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눈물은 왜 짠지 아십니까?

천일염 같은 시인, 함민복이 말하는 코가 짠한 감동적인 삶과 사랑

등록 2003.11.12 00:29수정 2003.11.1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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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낙타가 사막을 건너는 방법에 대해 말했었고, 또 누구는 날씨가 너무 나빴던 이 땅에서 견디는 방법에 대해 말했었다. 이제 '함민복'이라는 시인은 삶과 눈물을 버티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인이 펴낸 산문집인 <눈물은 왜 짠가>는 우선 읽기가 편하다. 시인은 시의 난해함이나 상징성이라는 어려움을 피해 직설적으로 편하게 삶과 사랑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이 그렇게 편하게 말하고 있다고 결코 편한 이야기들만 모여진 것이 아니다. 그 스스로도 '눈물은 왜 짠가'라고 말했듯이 코가 짠한 감동들이 진하게 녹아 있다.


사실 이 책의 소감을 소개하려 할 때 책의 몇 부분을 인용하려 했지만 선뜻 그 인용 구절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뽑고 싶은 인용 구절들이 너무 많아 책장을 덮었을 때는 책이 거의 밑줄로 도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을 때 그 모든 바닷물에도 소금기가 배어 있듯이 이 책은 모든 장마다 그 찡한 소금을 머금고 있다. 시인이 그 시대의 소금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저런 가공된 소금이 많은 이 시대에 드물게도 이 시인은 전혀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소금이다. 단지 바닷물만을 증발시켜 만든 아주 염도가 진한 천일염 같은 사람인 것이다.

소금을 얻기 위해 바닷물을 정제하듯 '함민복'은 삶의 소중한 시어(詩語)를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그 뜨거운 땡볕에 말려 왔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짠내가 난다. 또한 그래서 그 시인은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진정한 글쓰기가 무엇이고 좋은 글이란 어떻게 태어나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 주며 어설픈 치기로 우쭐해 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이 책은 문학적으로도 꽤나 괜찮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무엇보다도 문장이 상당히 아름답다. 시인이 쓴 산문이라서 그런지 곳곳에 시적 표현이 절절히 묻어 난다.


예를 들면 '그 노파의 삶과 내용물을 다 비워내고 재생되기 위해 쓸쓸히 고물상으로 끌려가고 있는 빈 종이 박스의 신세', '혼자 먹는 밥상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차려진다', '그대의 가슴에 따뜻한 우표 한 장 붙여주던, 깡마른 우편배달부 아저씨', '느티나무는 그대 아팠던 기억마저 따뜻하고 푸근한 보름달로 머리에 일지니…', '이방에서 인사성이 가장 밝은 친구는 전기 스탠드입니다. 늘 소녀처럼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저리 고개 숙이고도 밝고 환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의 이런 아름답고 따뜻한 문장은 상당히 시적인 표현을 빌리고 있다. 그래서 마치 산문이 아닌 한편의 시를 보는 듯 하다.


그는 단 석 줄짜리의 ‘성선설’이라는 시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고 한다.

- 성선설 -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어머님 배 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 기억하려는
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 줄이 그의 당선작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 분량에 상관없이 강렬하다. 마치 핵심을 정확히 찌르듯 단 몇 줄로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가 쓴 단지 세 줄의 시가 주는 감동은 대단하다. 나는 이 세 줄을 읽고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아! 정말 대단한 시인이다….'

이런 식의 문장이 곳곳에 박혀 있는 이 책은 한 마디로 정말 소금처럼 짠내 나는 책이다. 좋은 문장, 좋은 글의 진수를 보여주며 문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도 커다란 귀감이 될 만한 깔끔한 단편소설의 느낌을 얻기에도 충분하다.(실제로 시인은 소설도 공부했다.)

하기야 그토록 가난한 그가 그 소중한 직장을 그만두고 구도자 같은 시인의 길로 들어섰을 때는 얼마나 시가 간절히 쓰고 싶어서였을까!

이런 시인의 글을 보며 '시대의 양심이다' 또는 '잘 구워 낸 도자기의 장인 정신을 느낀다'라고 표현해도 그것은 어설픈 수사 같다. 왜? 아무리 그래도 그의 글, 그의 삶, 그의 사랑의 반에 반만큼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작가, 좋은 작품에 대해 이 어설픈 독자가 괜한 어지럽힘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런 작가, 이런 작품이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한다.

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님은 차 시간도 있고 하니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 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갈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 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었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었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스럽게 다가와 성냥갑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이레,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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