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코플로위츠의 인간한계 도전

맨발의 아베베나 인간기관차 자토펙과 비교되는 장애인 마라토너

등록 2003.11.06 08:25수정 2003.11.0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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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영웅을 말하라면 대개의 사람들은 아베베와 자토펙을 말하게 된다. 그 이유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는 1960년 로마올림픽과 그 다음 대회인 도쿄대회에서 아무 것도 신지 않은 맨발로 뛰어 우승함으로서 영웅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자토펙은 '인간 기관차'라고 불리는 위대한 마라토너였다. 그는 1948년 런던대회 때 1만m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다음 대회인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m, 그리고 마라톤을 모두 석권하면서 우승하였다.

자토펙의 마라톤 기록은 2시간 23분 3초로서 지금의 기록인 10분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1896년 올림픽이 처음 개최된 이래 가장 나은 기록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인간 기관차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이러한 마라톤에 장애인이 도전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난 2일 뉴욕 마라톤 대회에서 조 코플로위츠는 55세의 나이로 마라톤 풀 코스를 29시간 45분 동안에 뛰어서 완주해 '인내의 화신'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맨발의 마라토너', '인간기관차', '인내의 화신', 모두가 마라톤에서 얻어진 이름들이다. 모두가 그런 말을 듣기에 충분하지만, 이번에 장애인 마라토너로서 인내의 화신이라는 말을 듣게된 조 코플로위츠는 정말로 그러한 말을 들을만한 마라토너다.

장애인 스포츠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의료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장애인 스포츠는 전상자의 재활수단으로 성행하였다. 그 후에 장애인 올림픽대회가 만들어지면서 인간평등과 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제전이 되었다.

영국의 스토크 맨드빌 병원의 구트먼이 1884년에 전 영국 척수장애 상이용사 체육대회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파랄림픽(Paralympics)이 개최되었다. 그 이후로 척수장애 외에도 시각장애, 절단장애, 뇌성마비, 등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러한 장애인 경기에서도 마라톤에 도전하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다. 비장애인들도 몇 시간을 달리는 것이 어려워서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오랜 시간을 달려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운동이다.

하지만 최근 이 경기에 도전하는 장애인들이 많아졌다. 이번 뉴욕 마라톤에서도 장애인 마라토너 모임인 아킬레스 클럽의 회원 1천여 명이 참여해서 뛰었다. 이 가운데 조 코플로위츠는 50대 후반 나이로 목발을 짚고 마라톤 풀 코스를 뛰어서 완주했다.


그녀는 맨발로 달려서 우승을 한 아베베나 인간 기관차 자토펙과 비교하게 된다. 그들의 기록보다 27시간 이상이나 늦은 기록이지만 그의 신체적 조건을 고려하면 초인적인 달리기를 한 것이고, 그 불굴의 정신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30년 전부터 그녀는 중추신경계가 굳는 다발성 경화증이 있었고, 49세 때부터는 당뇨병까지 앓고 있었다. 그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번 마라톤까지 18번이나 참여해서 풀 코스를 완주하였다.

그녀는 달리다가 굳어지는 근육을 펴주기 위해 1마일마다 쉬어야 하고, 2시간마다 혈당체크를 받으며, 필요하면 인슐린주사를 맞으며 달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열렬히 응원하고 격려하며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이라고 했다.

위대한 장애인은 마라토너뿐만이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가 있다. '빛의 천사'로서 세계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켈러(H.A.Keller)와 귀머거리 천재 음악가 베토벤도 장애인으로서 위대한 인물이었다.

미국의 사회사업가였던 켈러는 맹농아로서 삼중고의 성녀라고 불린다. 생후 19개월에 큰 열병을 앓고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었다. 앞을 못보고 말 못하며, 듣지도 못하고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못하고 누워 있기만 하다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불굴의 의지로 그것을 극복했다. 하버드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세계 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농아자가 되었고, 사회사업을 통해서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맹농아였다.

또한 독일의 작곡가 베토벤은 귀머거리 음악가였다.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음악이라는 것이 귀가 먹으면 할 수가 없는 것이지만, 작곡과 연주를 하고 지휘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비장애인들보다도 더 뛰어난 음악활동을 했다.

1800년에 제1교향곡과 6곡의 현악4중주곡을 발표할 때 그의 나이가 30세였다. 그 때에 귓병이 심해서 유서를 쓰고, 연주자로서의 활동을 포기하며 죽으려고까지 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작곡에만 전념했다.

그 후에 필담으로만 대화가 가능했지만 더욱 작곡에 열중하여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폐렴과 수증에 걸려 5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청각을 잃고도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많은 장애인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장애인들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고 그것을 성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이유는 비장애인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으로 보면, 이번에 목발을 짚고 마라톤의 풀 코스를 완주한 조 코플로위츠 역시 대단한 일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인내의 화신'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가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소금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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