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백년 경영의 차원에서 파병을 반대한다

등록 2003.10.23 17:50수정 2003.10.2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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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이유들로 이라크 전투병 파병을 반대한다.

첫째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전쟁 후 전쟁 (The War After War)’에 대한 파병이며 사실상 참전이라는 점에서 반대한다.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은 이라크 정부군에 소속되었던 전직 군인이나 총기를 갖고 있는 민간인이 총격을 가해올 경우 발포하여야 한다. 의료, 공병 부대와 달리 교전에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점에서 이것은 참전이고 파병이다.

평생 전쟁에 종사해온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전쟁은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가져야 하기 때문에 확고한 원칙과 전술적 법칙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나폴레옹의 전쟁 금언, 책세상). 우리는 이라크 참전에 어떤 명확한 목표, 확고한 원칙, 전술적 법칙을 갖고 있는가.

둘째,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11억 이슬람권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이라크 땅에 무기를 들고 나타난 한국군을 이라크 인이나 아랍인들이 어떻게 볼 것인가. 자기 편으로 보는가. 미국 편으로 보는가.
한국은 70년대초 세계 석유 위기 때 아랍인들이 한국을 비우호적 중립 국가로 규정해 원유값을 국제 시세보다 더 많이 치른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이 아랍을 향해 총 한방 쏘지 않을 때에도 그런 대접을 받았는데 하물며 참전하면 어떻겠는가. 총을 든 사람은 총부리를 겨눈 기억을 오래잖아 망각하겠지만 당한 사람은 오래 간다. 한국 역사와 민족 감정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참전 불가피론의 한 가지 근거가 미국이 한국전쟁 때 자본주의 한국을 지켜줬다는 점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어느 땅이 공격을 받았는가. 이라크 전은 미국 본토나 또는 미국의 해외 영토나 기지가 공격받은 게 아니다. 이라크가 9.11 테러에 관련되었다는 증거도 점점 사라지고, 대량 살상무기를 가졌다는 주장도 허위임이 점점 입증되고 있다. 이라크 전은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 하에 치른 침략전쟁일 뿐이다. 미국보수당 관계자들이 갖고 있는 유라시아 포위망은 극동에서 한반도와 대만, 중동에서 터키와 이란, 이라크 라인을 축으로 하고 있다. 전형적인 미국 패권 전략 구도에 동원되는 경우일 뿐이다.

셋째 이라크 파병은 베트남 파병과도 다르다. 그리고 베트남전이 공산군의 승리로 귀결됐듯 이라크 전도 역사의 장기적 관점에서는 아직 승자가 명확치 않다. 분명한 것은 이라크 땅에는 아랍어를 쓰고 이슬람을 믿는 이라크 국민들이 살 것이라는 점이다. 이라크는 괌이나 하와이, 푸에르코 리코가 될 가능성보다 한국이나 베트남, 독일 같은 하나의 민족국가로 남을 가능성이 더 크다.

경제적 실익을 얘기한다. 반대로 경제적 손실의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석유 확보 노력에 가담해 덕을 볼 약간의 가능성도 있지만 70년대 석유 위기 때처럼 손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또다른 측면에서 말하자면 우리가 당장 눈앞의 이익에 끌려 참전할 경우 경제적 이익을 챙길 수 있지만, 길게 보면 미래 한국인 세대의 경제적 손실을 심어놓는 일일 수도 있다.


넷째, 북한을 이야기하나 이도 온당치 못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은 북한이고 이라크는 이라크라는 자세로 나가야 한다. 그런 논리라면 이라크 전에 파병된 한국군이 몇 백명 죽어야 미국이 진일보된 대북 양보안을 제시할 것이다. 그런 논리는 약자가 약자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세다.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외교에 있어 중요한 것은 머리나 기술이 아니라 애국하는 마음, 뜨거운 가슴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외교는 머리나 기술을 보강한 것도 아니고 애국하는 마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노 대통령은 외교 안보 분야에서 좀더 분발이 필요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포함한 국가 원로에게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 막말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대미 강경의 핑계도 떠넘길 겸 동교동을 방문해 한수 배우고 난 뒤 정책 방향을 선회하는 것도 통치의 기술이다.

역대 대통령들을 빗대어 인사, 외교, 경제, 정치 분야 별로 등신, 귀신이라고 등급을 매긴다. 예컨대 이승만 전 대통령은 외교에 귀신, 인사에 등신이라는 식이다. 노 대통령의 성적표는 어떠한가. 서둘러 평가하고 서둘러 평가받을 필요는 없지만 이를 감안해서 결정, 행동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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