사람이 다가가면 조심스레 잎사귀의 뒤로 숨는 귀여운 곤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놀다 심심하면 메뚜기를 잡으러 다녔다. 대부분의 경우 장난으로 잡아 가지고 놀다 닭 모이로 줘 버렸지만 많이 잡으면 기름에 튀겨 반찬으로 먹는 경우도 있었다.

메뚜기를 잡으면 강아지 풀줄기를 뽑아 메뚜기의 목 부분에 있는 딱딱한 각질 부분에 강아지 풀줄기를 꽂아 꿰고 다녔는데, 이것도 그냥 꿰어 놓기만 하면 메뚜기가 힘센 뒷다리로 발버둥치면서 목이 잘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필히 뒷다리 끝부분을 잘라 주어야 한다.


지금 생각하면 잔인한 것 같지만 그 당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요즘처럼 곤충이 귀하지도 않았고 자연보호라는 활동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 그대로의 생활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들길에서나 볼 수있는 강아지 풀. 이삭이 있는 쪽이 굵어 메뚜기를 꿰는데 안성마춤이다.
어느 들길에서나 볼 수있는 강아지 풀. 이삭이 있는 쪽이 굵어 메뚜기를 꿰는데 안성마춤이다.김훈욱
메뚜기를 잡는 것도 기술이 필요한데, 메뚜기를 잡을 때 한쪽 다리만 잡으면 자신의 다리를 잘라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있어 다리를 잡을 때는 꼭 두 다리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그리고 메뚜기를 잡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것은 암수 한 쌍을 동시에 잡는 것이다. 한 쌍이 함께 있는 메뚜기는 날지 못해 잡기 쉬울 뿐만 아니라 한번에 두 마리를 잡으니 일석이조가 되기 때문이다.


당시는 그런 한 쌍의 메뚜기를 잡으면 기분이 좋았지 왜 메뚜기들이 잡힐 위기가 닥쳐도 서로 떨어져 도망가지 않는지 아니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런 상태로 지내는지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위에 실린 사진과 같이 덩치 큰 암놈이 작은 수놈을 업고 있는 메뚜기 한 쌍을 발견한 것은 늦가을 이른 아침이었다. 우연히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메뚜기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는데,그 이튿날 비슷한 시간에 다시 그 곳에 갔을 때도 메뚜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밤 시간에는 제법 쌀쌀한 날씨라 상당한 추위를 느꼈을 텐데 밤이슬을 맞으며 하루 이상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하찮은 미물이라고 여기는 메뚜기도 종족 번식을 위해서는 다른 동물들의 위협과 찬 이슬을 몸으로 막아 내는 숭고한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암놈메뚜기는 어떻게 구멍을 뚫는지 모르겠으나 주름이 있는 꽁지로 구멍을 판 후 꽁지를 길게 늘려 땅속에 넣고 알을 낳는다. 어릴 적에는 이런 모습으로 땅에 붙어 있는 메뚜기는 전연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강제로 꽁무니를 땅에서 빼내어 버리는 장난을 한 적도 있었다.

전문가가 아니라서 자세한 과정은 기술할 수 없으나 이렇게 낳은 알은 겨울의 추위와 논두렁 태우기 등을 무사히 넘기고 이듬해 봄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

우리는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비유하며 폄하하지만, 메뚜기도 짧은 기간이지만 다른 생물들처럼 수많은 위험을 모성애로 극복하는 고단한 삶의 끝에 후손을 번식하는 숭고한 임무를 완수하고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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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아름다운 자연과 일반 관광으로 찾기 힘든 관광지, 현지의 풍습과 전통문화 등 여행에 관한 정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생활정보와 현지에서의 사업과 인.허가에 관한 상세 정보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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