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아직도 '뽀글이'를 기억하나요

속쓰린 밤, 최고의 만찬 차려준 후임병을 떠올립니다

등록 2003.11.26 03:25수정 2003.11.26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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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원

얼마 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과하게 마셨습니다. 자리를 이곳저곳 옮겨가며 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허한 속을 채운다고 라면을 먹은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술김에 친구의 권유로 새벽녘에 먹은 라면이 그만 탈을 일으키고 만 것입니다. 손을 따고 소화제를 먹고 한바탕 난리를 친 다음날, '내가 왜 이리 속이 약해졌을까' 하는 망연자실한 마음이 되어 한숨을 내쉬고 말았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라면을 먹으면 하루종일 속이 더부룩해 멀리하는 편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술까지 마셔 속이 안 좋은 상태에서 그만 탈이 난 것입니다.

그러자 문득 앉은 자리에서 라면 두 세 개를 먹어도 거뜬히 소화를 시키던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군대에 있던 시절입니다. 속된 말로 '돌멩이를 씹어도' 소화가 된다던 그 시절, 라면은 그저 식사 사이에 먹는 간식의 한 종류였을 뿐이었습니다.

가끔씩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언제라도 입맛을 다시지만, 유독 잊을 수 없던 기억은 제대를 얼마 앞둔 말년병장 때의 일입니다. 칼바람이 몰아치던 한 겨울이었고 운이 없게도 새벽녘 보초를 서게 된 날이었습니다.

근무 교대를 알리는 후임병의 손길에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고 일어나 높은 초소까지 몸을 움직여야 했습니다. 대한민국 어디나 그맘 때면 안 추운 곳이 없고, 겪고 또 겪어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추위라지만 그 날의 추위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함께 근무를 서던 후임병과 추위를 잊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앉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으으~" 소리를 내며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습니다.

주관적인 시간의 흐름은 객관적인 그것과는 천지차이라는 것을 정말 뼈저리게 느낀 한 시간이었습니다. 관절은 물론 근육까지 얼어붙기 직전, 다행히 교대 근무자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정쩡한 종종걸음으로 내무반에 뛰어 들어와 화장실에 다녀오고 무거운 옷을 벗어놓으니 그때서야 귓불의 열기가 느껴지더군요. 그러고 몸이 녹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밤의 허기가 무섭게 덮쳐 왔습니다. 저녁 식사로 정체불명(?)의 비릿한 생선국이 나와 몇 숟가락 뜨지 않은 것이 화근인 듯했습니다.

식어버린 맹한 보리차를 두어 잔 연거푸 마시고 담배를 뻑뻑 피워봤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허기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남겨 놓은 건빵이나 초코파이가 없을까, 전우들의 관물대를 뒤져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안 하던 짓을 말년에 할 수 없다는 알량한 자존심에 차마 그런 행동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쩍쩍 입맛만 다시며 필터 끝이 뜨거워지도록 담배를 빨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내무반으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습니다. 저는 일직사령을 맡은 간부인가 하고 피우던 담배를 얼른 등 뒤로 감추었습니다.

"나앵준 뱅장님 안 주무시고 뭐하십니꺼?"
고개를 내민 것은 일직 근무를 맡은 서너 달 밑의 후임 병장이었습니다.

"깜짝이야. 담배 한 대 피우고 이제 자려고 하지."
"밖에 춥지예.
"어. 죽는 줄 알았다, 야."
"고생 많았습니다. 근데 안 출출하십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었습니다.

"아니 뭐, 그렇지 뭐."
저는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웃음으로 얼버무렸습니다.
"행정반으로 가입시다."

그 친구는 얼굴에 넉넉한 웃음을 띄우며 저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그리고 이끌려간 저는 곧 감격하고 말았습니다. 행정반 한 구석에는 반합 두 개에 보글보글하는 소리와 함께 라면이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었습니다.

"야, 이게 뭐야. 어유, 나 때문에 끓인 거야?"
저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이리 앉으십시오" 하고 의자를 끌어 온 그 친구는 이어 품안에서 소주병을 꺼내더니 어금니에 밀어 넣고 "까득!" 하는 소리를 내며 병뚜껑을 벗겨 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시절이지만 아직도 그 파열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탄산음료 딸 때의 소리와는 분명 다른 소주 병뚜껑 소리는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후임병은 반합 뚜껑에 "콸콸" 소리가 나게 술을 가득히 부어 제게 건넸습니다.

"한 잔 쭉 드입시오. 마 몸이 아마 확 풀립낍니더."

그랬습니다. 그 이후로 코로 먹는지, 입으로 먹는지 체면 차릴 것 없이 그 친구의 성의를 만끽했습니다. 작은 파 건더기 하나도 그리고 국물 한 방울까지도 저는 소중히 입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정신을 추스른 것은 제가 먹는 것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그 친구가 소주를 두 병째 병을 따 잔을 채워 주었을 때였습니다.

"나앵준 뱅장님이 맛있게 드시니 좋습니더. 마 이제 찬찬히 한 잔 더 하십시오."
"너무 잘 먹었다, 야. 이거 고마워서 어쩌지."
"아이 아입니더. 이제 제대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마 해 드린 것도 없고 그래 생각해보이 오늘 내 일직이고 근무명령표 보이 나앵준 뱅장님이 근무가 걸려가 엣날 생각도 나고 해서."
"어? 무슨 옛날 생각"
"아 그 엣날에 제가 훈랜소서 부대 처음 왔을 때 그때 나앵준 뱅장님이 지한테 뽀글이 안 해줬습니까."
"아아~."

저는 그때서야 기억이 났습니다. 더블백을 메고 쭈뼛거리며 그 친구가 내무반에 들어서던 시절이 말입니다. 고향이 경남 남해 어디라고 하던 그 친구는 유난히 사투리가 심해 같은 경남 사람들에게도 놀림감이 되곤 했습니다.

아마 훈련소에서도 그런 놀림을 당했는지 자대에 와서도 한동안 매우 소심해져 있었습니다. 고참이긴 했지만 저 역시 같은 이등병인지라 그 친구가 무척 안쓰럽게 느껴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고참들이 사격훈련을 떠나 부대가 휑하던 어느 날 취사반으로 배치를 받은 훈련소 동기가 저에게 누가 안 볼 때 얼른 먹으라며 라면 봉지에 뜨거운 보리차를 넣어 먹는 속칭 "뽀글이"를 건넸습니다.

봉지가 터질 새라 화장실 뒤편까지 살금살금 들고 가다가 그만 저편에서 주눅이 든 표정으로 걸어 오던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아주 잠시(사실은 더 길게 느껴졌지만) 고민을 했지만 결국 저는 그 친구에게 그 라면을 건네주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쉬운 마음은 있었지만, 다행히 그 친구가 너무도 맛있게 먹는 것이 그나마 저에게는 위로가 됐습니다.

"제가 군 생활하면서 묵은 라맨 중에 젤로 맛있었던 건 그때 묵은 라맨 아입니까."

그 친구는 제게 88담배를 건네며(솔담배가 지급되던 시절) 말했습니다.

"그래 덕분에 오늘 이렇게 맛있는 라면을 먹게 됐네."
"더 좋은 거 몬 해줘 죄송합니데이. 군대서 해 드릴 수 있는 게 뭐 그렇습니다. 제대하면 제가 멋지게 한 잔 사 드리겠습니다."

그 날 그 친구와 저는 서로가 기억하는 최고의 만찬을 기억하면 건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날 밤 정말로 훈훈하고 맛있는 잠을 잤고 솔직히 말하면 눈물까지 한 방울 떨어뜨렸던 것도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도 그렇게 멋진 만찬을 어디서 다시 대접받을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턱없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라면 하나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할 만큼 약해져 버린 제 몸이 부끄러워집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 이란 70년대식 구호가 문득 생각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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