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죽음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남은 자의 슬픔이 더 큽니다

등록 2003.11.06 09:19수정 2003.11.06 17:1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82년 봄, 대학입학식을 앞두고 과별로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각 지역에서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막막함을 애써 숨기던 그런 자리였습니다.

우선, 제일 가까운 옆자리에 앉은 입학동기에게 수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인연으로 입학식을 하는 동안, 또 신체검사를 하는 자리까지 줄곧 동행을 했습니다. 인연이란 묘해서, 신체검사를 받으면서 키도 똑같고, 몸무게도 똑같고, 출신 중학교가 도내에서 '연식정구'로 결승전에서 매년마다 맞붙었던 적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지금은 고인이 된 그 친구의 이름은 '안재욱'입니다. 허물없고 숨김이 없었던 1,2학년을 보내고 군복무를 마치고 취업과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던 3,4학년…. 그렇게 짧지않은 세월에 글로 표현못할 우정을 간직할 수 있었고, 그 인연은 평생을 동무로, 동반자로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울과 대전으로 직장이 갈려서 서로 왕래를 자유스럽게 하지 못하던 어느 때, 갑자기 저에게 나타나서 그 동안 자주 못보던 한을 달래듯 술을 마시고 취하고, 취중에 갓 결혼해서 임신 3개월이라는 아내 자랑을 팔불출처럼 늘어놓던 친구가 쉬는 날 다시 보러오겠다고 올라간 서울길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만남과 죽음"까지가 이 진부한 이야기의 전부였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을 겁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하게 헤아리지 못하지만, 아니 헤아리려고 생각치도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몇해가 지난 후, "안재욱"이라는 연기자가 텔레비전에 등장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안티팬은 아니지만 그 연기자가 나오는 연속극은 아직도 저는 꺼려집니다.

살면서 드물게 생각나서 저를 괴롭히는 그 이름을 지워보려고 나름의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어차피 추억을 지우지 못할 바에야 극복해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친구가 중고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사서 듣던 잡음섞인 LP판에 수록돼 있던 '슬픈 로라'라는 곡을 기타연주곡으로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간동안 그 친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에 혐오감에 가까운 몸서리를 쳤던 저로써는 정말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생각보다 효과는 컸습니다. '슬픈 로라'를 완전히 익혀서 악보없이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문득 이제는 좋은 기억만 남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제가 아는 라디오 방송국 리포터 한 분이 '신청곡 코너'에 필요하다면서 '추억이 있는 음악'을 신청하는 멘트를 녹음해달라며 마이크를 넘기더군요. 처음에는 진지하고 차분하게 친구와의 지난 얘기를 곁들여서 '슬픈 로라'를 신청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다 잊고 좋은 기억만 남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봅니다. 얘기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다시 가슴이 뛰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지금 다시 그런 증상이 나타나는군요.

죽음을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남게 되는 사람을 먼저 생각해 주세요. 세상에 감당 못할 슬픔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죽음'이 만든 슬픔은 분노할 대상이나 원망할 대상이 없는 '영혼의 슬픔'입니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다가 어느 순간 돌아보면 밝은 곳의 반대쪽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입시와 노사문제로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보도를 보고 들으면서 그 주검보다는 그 뒤에 남아 있을 이웃과 친지가 떠오릅니다. 너무 큰 상처입니다.

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몫은 어쩌면 세상을 등지기로 마지막 선택을 하신 당신들보다 훨씬 크고도 남습니다.

제발 죽음을 선택하지 마십시오!
특히, 수능을 막 치른 아직은 어린 친구들 인생을 조금 더 길게봐 주세요. 20대 때는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 모범답안인 것 같았지만, 30대 때는 일을 성사시키고 앞길을 개척하는데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40이 되고 보니, 아직은 정리되지 못했지만 인생의 목표가 굳이 20대 때에 제가 꿈꾸던 것과 똑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듭니다.

텔레비전에 연일 성공한 기업가로 정치가로 얼굴을 보여주는 분들과, 앞치마를 두르고 나란히 서서 정육점을 하고 계시던 젊은 부부가 떠오릅니다. 누가 행복할지,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지는 본인만이 압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자신의 환경, 경험에 따라서 어느 분이 더 행복한지 가리게 될 겁니다. 절대로 금방, 쉽게 인생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친구의 모습으로, 부모님의 모습으로, 선배 혹은 아내, 남편의 모습으로 있다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나는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공유하고 있는 겁니다. 제발 남아야 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을 그만 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금반지 찾아준 사람이 뽑힐 줄이야, 500분의 1 기적
  2. 2 검찰의 돌변... 특수활동비가 아킬레스건인 이유
  3. 3 '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4. 4 '윤석열 안방' 무너지나... 박근혜보다 안 좋은 징후
  5. 5 "미국·일본에게 '호구' 된 윤 정부... 3년 진짜 길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