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퍼스 웨인라이트의 세 번째 음반 < Want One >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러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의 세 번째 음반 < Want One >(2003)의 커버를 보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말이다. '러퍼스 웨인라이트' 하면 으레 그림 형제 동화 속의 스산한 숲 속 마을에서 피아노를 뚱땅거리며 당나귀로 변한 피노키오 같은 음색으로 노래하는 모습만 생각했다.
그가 갑옷을 입고 장검을 손에 쥔 채 거대한 힘과 일전을 치르러 떠나는 중세 기사의 모습은 상상치도 못했다. 싸우러 떠나는 이의 비록 표정은 무덤덤하나, 무거운 갑옷과 큼직한 검은 그 가녀린 육신을 눌러 내릴 것만 같다. 저러다가는 적과 맞닥뜨리기도 전에 쓰러질 것이다. 과연 '기사' 웨인라이트는 무엇과 싸우러 가는 것일까. 무엇이 동화 속 피아노 청년을 버거운 갑옷의 워리어로 바꾸었을까. 그리고, 이 전투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오프닝 곡 < Oh What a World >를 들어보면, 우리는 이 전투의 결과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불길함에 휩싸이게 된다. 나지막한 코러스와 튜바(tuba)의 움파파 비트로 뒤뚱뒤뚱 진행되던 곡은 버스(verse)가 두 번째 되풀이될 때부터 배킹 보컬이 기괴한 불협화음으로 변하더니, 일시에 혼 섹션이 터져 나오면서 감춰져 있던 볼레로 선율의 정체를 드러낸다.
곡에 차용된 라벨(Ravel, Maurice Joseph·1875~1937)의 '볼레로(Bolero)'는 이 음반의 특성에 대해 일종의 힌트를 제공한다. 볼레로를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려 보자. 볼륨이 작은가 싶어 스피커를 살피게 될 정도로, 작고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시작되는 곡. 하지만 이내 비올라, 첼로의 귓속말하듯 낮은 소리와 피치카토 3박자에 실린 작은북의 볼레로 리듬을 감지할 수 있었다. 또 초지일관인 C 장조의 조성과 균일한 리듬 속에서도 조금씩 드러나는 플룻, 바이올린 등의 악기음과 미묘하게 커져가는 사운드의 부피를 통해 곡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침내, 그 모기 소리만하던 곡은 눈덩이처럼 덩치를 불리다가 거대하고 장엄하게 폭발! 그렇다. 볼레로는 '점층법'으로 축조된 음악인 것이다. 곡의 초반 조그마한 소리에 졸이던 마음은 후반부 대거 증폭된 음의 장관 앞에 감격하고 만다. 1에서 100까지 점진적으로 더해지듯, 한두 악기의 간소함에서 풀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절경으로 치달으며 청자를 압도하는 단일한 '크레센도(Crescendo)'. 이것이 < Want One >에 실린 음악들의 특성이다.
이는 놀라운 일이다. 피아노 하나로 마음을 녹이던 데뷔작 < Rufus Wainwright >(1998)와, 전자 음향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선율과 목소리의 힘은 여전하던 차기작 < Poses >(2001)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어디까지나 중심은 그의 메마른 음성과 단촐한 한 두 가지 악기였으며, 혼과 스트링은 '풍성함'과 '활기'를 더해주는 선에서 기능했던 것이다. 때문에 피아노와 기타를 중심으로 한 음악은 유려한 선율과 진지한 메시지를 부각시켰고, 음악에 실내악과도 같은 기품과 따스한 포크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새로운 프로듀서 마리우스 드 브라이스(Marius de Vries)를 맞아들인 새 음반에는 그런 '절제'가 없다. 애석하게도 드 브라이스가 한 일은 러퍼스 웨인라이트의 음악에 과장된 연출과 호사스런 장식을 더하는 작업이다. 이전 두 장의 음반에서는 푸근하고 의미심장한 배경으로만 기능하던 현악 파트를 전면으로 배치시켰고, 높고 새된 음색의 브라스 섹션 또한 전에 없이 도드라지고 활발한 움직임을 과시한다. 이로서 기사 웨인라이트의 상대가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브라스 군단의 화려하고 거대한 음향과 대항해야 하는 것이다. 천상의 '선율'이라는 갑옷과 마음을 어루만지는 '목소리'의 검을 소지하고서.
그러나 머릿곡의 거대함에 압도된 탓인지, 이어지는 전투가 승리로 끝날 것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 예감은 계속되는 < I Don't Know What It Is >에서 현실이 된다. 예의 찰랑거리는 기타가 중추를 이루지만, 파도의 동선처럼 드라마틱한 현악 반주와 점층법적 구성은 청자에게 '물리적'인 감동을 강요하는 듯하다. 간단명료한 멜로디의 힘만으로 따지자면 이전 두 앨범의 어느 곡에도 뒤쳐지지 않을 일등 싱글감이지만, 요란한 장식으로 오히려 매력이 반감하고 마는 것이다. 고독한 기사에게 불리해져만 가는 전투.
이어 < Movies of Myself >와 < Go Go Ahead >에서, 마침내 거대한 적수는 숨겨놓은 암기를 구사한다. < Movies of Myself >의 후려치는 퍼즈톤 기타와 둔탁한 비트, < Go Go Ahead >에서 기타 스트로크로 잔잔하게 흘러가다 중반 이후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이루어지는 급박한 사운드의 증폭이 그것이다. 비록 갑옷을 입었을지언정, 본래 작고 여린 대니 보이인 그에게 플러그 꽂는 악기의 푸른 스파크는 치명적인 외상을 입힌다.
기사 웨인라이트는 감상적인 발라드(Crooner)인 < Vibrate >와 < Natasha >를 앞세워 필사적으로 응수하지만, 모친 케이트 맥거리글(Kate McGarrigle)이 연주하는 밴조(banjo)는 결코 피아노만큼의 조력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 피아노의 깍쟁이 같은 음률이 러퍼스 웨인라이트의 술취한 듯 늘어지는 목소리에 객관적인 설득력을 부여한 반면, 밴조는 감상을 단순한 감상으로 만든다.
재지한 브러시의 터치가 인상적인 < Harvester of Hearts >와 소품 < Pretty Things >에서 똑 떨어지는 피아노 선율이 주조를 이루기는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곡들은 평이한 송라이팅으로 인해 별다른 호감을 갖기 힘든 편에 속한다. 정말로 불리한 전투다. 적수는 웨인라이트가 꺼내드는 무기들이 '어떻게 하면 위력이 떨어지는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승기를 넘겨준 전투의 막바지. 여러 음고의 셋잇단음표로 펼쳐지는 로즈(Rhodes) 피아노가 몽환적인 무드를 전달하는 < Vicious World >와 기타를 중심으로 반음계로 하강하는 피아노와 낭만적인 코러스가 어우러지는 < Want >를 꺼내들지만 이미 패색이 짙다. 물론 강력한 임팩트를 가하는 순간은 존재한다. < 14th Street >의 경우 흡사 벤 폴즈 파이즈(Ben Folds Five)가 비틀스(The Beatles)의 < Penny Lane >을 연주하면 이런 느낌이 되지 않을까 싶은 경쾌한 곡이다. 특히 물흐르듯 유려한 홍키 통크 피아노의 진행과 곡의 묘하게 들뜬 정서는 다소 과장된 제스처의 혼 섹션도 유쾌한 익살스러움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런 노래라면야 충실한 러퍼스 웨인라이트의 팬들도 얼마든지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오랜 전투 탓인지 이미 기사 웨인라이트는 기력을 잃은 듯하다. 가사만 해도 그렇다. < Oh What a World >에서 "Men reading fashion magazines / Oh what a world it seems we live in / Straight men"하는 여유와 위트는 좋으나, < 11:11 >의 "Woke up this morning at 11:11 / Wasn't in Portland and I wasn't in heaven" 같은 부분은 식상하다. 재능없는 SF 작가가 억지로 쥐어짜낸 세계관 같다. < Vicious World > 같은 곡의 노랫말도 날은 서 있으되 과히 좋게 들리지는 않는다. 새 음반의 노래들을 탈탈 털어 보아도 전작의 < California >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이나 < In A Graveyard >의 진중한 독백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음반에 대한 총평은, 부클릿의 사진 설명으로 대신해도 무방할 듯하다. 한껏 싸운 기사 웨인라이트, 마침내 바닥에 쓰러져 있다. 눈을 감고, 가슴을 움켜쥐고, 칼은 옆에 떨어뜨리고. 그렇다, 그는 일전에서 패배한 것이다. 물론 그가 뽑아내는 선율과 목소리의 매혹이 여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운드는 지나치게 크고, 뽐내고, 과장된 모습으로 진동한다. 점차적으로 증폭하는 화려한 음의 장식은 선율과 목소리 그 자체가 갖는 '힘'을 난폭하게 삼켜 버린다.
쓰러진 기사는 깨어날 수 있을까? 만일 깨어난다면, 예전 동화 속 숲의 쉬르리얼리스틱한 마을에서 피아노 치는 대니보이로 회귀한다면 어떨까. 그게 아니라면, 흥청한 동성애자 파티에서 똘레랑스를 읊조리던 < Poses >의 외양이라도 좋다. 그래도 아직은 그의 명민한 감각과 감성에 기대를 놓지 않았으니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