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다가 단식까지 할 줄 몰랐다"

[단식투쟁 이틀째] 박관용 의장 등 위로방문... 이재오 총장, '동조금식' 돌입

등록 2003.11.27 15:38수정 2003.11.2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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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거부 철회를 요구하며  27일 단식농성 이틀째를 맞은 최병렬 대표.
특검거부 철회를 요구하며 27일 단식농성 이틀째를 맞은 최병렬 대표.이종호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거부 철회를 요구하며 이틀째 단식중인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27일 오전 아래 위 흰색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채, 다소 피곤한 얼굴로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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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대표는 특히 단식농성장을 둘러싼 기자들을 향해 노 대통령을 지칭하며 "이 양반이 염치도 없고, 책임감도 없으며 국정을 어떻게 끌어가려는지 여러 가지 의문이 많이 가는 상황"이라고, 전날보다 한층 강한 어조로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최 대표는 또 "노 대통령이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된 특검법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이 인사권을 가진 검찰이 그나마 자기비리를 노골적으로 파헤치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특검 거부 철회와 국정쇄신을 거듭 촉구했다.

최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을 만나서도 28일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SBS 방송출연과 관련 "원내 제2당인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하는 날, 대통령의 특집 생방송을 내보내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며 "민주당 편들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정치도의상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방송에 출연하면 당연히 나에게도 반론권을 줘야 하는 것이고,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이날 한나라당의 불참으로 국회 예결위가 파행을 겪은 것에 대해서는 "예산 문제나 정치개혁 문제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부각돼 있기 때문에 내가 여기 앉아 있는 것"이라며 "지금 예결위 진도를 보면 내년 예산안을 처리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최 대표의 단식농성장을 찾은 이규택 의원은 최 대표에게 "인터넷에 '최빠'라고 떴다"며 "'최빠'는 '최병렬 오빠'를 말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재오 등 '동조금식' 돌입 VS 원희룡 등 "국민의 눈 두렵다"


최병렬 대표가 단식투쟁을 계속하는 가운데 이재오 사무총장 겸 비대위원장과 임태희 비서실장, 박진 대변인 등도 하루에 한끼의 식사만 하는 '동조금식'에 돌입했다.

또 이재오 사무총장은 전날(26일) 밤부터 당사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취침을 했고, 최병렬 대표의 단식이 종료될 때까지 집무실에서 잘 예정이다. 박진 대변인은 "이재오 총장도 하루에 한끼씩으로 절식을 시작했다"며 "최 대표가 단식을 하는 과정에서 기력이 쇠하고, 어려운 상황이 되면 최 대표와 함께 단식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홍준표 전략기획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이재오 총장은 당초 '동조단식'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말렸다"면서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는 와중에 당무를 총괄해야 할 사람이 단식을 하면 누가 당을 운영할 것이며, 또 대표 한 사람만 단식을 해야 의미가 희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식농성 이틀째를 맞은 최병렬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단식농성 이틀째를 맞은 최병렬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이종호
홍 본부장은 또 "오늘 내일 사이 장외투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반전될 것으로 본다"며 "굴속에서 마늘을 씹으며 기다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재의결을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하고, 안 하고는 언제든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며 "안 한다고 한 적은 없다"고 말해, 민주당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재의결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그는 특히 원희룡 의원 등 당내 소장파를 겨냥해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는데, 우리당 젊은 사람들이 TV에 나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해당행위이고, 징계를 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앞서 지난 26일 의원총회에서 당 지도부의 `재의 거부, 전면투쟁' 방침에 맞서 "국민은 왜 우리가 재의를 못하는지 의문을 갖고 있다"며 "당당히 재의에 부치는 게 옳다"고 소신을 폈던 원희룡 의원이 다음날 다시 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일었다.

원 의원은 26일 오전 TBS라디오에 출연, "야당에게 오기의 승부수를 던졌다"고 노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제1당이 의회를 정지시키고 오기의 대결로 가는데 대해 국민의 눈이 두렵다"며 지도부를 싸잡아 비판했다.

박관용 "의장으로서 부끄럽다"... 이회창 전 총재도 위로전화

이날 방문자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박관용 국회의장. 박 의장은 오전 10시경 단식농성장을 방문, 최병렬 대표를 격려했다. 박 의장은 최 대표에게 "의장으로서 부끄럽다"며 "재적의원 3분의 2라는 숫자는 헌법을 고칠 수 있는 절대다수의 의견인데..."라고 말해, 노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권 행사를 비판했다. 박 의장은 이어 "가급적 중립적 입장에서 이 사안을 보려고 하지만 금년에 정치일정을 마감하는 시점에 이런 일이 생겨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특히 "건강에 유의하고 단식을 오래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상황이 달라지면 달라진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대처해 달라"고 조속한 국회 정상화를 당부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과반수 의석을 가진 한나라당이 정기국회 마지막에 예산안 심의도 못하고 총선을 앞두고 정치개혁도 논의 못하는 등 주요현안을 다루지 못해 죄송하다"면서도 "그러나 특검법 거부는 단식을 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됐을 뿐이며, 이러다 대한민국이 주저앉는 게 아닌가 걱정이 돼 이런 현실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단식을 결심했다"고 답했다.

최 대표는 또 "이번 일을 계기로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기본자세에 변화가 왔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라며 단식농성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어 오전 11시경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최병렬 대표에게 위로 전화를 걸어왔다. 다음은 박진 대변인이 전한 통화 내용이다.

단식농성 이틀째를 맞은 최병렬 대표는 가디건과 체육복 차림으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단식농성 이틀째를 맞은 최병렬 대표는 가디건과 체육복 차림으로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이종호
최병렬 "전화 주신데 감사하다. 정치하다가 단식까지 할 줄은 몰랐다."
이회창 "건강 조심해라. 당과 나라를 위해 크게 고생스런 길을 선택한 것 같다."

최병렬 "조심해서 하겠다. 별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뵙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
이회창 "다시 한번 건강에 조심하기 바란다."

또 전날 김덕룡 의원에 이어 서청원 전 대표가 최 대표의 단식농성장을 찾아, 당내 비주류 중진들도 최 대표의 단식투쟁에 힘을 실어줬다. 최 대표는 서 전 대표를 반갑게 맞으며 "원래 서 전 대표가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고 인사말을 건넸고, 서 전 대표는 "원래 야당 지도자는 힘든 길을 가야 한다"고 위로했다.

서 전 대표는 또 "노 대통령이 우리 당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며 "이제 최 대표가 그런 결단을 했으니 뭔가 확 바꿔야 하며, 당원들도 이해할 것이다. 인내를 갖고 건강을 조심하면서 하라"고 격려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서울과 충남에서 특검 관철 및 정치개혁을 위한 당원결의대회를 개최하고, 특별당보 25만여부를 전국 지구당에 배포하는 등 이틀째 장외투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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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이라도 챙겨드셨으면 좋겠는데..."
[인터뷰] '단식 이틀째' 최병렬 대표 방문한 부인 백영자씨

▲ 최병렬 대표의 단식 이틀째를 맞아 부인 백영자씨가 한나라당사를 방문했다.
ⓒ오마이뉴스 정원식
"말씀 잘 안 하시고, 생각 오래하신 뒤 실천하시는 분이다. 단식 선언하기 전날 밤에 (내게) 언뜻 암시를 하셨다."

27일 오후, 한나라당 여의도 중앙당사 7층 대표실. 노무현 대통령 특검 거부 철회를 요구하며 이틀째 단식투쟁 중인 최병렬 대표를 만나고 나온 부인 백영자(61) 여사의 표정은 비교적 담담했다. 전날(26일) 저녁 둘째아들 재선씨와 함께 다녀간 뒤 두 번째 방문이다.

백여사는 '최틀러'라는 별명을 소유한 최 대표의 평소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걱정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도 없다는 판단을 하는 듯 했다. 백씨는 "걱정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65세의 고령으로 곡기를 끊고, 차가운 날씨에 집이 아닌 집무실에서 불편한 잠자리를 해야 하는 남편의 건강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난 해준 말도 없고, 그냥 듣기만 하다 나왔다. 그래도…, 비타민이라도 한 알씩 챙겨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면 단식이 아니라고 하시더라."

최 대표는 오히려 백 여사에게 자신이 단식농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간결하고도 강경한 어조로 설명했다고 한다.

"대통령에게 잘 하라고 여러 번 얘기했었다. 그러나 이제 야당 대표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다. 야당 대표의 길은 가시밭길이다. 길이 이것밖에 없다면 가겠다."

최 대표의 말을 전하던 백 여사의 얼굴 표정이 어느새 굳어졌다. 백 여사는 제1 야당 대표인 남편의 순탄치 않은 생활들이 적지 않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나는 공인이 아니예요"라며 추가 인터뷰를 극구 사양한 채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자가용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 최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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