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친구 마틴과 그레그는 무전여행이라는 도전을 즐기고 있었다. 턱수염 마틴이 가운데, 왼쪽이 그레그.김태우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새로운 고난에 도전하여 그 고난에 몸을 맡기려고 하지 않았다면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노숙에 의기투합했고, 그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마틴이 3일 동안 씻지 못했다며 50센트에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노숙을 하게 되더라도 몸을 씻고 싶었기에 나는 순순히 그들을 따라 나섰다. 두 번째 시험은 샤워를 하러 들어가기 직전에 내게 찾아왔다. 샤워장에 락커가 없었기 때문에 한 명이 샤워장으로 들어가면 두 명이 남아 짐을 지켜야만 했다.
마틴과 그레그는 내게 먼저 샤워를 하라며 호의를 보였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오만가지 상상을 다 했다. 그 상상의 클라이막스는 내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사이에 그들이 유유히 나의 배낭을 가지고 사라지는 광경이었다. 나는 그레그에게 첫 번째로 샤워할 수 있는 영광(?)을 양보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복대를 차고 있었지만 배낭에도 지갑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앞에서 지갑을 꺼내어 들고 샤워장으로 향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들을 믿기로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믿으면 다른 사람도 나를 믿을 것이요, 내가 다른 사람을 의심하면 다른 사람도 나를 의심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불같이 내 안에서 일어서는 의심의 불길을 애써 잠재우며 샤워를 했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이 배낭을 가지고 달아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샤워를 마치고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내 배낭을 지켜주며 서있는 그들에게 고마웠고, 또 미안했다.
샤워를 마친 우리는 싸구려 와인을 사기 위해 1시간 30분 가량 아비뇽 시내를 누볐다. 레스토랑에서 파는 와인은 비싸기도 했고, 또 한잔씩 따라서 팔기 때문에 노숙을 위한 와인으로는 적당치 않았다. 잠을 자기 전에 와인으로 몸을 따뜻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몸이 새벽에 닥칠 추위를 견뎌 낼 수 있으니까. 내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지만 새로 만난 친구들 덕분에 한결 피로가 덜 느껴졌다.
그들이 와인을 고르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캔 맥주 3개를 샀다. 그들은 내가 5유로가 넘는 돈을 쓴 걸 알고 놀랐고, 나는 그들이 산 와인이 채 1유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그들에게 맥주를 건네며 한국에서는 좋은 친구들과 술을 나누어 먹는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는 기분 좋게 맥주를 마시며 아비뇽의 고성(古城)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