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과 특검, 둘 다 거부해도 좋다

[차병직 칼럼] 노무현 대통령에게 권함

등록 2003.11.17 15:45수정 2003.11.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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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춘추관 기자실에서 열린 비공식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그는 과연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
지난 2일 오후 춘추관 기자실에서 열린 비공식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는 그는 과연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오마이뉴스 이종호

현명한 사람은 꼭 필요한 것은 거절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개인에게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의 판단은 비교적 가벼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냐는 물음 앞에서 선택은 결코 쉽지 않다.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이 그 어려운 물음을 짊어지고 있다. 그것도 나라 안팎이 관련된 두 개의 문제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 둘 모두 거부와 수용의 문제이면서, 이번 주에 결단을 내리거나 확실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밖의 문제는 이라크 파병안이다. 아직 파병을 반대하는 소리가 드높아 가고있는 가운데, 대략 전투병 포함해서 3000명선이 구체화됐다. 병력의 수는 둘째로 치고, 전투병을 포함해도 좋으냐가 논쟁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파병을 반대했던 일부 사람들도 대통령이 처한 궁색한 지경과, 혈맹이니 국익이니를 외치며 파병을 요구하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고려해서 비전투병 파견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전투병 포함이냐 비전투병이냐는 문제는 불투명해지고 말았다.

그런데 어젯밤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연례안보협의회 일정으로 서울에 도착한 것이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뜻밖에 한국 정부의 결정을 그대로 고맙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바람에 지난 주말만 하더라도 정부의 파견안에 대해 '실망'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다', 또는 '이럴 수가 없다'는 등 미국의 반응을 대변하던 언론들조차 잠잠하다. 칼럼은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기동성을 자랑하던 그 사설들을 통해서도 일언반구 반응이 없다.

원래 예상대로라면 몇가지 점에서 미국의 요구를 어느 선까지 거절하느냐가 노 대통령 선택의 몫이었다. 전투병 포함이냐 비전투병이냐, 3000명 선이냐 5000명 이상이냐, 재건 부대냐 치안 유지군이냐, 내년 4월 이후냐 늦어도 2월이냐.


만약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더이상 거절의 여지가 없게 된다면 그러한 미국의 태도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파병 자체나 전투병 파견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보면, 역시 처음부터 우리가 어리석었다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 현재 이라크의 치안 상태가 극히 불안하기 때문에 파병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다소 어색하다. 치안 상황이 그 정도라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파병해야 옳을 것이다. 그것이 이라크를 위한 것이든, 미국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음으로써 얻는 우리의 국익을 위한 것이든. 목적이 분명하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나서야하기 때문이다.


파병을 해선 안 된다거나, 하더라도 최소한의 비전투병을 보내야 한다는 근거는 따로 있다. 미국의 전쟁 동기와 정당성은 이미 거듭된 것이므로 지금은 논외다. 지금 예측한다면, 현장의 상황으로 미루어 미국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결정은 이라크에서 퇴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년이건 몇 년 후이건, 결국 애초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미국은 9ㆍ11 사태에 이어 두번째 패배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에 처해 있다. 이런 때에 그들의 의도에 따라 파병하는 것이 어떤 대의명분을 가질 것인지는 자명한 것 아닌가.

그래서 자신있게 노 대통령께 권한다. 좀 더 거절하라고. 아니면 좀 더 미루라고.

두번째의 거부는 나라 안쪽의 문제다. 한나라당이 주도하여 통과시킨 새 특검법안의 거부가 최고 쟁점이 되어있다. 대통령이 시기 조절을 이유로 재의를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자, 한나라당은 대통령을 거부(탄핵)하겠다고 맞섰다.

따지고 보면 이 문제는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며 속된말로 '피튀는' 싸움을 벌일 일은 아니다. 대통령은 특검법안을 수용해도 좋을 것이다. 수사중이든 말든 이어받을 특별검사는 대통령 측근을 수사할 것이고, 검찰은 계속 한나라당을 비롯한 나머지 정당과 정치인을 수사하면 된다. 어느 것이 누구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할 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펄쩍 뛸 일도 아니다. 거부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처음처럼 재의결하면 된다.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말이다.

그렇지 않고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감을 탄핵 시도 등으로 확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은 대선과 총선 이외에는 국정이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해선 곤란하다. 오직 모든 정치적 행동을 선거 운동하듯이, 그것도 지난번 경험한 대로 충격의 패배로 치닫는 길의 선거 운동하듯이 해선 안 된다. 그렇게 했다간 두 번째의 패배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역시 노 대통령께 권한다. 특검법안을 꼭 거부하고 싶으면 하라고. 단, 검찰의 수사가 공정했다는 사실을 훗날 특별검사로 하여금 증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확실할 때 거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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