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항에서의 배낚시, 문어를 따라다니다

로또복권 2장과 문어가 가져다 준 행복(2)

등록 2003.10.26 02:43수정 2003.10.2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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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막 시작하는 대포항은 여전히 손님을 부르는 아주머니들의 음성과 빨간 대야가 좁다하고 펄펄 뛰는 신선한 생선횟감으로 생기에 넘쳤다. 매스컴에서 방어잡이가 한참이라더니 마침 방어잡이 배가 도착했는지 너무 분주해서 우리같은 뜨내기 낚시배 손님을 맞이할 여력이 없는 듯 보였다.

더군다나 배들이 모두 조업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라고 하니 너무 늦게 와도 탈, 일찍 와도 탈이다. 어찌 어찌 가까스로 조그만 배 한 척을 빌려 근해로 나갔다.


a 문어는 물론이고 고래라도 낚을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대포항을 출발한 낚시배

문어는 물론이고 고래라도 낚을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대포항을 출발한 낚시배 ⓒ 김정은

문어잡이 낚시바늘을 바다에 내리고 돌아왔다는 선장은 낚시하기 전에 우리에게 문어잡이 하는 모습을 보너스로 보여준다고 했다. 덕분에 싱싱한 문어 맛을 볼 수도 있으리라는 욕심과 문어잡이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호기심에 들떠 가재미 낚시라는 본업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배에 오를 때만 해도 문어는 물론이고 고래라도 낚을 것처럼 기세등등하였다.

배로 얼마나 나갔을까? 선장이 가리킨 곳에는 빨간 깃발이 꽃힌 스티로폴들이 수면 위에 둥둥 떠있었다. "저 스티로폴을 걷으면 낚시바늘에 걸린 문어가 올라온다"며 기다란 막대로 스티로폴을 하나씩 건져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 둘 끌어올려도 우리가 기다리는 문어는 영 보이지 않고, 낯선 객들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렸다가 허당이 되어 내심 당황한 선장의 모습 만이 보일 뿐이었다.

문어는 커녕 문어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 우리들은 실망을 감추고 본격적으로 주낙을 풀어 낚시를 시작했다. 바다 밑바닥까지 줄이 닿아야 가재미가 문다기에 낚시줄을 힘껏 풀어 바닥에 내리고 가재미 물기를 기다리다가 묵직한 듯해서 끌어올리니 가재미는 안 낚이고 보기에도 징그러운 불가사리가 걸려져 올라왔다.
"에이. 제법 묵직하기에 큰 가재미인줄 알았는데..."

정작 당사자보다 실망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것이 아무래도 오늘 조황은 그리 좋지 않을 것같다. 불가사리가 낚시바늘에 걸릴 정도로 그만큼 우리 근해가 오염이 심하단 말인가?

a 빨간 깃발이 꽃힌 스티로폴들이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모습. 이 밑으로 문어낚시바늘이 드리워져 있다.

빨간 깃발이 꽃힌 스티로폴들이 수면 위에 둥둥 떠있는 모습. 이 밑으로 문어낚시바늘이 드리워져 있다. ⓒ 김정은

"요즘은 이 불가사리와 해파리가 많아져서 큰일이에요. 이 불가사리란 놈은 어찌나 생명력이 긴지, 다리 하나를 잘라버려도 곧바로 증식해 살아나니 완전 잡초같은 생이지요. 해파리도 문제예요. 먹지도 못하는 종이 쓸데없이 그물에 무더기로 걸려 방어잡이를 망친다니까요?"


선장님은 한 마리의 문어도 낚지 못한 민망함을 감추며 애꿎은 불가사리와 마침 바다 위에 떠다니는 투명하고 거대한 해파리 얘기를 했다. 잡초라...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아니 오히려 없어주었으면 하는 잡초같은 생들이 왜 이리 생명력이 질길까?

그건 아마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거의 유일무이한 길이기 때문이 아닐까? 마치 잡초같은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생처럼...그럭저럭 1~2시간이 흐르고 조그만 가재미가 슬슬 낚싯줄에 걸려 올라와 통 속에 얼추 모이기 시작하자 잡는 낚시줄을 내팽겨친 채 모두 싱싱한 새꼬시 회를 먹기 위해 모였다. 먹는 자 와 잡는 자, 지금부터는 오직 먹는 자만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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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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