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기에 다시 생각해보는 질 좋은 나락, 벼, 쌀

[가을걷이하는 시골 풍경 2] 간단히 되짚어 보는 벼, 쌀의 역사

등록 2003.10.24 11:12수정 2003.10.2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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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바인으로 수확하여 대형 자루에 담긴 벼
콤바인으로 수확하여 대형 자루에 담긴 벼김규환

주식(主食) 쌀의 춘추전국 시대를 이해하기에 앞서


식 습관과 사회관계의 변화로 외식(外食)과 양식(洋食)이 날로 번창하나 우리나라 사람은 아직도 김치와 된장 그리고 쌀, 쌀밥 없이는 배불리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밥은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래서 주식(主食)과 부식(副食), 간식(間食)으로 나누지 않던가.

쌀, 미(米), Rice, 밥, 쌀밥, 덮밥, 찰밥의 원료를 사투리로 '나락'이라 부른다. '낟가리'는 '나락'을 쌓아 놓은 더미다. 벼과(禾本科) 식물의 대표종으로 자리잡은 벼는 조, 피, 수수, 옥수수와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대나무, 갈대, 억새도 같은 과(科)이다.

껍질을 까고 내부 겨를 벗겨내는 정도에 따라 5분도미, 7분도미, 현미(玄米), 백미(白米)라 한다. 찰벼에서 나오는 찹쌀, 검은쌀인 흑미(黑米)도 있다.

밭에서 자라는 육도(陸稻)와 산도(山稻. 산지에서는 '산두'로 발음함)는 논에서 재배되는 수도작(水稻作)의 약 10%에 불과하다. 지역에 따라 경기미, 호남미, 철원 오대쌀, 두루미쌀, 이천 임금님 수라쌀, 강화섬쌀, 간척지쌀 등 지역 명칭을 브랜드화 하여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으려 한다.

몸에 좋다는 다양한 기능을 첨가한 기능성 쌀도 인기다. 뿐만 아니라 유기농쌀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더군다나 껍질을 벗기지 않아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고 있는 벼를 그냥 보관했다가 소비자가 보는 앞에서 바로 방아를 찧어 주는 쌀이 유행하는 시대다.

바야흐로 쌀의 춘추전국 시대가 펼쳐졌다. 수확 철을 맞아 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넘어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기에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이 글을 쓴다...<글쓴이 주>


보통 쌀이라고 부르는 백미
보통 쌀이라고 부르는 백미김규환

안남미와 자포니카쌀을 아십니까?

안남미(安南米)는 안남 즉, 지금의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인도차이나반도의 메콩강, 메남강 유역에서 생산되는 쌀을 일컫는다. 잘록하기로 유명하고 밥을 해 놓아도 훅 불면 날아간다고 할 지경이다.


그러니 함치르르한 밥맛을 즐기는 동북아 한·중·일 3국인(人)의 입맛에는 맞지 않다. 차진 맛이 전혀 없는 맛없기로 소문난 쌀을 우리는 곧잘 안남미에 비유하듯 말한다. 3년 묵은 정부미(政府米) 보다 못한 쌀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국의 쌀마저 없었던 때가 불과 이십 사오 년 전의 일이다.

1년 두 번이나 쌀 농사를 지을 수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더군다나 사시사철 스콜(squall)의 영향으로 퇴적물이 쌓일 틈이 없으니 물만 먹고 자랐으니 밥이 얼마나 맛이 있을까?

하지만 물 건너 왔다고 다 저급품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는 자포니카형 쌀은 비행기로 공수되어 미군과 강남 부유층으로 흘러 나가고 있다.

누렇게 잘 익은 벼
누렇게 잘 익은 벼김규환

재래종에서 녹색혁명을 일으킨 통일벼, 유신벼를 거쳐 이제 맛의 시대로!

밥맛은 '벼 품종'에 따라서도 현격한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었던 것 중 재래종이 으뜸이고, 요즘 나오는 신품종이 버금이며 그 다음이 사라진 유신벼다. 맨 꼴찌가 통일벼다.

화성벼나 섬진벼, 아키바리라 부르는 추청벼 등 재래종 보다 훨씬 전에 재배되었던 토종에 가까운 벼는 높이가 거의 사람 키에 육박할 정도로 커서 뜨물이 들 무렵 비바람이라도 한번 몰아치면 어김없이 누워 쓰러지니 재배하기가 사나웠다. 뿐인가? 이삭의 숫자도 요즘 벼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현저히 떨어진다. 토종은 이엉 이을 때 요긴하게 쓰고 새끼줄 꼴 때 좋았다.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그 시절 녹색혁명을 주도한 통일벼가 등장했다. 1971년도에 개발되어 녹색혁명을 주도하여 보릿고개를 간단히 넘었던 통일벼는 보통 벼에 비해 줄기 성장이 더뎌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은 탓에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었다. 물론 자연발생적으로 얻어진 돌연변이체였다.

키가 얼마나 작았는지 초등학생의 허리춤에나 닿을 뿐이었다. 기존의 일반벼와 비교하여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니 쓰러지는 일이 없었다. 또한 줄기가 굵어 웬만한 낫으로는 베어지지 않았고 위로 자라기 보다 옆으로 퍼진다고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이다. 나락 귀가 약해 언제 떨어질지 몰랐고 알도 길쭉하였다. 조생종(早生種)이다 보니 그냥 올벼쌀(올개쌀) 먹는 기분만 낼 뿐 이삼일 먹고 나면 입안이 까칠까칠 해서 정부미로 수매하는데 열을 올렸다. 통일벼 덕에 1979년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개선한 품종이 유신벼다. 유신벼는 70년대 후반에 10월 유신을 선전할 목적으로 붙여진 이름인데 벼가 바닥에 떨어질 염려도 줄고 수확도 통일벼 못지 않아 한 동안 인기였다. 밥 맛 좋은 노풍(魯豊)이 한 때 장려되었으나 병충해의 창궐로 '노풍파동' 까지 겪은 바 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호남지역의 경우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와 유신벼가 들판을 점령했으므로 몇 해 전까지 호남미(湖南米)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면서기들의 득달로 그리되었던 것을 한참을 오해하고 살아왔던 우리가 부끄럽다.

까끄라기 '까시락'이 유독 굳고 길었던 찰벼는 도열병이 잘 걸렸다. '차나락' 사이사이에 자주색 벼가 한둘 숨어 있었는데 그것이 요즘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흑미의 원조다.

억새와 벼는 같은 과에 근무합니다.
억새와 벼는 같은 과에 근무합니다.김규환

맛에서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쌀로 관심 이동

유기농 적지는 어디인가?
상류 수변구역을 유기농산지로

1. 상류 고립된 지역일 것

하류는 오염원이 몰려드는 곳이다. 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안전지대가 없다. 예로 들면 김포공항 근처와 부천, 인천, 안산, 김포시에도 농사가 지어지고 있는데 우리의 환경점수를 생각해 보면 아찔할 뿐이다.

2. 수도권을 벗어난 산골짜기

따라서 수도권을 벗어난 산골짜기가 좋다. 맑은 물, 맑은 공기로 토양을 바꾼다면 이곳이 최고다.

3. 집단을 이뤄 농사 지을 것

한 사람이 유기농을 한다고 한들 옆에서 화학비료 치고, 농약 친다면 도루묵이다. 몇 년 간 유기농을 하면 자생력도 높아지는 법이다.

4. 이런 조건을 충족할 만한 곳으로 상수원보호구역 내 수변구역에 집중 육성할 것

물 분담금의 적절한 보상으로 상호간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다. 농민은 유기농으로 지은만큼 더 보상을 받고 도시 소비자는 그 만큼 더 좋은 물과 농산물을 싼값에 얻을 수 있다. 아직도 3% 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기농업의 비율을 향후 10년 간 매년 1% 씩 끌어올리는 방법만이 한국 농업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 김규환
'지역에 따라' 쌀이 좋다 나쁘다고 하는 것은 선단, 선상보다는 중하류 삼각주(三角洲) 지역이다. 이 곳의 쌀은 차지고 끈덕지며 기름진 맛이 나는데 큰 강의 중류로는 여주, 이천 지역이다. 이곳이 벼 재배가 적격인 것은 물이 휘휘 돌아 유기물을 퇴적하고 잠시 쉬었다 가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여주 신륵사 일대의 지형을 연구하면 그 답이 나온다.

하류는 서남쪽 평야지대다. 파주 쌀이 제일 윤기 자르르 흐른다고 하는 건 다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로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그럼 안전하고 건강에 좋은 쌀은 무엇인가? 먼저 '환경적 요인'을 따져야 한다. 유기농법(有機農法) 쌀이 최고라고 하지만 사실은 유기농도 해야 할 곳과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도시 한가운데서 오리나 우렁이가 농사를 대신한들 이미 대기, 토양, 수질이 오염된 곳에서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안친다고 해도 유기농산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일반 서민은 가격이 두세 배나 되는 유기농 쌀을 접하기도 힘들다. 여타 채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어떤 곳인가?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의 산골 중상류지역에서 생산된 쌀이 최고다. 공장이 없는 지역, 상류에 오염원이 없는 지역이 유기농법이든, 관행농법이든 간에 자신과 가족, 소비자의 건강을 조금이나마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경기미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을 필요가 있음을 소비자는 명심해야 한다. 지나친 상술에 의해 충청, 영남, 호남에서 가져온 쌀을 경기도 모처에서 방아를 찧으면 그게 고가(高價)의 경기미로 둔갑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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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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