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감 따러 가요."

감 따다 떨어진 홍시 빨아먹는 게 최고로 맛있었다

등록 2003.11.13 19:22수정 2003.11.1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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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덕감
멍덕감김규환



21년 전 홀연 떠난 어머니 이제 눈물을 거두렵니다. 슬픔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어머니! 어머니와 온 가족이 함께 감 따러 간 날이 그립습니다. 아마도 그날은 30년 전 쯤 되는 어린 시절이었지요. 그 때로 돌아가 식구들과 홍시 감을 같이 따서 맛있게 먹겠습니다. 어머니도 오십시오.

무서리 내린 뒤라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감이 파란 하늘빛과 대조되어 무척 붉습니다. 점심 배불리 먹었어도 왜 그리 금방 배가 고팠을까요. 그래도 걱정 없습니다. 어머니와 먹었던 가장 맛있는 과일, 감홍시를 따먹으면 되니까요.

바닥에 떨어진 감 하나
바닥에 떨어진 감 하나김규환


간지대와 바구니, 골망태와 띠꾸리(지게에 달린 줄로 짐을 묶을 때 쓰는 질긴 줄), 차대기, 바지게를 준비하여 온 가족 집을 나섭니다. 마른 간지대는 세 개나 챙겨 아버지, 어머니, 형 하나씩 질질 끌고 갑니다. 저는 가도 그만 아니 가도 그만이었지만 제가 빠질 아들이 아니었지요. 아버지가 작년에 만들어 주신 지게를 지고 뒤를 따르겠습니다.

감전지 간지대는 기다란 대 막가지 두툼한 곳을 비스듬하게 낫으로 "촥" 단번에 철겨서(잘라서) 길쭉하게 만들어 쓰던 것이 벌써 이태 째지요. 다음 그곳을 끈으로 묶고 젓가락이나 들어갈 작은 홈을 파면 감 따기에 이만큼 요긴한 물건이 없습니다.


두 분은 밑에 있고 우리 형제들은 2인 1조로 나뉘어 나무에 번갈아 가며 올랐습니다. 둘 중 한 사람은 망태기에 담긴 감을 받아서 아직 붙어 있는 가지와 꼭지를 따서 가지런히 골라 담았지요.

삼굽던 자리에 부쩍 자란 감나무 한그루
삼굽던 자리에 부쩍 자란 감나무 한그루김규환



위에 따는 사람은 가까운 곳은 손으로 직접 나무와 감 사이에 붙은 자루 모양을 봐가며 오므려진 부분 반대쪽으로 툭 밀치면 잘 따졌습니다. 손에 닿는 가까운 곳을 다 따면 감나무 여린 가지를 전지 사이에 넣고 한 개 혹은 서너 개까지 끼워 옆으로 살짝 비틀어서 "톡" 돌려주고 빠지지 않게 조심조심 끌어내려 바닥에 내려놓습니다.

아래서 위를 쳐다보며 따다보면 목이 끊어질 듯 아프니 나무 위에 올라 엉덩이와 등을 실한 나무 줄기에 몸을 밀착하고 간지대로 따나가면 되었습니다. 그래도 조심스러운 것은 붙은 채 홍시가 된 터라 간지대나 감나무 가지에 찔려서 물러 터지고 간혹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밑으로 떨어지는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 할 때는 소나무 삭정이를 그리 손쉽게 낫으로 잘 따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감나무에 오르는 것이 두려웠던 것은 얼핏 잘못하면 살아있던 두꺼운 가지도 언제 "딱" 소리와 함께 몸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쳐질지 모르잖아요. 열길 물 속과 사람 마음 알기 어렵다지만 정말이지 감나무 가지는 정말이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한 때 살았던 집에서도 감나무가  보입니다.
한 때 살았던 집에서도 감나무가 보입니다.김규환


"툭!"
"워매 아까운 거~"

감 한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감 잎 위에 떨어져 다행입니다. "후루룩" 빨아먹기 좋게 퍼질러져 있군요. 여섯 형제 중 제일 '삔치'(날렵한 찌르레기과의 새를 비유하여 어른들이 지어주신 내 별명)인 제가 입술이고 얼굴에도 찐득찐득한 감 알갱이를 묻히고 먼저 빨아먹어 보겠습니다.

"툭!" 하나 더 떨어졌습니다. 또 하나 가서 먹겠습니다. 달짝지근합니다. 팥 넣은 찹쌀 죽 새알심 보다 부드럽습니다. 송글송글 알갱이가 혀를 감고 도는 맛이 왜 이다지 달큼하고 끈덕진지요? 저 몰래 설탕을 듬뿍 쳐 놓으셨는가요?

"아가, 감물 들지 않게 조심혀라와~"
"엄마 걱정 마시랑께요. 쩌기 하나 떨어졌응께 엄마도 하나 드시면서 하세요."
"오냐."

감
김규환


두 개 째 엎드려서 홍시 죽을 빨아먹었으니 이제 거들겠습니다. 바닥에 가지런히 놓인 감을 크기별로 고를까요? 아버지는 옆에 있는 키 작은 감나무를 밑에서 감 전지로 따나가십니다.

"규환아! 간지대에다 망태 올려줘라."
"알았어."

"성(형)! 잡아 댕겨봐."

슬슬 위로 당겨 망태를 감나무에 묶어 걸어두고 더 따나간다.

"아부지 몇 접이나 될랑가요?"
"올핸 감이 많이 달렸응께 한 열 댓 접이나 될랑가 모르겄다."
"한 접이 몇 개인디라우? 몇 개여, 100개지!"

대봉
대봉김규환


아직껏 서울 살면서 시장에서 나는 감 홍시 하나 사먹지 않았습니다. 홍시(紅枾)는 감을 따다가 잘못 건드려 풀숲이나 맨바닥으로 툭 떨어져 쫘악 깨져 죽이 된 흐느적거리는 알맹이를 고개를 숙여 혀로 핥아먹던가 쭈욱 빨아먹는 게 최고잖아요.

그 다음은 쇠그릇에 놓고 껍질만 살짝 벗겨 숟가락으로 으깨서 떠먹는 맛이 일품이죠. 동생은 그렇게 줘야 잘 먹었습니다. 또한 감 따다가 새끼 제비가 먹이를 받아먹듯 고개를 쳐들고 쏙쏙 빨아대고 마지막에 씨만 '튀'하고 뱉어도 그만입니다.

더 시골에 같이 오래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니 어머니와의 끈이 끊어진 뒤로 자꾸 가물가물 하기만 합니다. 제가 아는 감나무도 이젠 몇 가지 안 됩니다. 더군다나 단감나무는 70년대 후반에나 심어졌으니 잘 알지 못 하겠네요.

곶감
곶감김규환


가장 흔한 오려감 파시와 멍덕감, 대봉시(大峯 )와는 무척 친합니다. 똘감, 물감, 뾰쪽감, 산감, 납작감에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고종시(高宗 )로 곶감 깎으면 좋습니다. 멍덕에 싸서 겨우내 지붕에서 살캉살캉 언 감도 먹고 싶어요. 좋은 감 몇 개 골라 된장에 장아찌로 박아 주시면 내년 여름에 입맛 죽여주지요.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익는 시기도 한 달을 사이에 두고 각기 달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몸을 버티지 못하고 감꼭지만 남겨두고 알몸만 먼저 바닥에 떨어진 감 홍시를 꼴 베러 가서 주워 먹는 맛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오려감 파시 3개
오려감 파시 3개김규환


'고구마 하나 무 뿌리 하나 캐 먹지 말라'던 어머니 가르침을 늘 염두에 두고 살는 저는 몰래 따먹을 수도, 감서리를 할 수도 없어 여전히 입안까지 곤궁합니다.

산감은 부지런하고 무서움 없는 사람 차지였던지라 꼴망태에 담아 오거나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백아산 언저리 산들을 뒤지고 다니기도 했지요.

어머니! 이제 그만 하시고 가시죠. 날이 저물고 있어요. 어머니는 집에 가서 맛있는 밥을 해주세요. 세상에 제일 맛있는 밥은 어머니가 해주신 씰가리국(시레기국)에 따뜻한 밥 한 그릇이었습니다. 아참 어머니 오늘은 무 넣고 돼지고깃국 끓여주세요.

무 도톰하게 썰어 비계까지 넣고 끓인 옛날 없던 시절 고깃국
무 도톰하게 썰어 비계까지 넣고 끓인 옛날 없던 시절 고깃국김규환

돌 위에 떨어진 감
돌 위에 떨어진 감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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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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