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慘慽)의 고통, 박완서의 책을 읽으며

먼저 떠난 아들에게 쓰는 편지(9)

등록 2003.10.22 23:13수정 2003.10.2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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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에게


요즘 며칠 동안 가을 햇살이 다사롭더니 오늘 아침 출근길엔 이곳 금강의 그 유명한 안개가 자욱하더구나. 이 안개를 소재로 몇 편의 소설을 쓰기도 했던 내게는 유달리 애착이 가는 자연 현상이기도 하지.

때로 짙고 뿌연 안개는 옛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아늑하고 포근한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어느 땐 우리 미래의 불투명한 삶을 상징적으로 예시해주는 것 같기도 하잖니. 김승옥 선생은 '무진기행'이란 작품에서 삭막한 현실을 벗어난 정신적 안식처로서 수면제를 만들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무진의 안개를 설정했지만, 그 무진이란 곳은 지도에도 안 나오는 상상의 장소였던 것처럼 말야.

하지만 '가을 날씨 좋은 것과 늙은이 기운 좋은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속담처럼 낮부터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구나. 약간의 비가 내리고 난 뒤 강풍과 함께 기온이 영하로 급강하 하리라던 일기예보가 있더니 그게 적중하는 모양이지? 하긴 이제 절기가 상강(霜降)에 가까웠으니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구나.

우리 집 베란다에는 방치해두다시피 한 화분이 하나 있는데, 여름 내내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던 거기에서 엊그제 노랗고 작은 국화 꽃송이 여러 개가 요술처럼 얼굴을 내밀었더구나. 다른 화분처럼 물도, 거름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근근히 생명을 이어가던 그 식물이 가을을 맞아 만들어낸 그 신비한 꽃망울을 바라보며 난 혼자서 여러 생각을 했단다.

서정주 선생 식의 거창한 깨달음이나 발견은 아니지만, 서리 내릴 무렵이 되어서야 그 강인한 자기완성의 노동을 진한 향기로 마무리하는 작은 꽃 속에 또 하나의 경건한 세계가 녹아 있는 듯하더구나.


봄과 여름을 거치며 푸대접을 받던 저 국화 화분처럼 우리 사람도 한 평생을 살다 보면 예외적인 일부 사람을 빼고는 참으로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없겠지. 사람에 따라, 주어진 조건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통 가운데 가장 가혹한 것은 무엇일까.

돈 때문에, 사랑 때문에, 명예 때문에, 성적 때문에 오늘도 고통에 눈물짓는 사람이 수 없이 많겠지. 그 가운데는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귀한 목숨을 스스로 끊는 비극도 적지 않을 거야. 실제로 우리나라도 불명예스럽게 세계 1위를 다투던 교통사고로 숨지는 사람보다 자살자 숫자가 더 많아졌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지.


그러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고통도 참척(慘慽)을 당한 사람의 그것에 비할 수는 없을 게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없겠느냐만, 설혹 사랑이 좀 부족했었던, 흔히 하는 말대로 아무리 '원수 같던 자식'이라 해도 그가 부모에 앞서 세상을 떠난다면 그건 그 부모에게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니.

하물며 자기 목숨처럼, 아니 그보다 더 아끼고 사랑했던 고귀한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애석하고 절통한 일이겠니.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게 바로 자식일진대, 그런 자식을 자기보다 먼저 떠나 보내야 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지고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일 텐데, 그것을 실제로 당한 사람의 고통이 어찌 인간의 어줍잖은 언어 몇 마디로 온전히 드러내질 수 있겠느냐.

너도 그 성함을 기억하리라고 생각되는데,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그 단아하고 맛깔스런 작품으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계신 분이지. 불혹이 넘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그 어떤 작가보다도 좋은 작품을 많이 창작하셨고, 요즘까지도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계신 분인데, 이 분이 5남매 중의 외아들을 잃는 참척의 고통을 당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걸로 생각되는구나.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가을, 남편을 여읜 지 얼마 안 된 즈음에 25년 5개월 된 의사였던 외아들이 세상을 떠났지. 위로 둔 딸들 가운데는 이미 결혼을 해서, 사위와 손주를 본 할머니이기도 했지만, 남편이 떠나고 난 뒤 남편 겸 아들이었던 그 자식을 그렇게 보낸 그분의 심정이 오죽했겠니.

당시 그 분이 자신의 참담했던 심정을 기록했던 일기 형식의 글이 나중에 책으로 묶여져 나왔는데, 난 신문에서 그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그걸 사서 읽을까 말까 매우 망설였단다. 그 책 내용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어났지만, 혹시라도 그 끔찍한 내용이 내 머리 속에 기억되어 너나 네 동생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상상의 빌미를 주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어 결국 나는 그 책을 보는 걸 포기하고 말았지.

그러다가 올 봄, 너에게 그 참혹한 일이 있고 난 후 불현듯 그 책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몇 군데 서점에 문의해 보았지만 절판이 되어 책을 구할 수가 없더구나. 이곳저곳을 찾다가 어렵사리 도서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그 책을 발견했지. 대출을 받아 가지고 나와 앉은자리에서 그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단다.

"한 말씀만 하소서" 이게 그 책의 제목이란다. 일기 형식으로 된 그 책을 읽으면서 난 책갈피마다, 한 문장마다 공공도서관의 소장 자료라는 생각도 잊은 채 내 눈물로 얼룩을 지게 만들고 말았구나. 어쩌면 내 심정을 그렇게도 여실(如實)하게 글로 표현해 놓을 수 있단 말이냐. 나도 명색이 소설을 쓴다고 30년 넘게 글을 써 오고 있지만, 그 분은 참으로 내가 따라잡기 어려운 대단한 문필가라는 생각을 숨길 수가 없더구나.

그 분의 아들 원태라는 청년은 우연인지는 몰라도 너와 똑같이 만 25년 5개월 동안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났더구나. 또 딸들이 있는 집안의 외아들이었다는 점, 착하고 순한 성격의 아들이었다는 점, 그 가문 안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이였다는 점, 몸이 아파서 그런 게 아니라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 그 분야에서 큰 일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는 점, 게다가 세상을 떠난 시점이 나이는 물론 나머지 개월 수조차 너와 동일한 사실을 발견하고 새삼 그 무서운 우연의 일치에 소름이 돋는 듯하더구나.

물론 그 분은 어머니로서 아들을 잃었고 나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잃었으며, 그 분의 아들은 막내였지만 넌 장남이었고, 또한 의사(인턴 과정을 마치고 마취과 전공의로 근무하던 중이었다)와 공학박사 학위 과정이라는 신분상의 차이, 싹싹하고 다감했던 그 청년의 성격과 속에 있는 것을 잘 표현하지 않았던 너의 성격, 그 분은 천주교 신자이시고 나는 불교 신도라는 차이, 그 분은 고통을 잊으려 술을 드셨지만 나는 술을 전혀 못한다는 점 등 다른 점도 많긴 하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어버이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그 절절한 심정은 공감을 넘어 전율을 일으킬 것만 같이 동일했단다.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은 '수모감'이란 표현이더구나. 예전 시골에서 자식을 앞세운 사람을 가리켜 '자식 잡아먹은 ×'이라고 상대하길 꺼렸다는 이야기와 함께, 남의 동정을 받아야 하고, 가엾은 눈초리의 대상이 되고 하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수모(受侮)인가는 정말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는 일일 게다.

남들은 한껏 위로한다고 하는 말들이, 나는 너 같은 일을 안 당했다는 자랑이나 약 올리는 조롱처럼 들리고, 사소한 말 한 마디나 행동 하나조차 '자식 앞세운 ×이…' 라고 할 것 같아 사람들 만나는 게 두려워지는 마음을 그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

또한 신자(信者)로서 절망에 겨워 신을 부정하고 저주까지 하는 섬뜩함, 모진 생명의 본능 때문에 음식을 억지로 먹고는 모조리 토해내는 이야기, 그 지극한 슬픔의 와중에서도 참척의 주체가 아들이 아니라 딸들 가운데 한 명이었더라면 하는 상상(나중에 부정되지만), 공부 잘 하고 속 썩이지 않는 자식에 대한 자랑이 넘쳐 교만을 떨다가 당한 일이라는 자책 등은 내가 경험했던 것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것 같았단다.

결말쯤에 가서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라는 울분이 '너라고 해서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가'라는 수녀님의 가르침으로 전환되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며 떠나 도착한 미국에서 낯선 사람들과 언어 때문에 괴로움을 겪다가 다시 한국어를 들으며 안도하면서, 숙명적으로 글 쓰는 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는 안도감과 감사의 기도는 가톨릭 신자로서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내게는 그게 어쩐지 '해피엔드'의 공식 수순인 것만 같아서 앞서의 감동이 좀 희석되는 것 같더구나.

난 창피하게도 너를 떠나보낸 슬픔을 겪으며 그 분의 경지와 높이에는 도저히 이르지 못했단다. 그런 처절한 마음을 기록하는 일은 고사하고 두어 달이 지나도록 어떤 글도 단 한 줄을 쓰지 못했구나. 낮에는 미친놈처럼 아무 데나 쏘다니며 몸을 혹사하고, 밤이 되면 자존심을 무릅쓰고 약을 먹고 간신히 잠이 들고, 이곳저곳 절에 들러 떼를 쓰듯 부처님께 네 앞길을 빌고, 맡고 있던 강의도 중단한 채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 실성한 사람처럼 울다가 내려오고, 있는지 없는지 모를 신을 원망하다가 내 운명을 저주하고, 분노에 떨다가 내 무력함에 절망을 하고, 그렇게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세상을 살아야만 했단다.

지금이라고 해서 무에 나아질 게 있겠느냐. 이 비틀린 삶을 벗어나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은 이따금씩 불쑥 떠오르곤 하는 네 생각에 허무하게 무너져 녹아 내리고 만단다. 만나는 사람들이 이제 좀 괜찮아졌느냐고 인사조로 묻곤 하지만,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어떻게 '괜찮아질' 수 있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구나.

그러고 보면 박완서 선생은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정말 대단한 인격의 소유자이시고 타고난 소설가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게 쓰는 이 편지 외엔 어떤 글도 쓰지 못하는 나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반쪽 짜리 글쟁이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다. 내게 언제나 너에 관한 일을 다 잊고 글 쓰고 연구하는 본래의 시간이 되돌아 올 수 있을지, 아마 내 평생에 그런 때가 다시 있을지,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구나.

세상에 참척지통을 당하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련만, 그분들이 그걸 어찌 이겨내고 '멀쩡하게' 세상을 사시는지, 그런 '비결'이 있다면 많은 돈을 주고라도 그걸 사고 싶은 마음이구나.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애절한 고통이 네 앞길을 밝히는 작은 빛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럴 수만 있다면 내 고통이 지금보다 몇 배 더 해도 괜찮으련만, 불러도 대답 없고 물어봐도 소용없는 일이니 이중삼중으로 더욱 고통스럽기만 하구나.

아들아, 결국은 네게 이 세상의 이법(理法)으로 말할 수밖에 없구나. 그게 너에게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부디 이 애비의 슬픔이나 고통 같은 건 생각하지도, 걱정하지도 말고 네 영혼이 언제나 평안하길 간절히 기도하마. 편히 쉬거라,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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