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첫눈이라도 올 것 같던 하루였다. 한강 위를 덮고 있는 잿빛 하늘을 뚫고 첫 눈이 금세 내릴 것 만 같았다.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본 한강엔 낙엽들이 줄지어 떠다닌다. 아주 작은 갈색의 물새들이 먹이를 찾아 종종 걸어다니는 모습이 한강을 덜 외롭게 했다. 손바닥만한 한강 속의 섬 위로 붉은 노을이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이 실루엣처럼 연하게 보이는 아름다운 11월도 거의 끝나가고 있다.
산다는 것이 무료할 때가 오히려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특별한 병치레 없이 잘 지내던 여동생의 시어머님이 간암과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8월 중순 여름 휴가 때 만난 적이 있는 그 분은 가을 햇살과도 같은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셨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엄청난 병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인데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 보이셨다.
암이라는 병이 말기에 이르러서야 발병이 표시 난다고는 하지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간에서 폐까지 전이되어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한다.
외며느리인 동생은 누구에게 상의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한 심정이라고 괴로워했다. 단 하나의 형제라도 있었다면 이토록 막막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이야기라도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한다고 언니에게 괴로운 심정을 토로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고도 미안하다고 했다.
가벼운 몸살로 알고 있는 당사자에게 발병 사실을 알려야 하는지 비밀로 해야 하는 지에서부터 적지 않은 병원비와 기타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밀려 있다고 울먹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남편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어야 할 일도 힘겹기만 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슴을 시리게 하는 것은 살아온 날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고 했다.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는커녕 살아온 날의 회한을 어찌 풀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를 어찌해야 하느냐고 걱정했다.
살림을 돌보지 않은 시부를 대신해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살아온 시모에게 남은 것은 병마와 싸워야 한다는 것과 그 끝은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 나도 딱히 해 줄 말을 잃었다.
아직 종교가 없는 그 분이 가시는 길 조금이나마 편히 가시라고 종교에 의탁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 주었을 뿐이었다.
항상 열심히 하루하루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지만 내게도 갑작스런 죽음이 닥치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무런 답이 없다. 혼돈스럽기만 할 뿐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가끔은 함부로 섣불리 판단하고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은 사람은 자주 미워하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그대로 비춰져서 생각이 많아졌다. 바쁘다며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순조로운 날이 계속되면 일상의 탈출을 꿈꾸기도 하고 뭔가 특별한 일이 터지기를 염원하지만 사실은 무료한 하루하루 일상이 곧 기적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나니 사고 없이 지나는 오늘이 감사하기만 하다.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리라' 고 했던 고 천상병 시인처럼 훌훌 털고 세상밖으로 나갈 용기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삶만이 전부일 것 같다.
유난히 낙엽이 아름답다 여겼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짧기만 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