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데이>가 가판에서 고전하는 이유

[현장분석] '김병현 사건'과 스포츠신문의 위기

등록 2003.11.20 08:47수정 2003.11.21 16:43
0
원고료로 응원
이정환
<굿데이>가 가판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1월 17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시내 20개 지하철역 신문 가판대 21개소를 대상으로 '김병현 파문 이후 <굿데이>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굿데이> 판매가 늘었다는 응답은 단 한군데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절반 가까운 10개소에서는 "최근 <굿데이> 판매가 줄고 있다"고 대답했다.

관련
기사
- <굿데이>가 네티즌들에게 욕먹는 이유

동묘역 가판 종사자(62·여)는 "계속 김병현 기사가 나오면서 굿데이가 아예 외면받고 있다"며 "이전에는 10부 중에 8부가 팔렸지만, 요즘은 반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A역 업주(53·남) 역시 "덕분에 3-4일 동안 다른 스포츠신문도 잘 팔리지 않았다"며 "김병현 기사가 1면에 제일 적게 나온 모 스포츠신문 판매 부수가 제일 많았다"고 말했다.

판매부수/입고부수
판매부수/입고부수이정환
최근 <굿데이>의 판매 부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는 재고비율. 각 가판대는 스포츠신문 중 <굿데이>를 가장 적게 들여놓고 있었다. 하지만 <굿데이>는 김병현 파문 이후 적은 부수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을지로4가역 판매담당자(57·여)는 "근래 굿데이의 판매 부진이 더욱 심해졌다. 오늘(17일) 오전에 딱 한 부 나갔다"고 말했고, 석계역 담당자(73·여)도 "하루에 보통 10부 들여놓으면 8-9부가 나가던 신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단 2부가 나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판매일보'(우측 표 참조)에는 최근 <굿데이>의 판매 부진이 보다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변두리 지역에 위치한 B역 11월 15일-16일(주말) 판매일보에 따르면, <굿데이>의 재고비율은 45%로 나타났다. 도심지에 위치한 C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1월 17일 <굿데이> 재고비율은 60%로 ▲스포츠서울(18.8) ▲일간스포츠(35.3) ▲스포츠투데이(36.9) ▲스포츠조선(41.1) 등보다 높았다.


또한 김병현 폭행(?) 소식이 처음 실린 11월 10일에도 <굿데이>의 판매량은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평소보다 늘어났다"고 대답한 가판대는 단 2곳에 불과했고, 나머지 19개소는 "평소와 비슷했다(10)"거나 "오히려 감소했다(9)"고 응답했다.

<굿데이> 가판 관계자는 18일 전화통화에서 "(김병현 보도) 첫 날은 판매가 좋았다고 본다. 다만 같은 기사가 계속 나오니까 나중에는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굿데이>,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여름에는 단물 빨고 겨울에 먼지 턴다"(?)


21개 신문가판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3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월드스타의 사생활까지 알고 싶어하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만약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11월 10일자 <굿데이> 1면에는 '마침내 김병현 카메라에 잡히다'는 기사가 편집됐을 것이다. 이보다는 김병현의 폭행(?) 소식이 훨씬 더 독자들의 구미를 당겼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독자는 지갑을 열지 않았다.

둘째, 스포츠신문에 대한 불신이 다시 한 번 드러나고 있었다.

김병현 보도가 처음 실린 날, 가판대 종사자들의 회상이다.

11월 10일자 굿데이
11월 10일자 굿데이굿데이PDF
"이것 보지 말아야 된다는 손님도 있었다. 그날 정말 팔리지 않았다"(광화문), "첫 날, 일절 팔리지 않았다"(충무로), "엉터리 기사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성신여대), "돈 벌려고 이런 기사 낸다는 반응이었다"(청구), "경기가 없으면 기자가 먹고 살 수 있나. 여름에는 단물 빨고 겨울에는 먼지 터는 격 아닌가(종로3가)."

<굿데이> '병현 폭력' 보도는 '누구와 누가 좋아한다더라'류 기사와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신문사가 당사자다. 비록 '카더라' 기사에서는 제3자의 입장을 고수한다고 독자들에게 보여지지만, 김병현 폭행(?) 논란 기사에서는 그렇지 않다. 스포츠신문이 당사자로 걸려 있는 사안이었기에, 독자들의 불신이 이중삼중으로 강화됐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굿데이>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었다. 11월 10일 이후 <굿데이> 1면에는 유리한 증언을 하는 목격자가 등장했고, 네티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기사도 나왔다. 서재응 선수의 귀국 소식을 전하면서 "언론 피하지마"라는 김병현 선수를 겨냥한 듯 한 제목까지 튀어나왔다.

가판 종사자들은 "김병현 기사도 하루 이틀이지", "독자들이 굿데이를 외면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이는 많은 네티즌들이 <굿데이>가 자사의 입장을 매체라는 점을 활용하여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과 상통한다.

그럼 <굿데이>는 김병현 보도로 파생된 독자의 불신을 어떻게 풀 것인가.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까? <굿데이> 관계자의 말처럼 눈길을 끄는 기사가 나오다보면 해결되는 걸까? 그러나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판 시장 환경은 <굿데이>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효리 때문에 멀미가 다 날 정도였다"
"스포츠신문은 죽고, 가판은 박살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스포츠신문 죽는다'는 것이 한결 같은 우려였다. 여기에 무가지 전쟁은 스포츠신문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 7일 '무료신문 실태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스포츠신문들도 많게는 30%까지 가판 판매율이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가판 종사자들은 "무가지가 생기면서 적게는 1/3에서 많게는 1/2까지 판매량이 줄었다"며 "없는 사람만 죽어난다"고 항변했다. 실제로 지하철 6호선의 경우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는 비어있는 가판대가 적지 않았고, '아침 장사'만 끝내고 일찌감치 문을 닫는 곳도 많이 볼 수 있었다.

18일에는 한 가판대 주인이 3번째 무료신문으로 창간된 'am7' 모자를 보여주며 "나도 아침에 무가지를 나눠줬다. 100명이면 90명은 받아가더라"고 말하고 "무가지를 보급소가 하청 받아 나눠주고 있는 현실"이라며 한탄했다. 스포츠서울 판매지원팀장은 전화통화에서 "무가지 때문에 전 가판이 박살나고 있다"고 말했다.

18일 오후 2시경, 문을 닫은 신문가판대
18일 오후 2시경, 문을 닫은 신문가판대이정환
스포츠신문은 가판 중심이다. 무가지 전쟁으로 가판대가 하나 둘 문을 닫게 되면, 스포츠신문이 진열될 곳도 줄어든다. 가판대가 무가지와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스포츠신문 스스로 달라져야 할 상황인 것이다.

"일부러 (스포츠신문을) 앞쪽에 놓지 않는 거야. 괜히 가게 앞을 사람들이 잔뜩 막아서고, 살짝 들춰서 보기만 하고 그냥 가 버리고… 얼마나 짜증 나는지 알아? 아주 얄밉다고."

가판대 주인이 스포츠신문 대신 종합일간지를 앞쪽에 진열하는 이유였다. 가판대 주인의 고민과 한편으로 스포츠신문의 얄팍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 부라도 더 팔아야 한다. 따라서 스포츠신문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가판대에서 가장 높았다.

"연예 기사가 너무 지저분하다. 여기도 효리, 저기도 효리. 아주 효리 때문에 멀미가 날 정도였다"(광화문역), "연예나 누드? 젊은이들, 절대 사지 않는다. 스포츠신문이 엉뚱하게… 자기 구실도 제대로 못한다"(고려대역), "이젠 여자 벗겨놔도 판매량 별 차이 없다. 그렇다고 홀딱 벗길 수 있나? 사실대로 써서 독자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신이문역).

'언제 스포츠신문이 가장 많이 팔리는가'라는 질문에 가판 종사자들은 한결같이 "박찬호가 승리하거나 우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밝은 소식이 실렸을 때"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항상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경기가 열릴 수는 없다.

결국 스포츠신문의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평소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사를 많이 써서, 좋은 소식을 자주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누구'를 흔드는 구태와 공익을 위한 과감한 비판을 구별해야 한다.

아울러 생활체육 활성화를 앞당기는 기사로 스포츠시장을 확대시켜야 한다. 좁은 시장에서 '피보기 경쟁'만 벌이지 말고, 단골 독자층을 넓혀 풍성한 과실을 나눌 생각을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스포츠신문 스스로를 위한 일이다.

11월 17일부터 이틀 동안 <굿데이> 판매량 조사에 20개 지하철역 21개소 가판대가 응했습니다. 조사 시간대는 17일 오후 4시부터 저녁 9시, 18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였습니다. 응답자 성별은 남자 9명, 여자 12명이었으며, 연령 분포는 다음과 같습니다. 30대(4명), 40대(2명), 50대(6명), 60대(7명), 70대(2명).

다음은 조사에 참여한 지하철역 가판대 목록(가나다순). 고려대, 광화문, 길음, 동대문운동장, 동묘, 명동, 미아, 서울역, 석계역(지상), 석계역(지하), 성북, 성신여대, 시청, 신이문, 을지로4가, 종로3가, 청구, 청량리, 충무로, 한성대, 혜화, 이상 21개소. 바쁜 와중에도 취재에 협조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굿데이 판매 조사 결과
굿데이 판매 조사 결과이정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5. 5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