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사창가'를 찾지 않겠습니다"

[서른 즈음에 떠난 여행 12] - 길에서 '반성문'을 쓰다

등록 2003.12.01 13:45수정 2003.12.0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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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성댁에서 5박 6일을 보낸 후 다시 내가 가야 할 길을 걸었다. 충주 조정지댐부터 수안보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걷지 않아서 그런지 무릎과 허리가 삐걱거렸다.

곧 좋아지겠지 싶었는데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20km가 될까말까 한 거리를 걷다 쉬다를 반복하며 꼬박 한나절 동안 힘겹게 길 위에서 보냈다. 질병은 앓아보지 않았지만 작년 허리디스크 수술 이후 다리와 허리는 이렇게 자주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수안보에 도착해서는 다리를 쭉 펴지 못할 정도로 무릎이 말썽이다. 파스를 바르고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무릎 뒤쪽이 퉁퉁 부어올라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결국 창 밖으로 높은 문경새재가 보이는 숙소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 오늘 하루를 쉬면 내 무릎은 저 높은 문경새재를 넘을 수 있을 만큼 좋아질지. 내리는 비로 무겁게 내려앉은 수안보의 정경처럼 내 마음도 많이 무겁기만 하다.

하루 종일 길을 걷다보면 그만큼 생각할 시간이 많다. 천천히 걸으며 사랑했던 사람과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고, 과거 행복했던 순간과 가슴 졸이며 보냈던 시절을 되새겨 보면 어느새 길을 걷고 있는 내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머물러 있다.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사려 깊지 못한 행동과 욕심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며 반성을 해보고, 미약하게나마 미래의 삶을 머리 속에 그려보기도 한다. 걷는 육체는 힘들지만 생각은 풍요로워짐을 나는 매일매일 걸으며 느낀다.

글을 쓴다는 건 내 안의 무언가를 다른 이와 나누고 싶어하는 욕구의 결과일 것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고, 그 안에서 새롭게 배우며 깨닫게 되는 것도 많다. 여행을 하면서 <오마이뉴스>에 여행기를 올리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나는 인터넷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오마이뉴스>를 택한 거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곳에 오랫동안 고민했고, 그 때문에 힘들었던, 그리고 세상에 밝히는 게 조금은 버겁고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일종의 반성문을 쓰고 이렇게 세상에 ‘제출’한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의 어느 날로 기억된다. 얼마간의 술기운을 빌려 처음으로 '사창가'에 갔다. 그곳에서 한 여성에게 6만원을 지불하고 성관계를 가졌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켜오던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을 스스로 폐기처분하고 처음으로 성을 돈을 주고 사던 순간이었다.


수치심과 죄의식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지. 모두 하는 건데 뭐”라며 스스로에게 관대해졌다. 그럼으로써 성을 돈을 주고 사는 자신을 별다른 감정 없이 용서하고 인정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그 일도 처음이 힘들 뿐이었다. 이후 얼마 동안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면 마치 2차, 3차 하듯이 사창가를 찾는 게 일상화 되었고, 내 가슴에 일어나는 수치심과 죄의식도 무뎌졌다.

세상이 진정으로 가져야 할 가치와 진보 그리고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대해서 그럴 듯하게 말하길 즐기던 내 입은, 돈을 주고 성을 산 경험을 마치 전쟁터의 무용담처럼 떠벌리는 더러운 입이 되었다. 사창가에서의 성경험은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하는 이야기 정도의 ‘가벼운’ 것에 불과했다.

이같은 성경험이 늘어가고 그것이 별 것 아닌 게 되었을 때, 이미 내 인간성은 심각하게 황폐화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세상에 비판적이었지만, 성을 돈주고 사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심지어 여성해방과 남녀평등, 그리고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에 대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떠들던 날에도 나는 사창가를 찾은 적이 있다. 아주 무감각하게 말이다.

내가 더 이상 사창가를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계기는 우연이었다.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세상 정의에 대해 말하고 논쟁하길 좋아하는 한 선배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창가 경험에 ‘참여’하는 모습을 봤던 순간.

그 순간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선배에 대한 실망의 충격이 아니었다. 내가 목격한 것은 다름아닌 우리 사회 남성문화의 한 ‘부분’이었고, 그 문화에 많이 절어 있는 역겨운 내 모습이었다. 아, 내가 저랬구나. 난 참 위선적으로 살았구나 하는 자괴감이 가슴을 때렸다.

물론, 그 이전에 더이상 돈 주고 성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당시 내 다짐은 그저 돈이 아깝다는 이유에서였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큰 상처를 입히는 행위라는 점을 깨닫지 못했다. 아니, 애써 외면했다는 표현이 솔직한 말일 게다.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난 두 명의 후배에게 다시는 돈 주고 성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의 내 행위를 반성했고, 이중적인 생활을 인정했다. 그냥 혼자서 반성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면 그만인 일을 조금은 부끄럽게 후배들과 상의했던 것은, 내 다짐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감시해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번 여행길에서 공선옥의 <마흔에 길을 떠나다>를 읽었는데, 책에서 공선옥은 이런 말을 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오고, 사는 모습 자체로 울컥 목이 메어 오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고.

난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나도 그러겠다고, 그런 사람을 찾아다니고 기록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이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내 작은 노력을 보태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행위를 어떤 식으로든 반성하지 않고서는 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온전히 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 모습이 우습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다시는 돈을 주고 성을 사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지금 난 반성문이면서 서약문이기도 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쩌면 굳이 공개적으로 밝힐 필요도, 반성할 필요도 없는 문제를 호들갑스럽게 떠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서도 말했듯이 반성은 혼자해도 충분하며, 그것만으로도 개선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과 판단은, 인간은 때때로 흔들리는 갈대보다 나약하고, 특히 자기 자신에게는 많이 관대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내게 국한된 문제일 수도 있지만, 돈을 주고 성을 사는 행위는 마약과 같이 중독성과 습관성이 강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한 번 시작하면 다시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겪어왔고 보아왔다. 또한 조금씩 그 수치심과 죄의식이 무뎌진다는 점에서 인간성을 황폐화시킨다. 우리 사회 속에서 성을 사는 길은 쉽게 열려 있고, 그 유혹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내가 너무 나약한 문제도 있겠지만, 난 그 속에서 여러 번 나의 다짐이 무색해짐을 경험했다.

그동안의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서 지금의 반성문을 쓰는 건 아니다. 이 한 번의 고백과 반성으로 그동안의 내 과오가 사라진다거나, 난 이제 깨끗하다는 식의 낯 간지러운 생각 따위는 더더욱 품고 있지 않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삶의 모든 모습으로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 잘 알고 있다. 난 그저 다시는 돈을 주고 성을 사지 않도록 세상이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혼자만의 결심과 다짐 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감시와 도움이 있다면 내가 돈을 주고 성을 살 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질 것 같다.

이 반성문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이렇게 반성문을 ‘제출’ 하지만, 이후에 세상의 눈총과 손가락질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얄팍한 마음이 생겨 지금의 행위를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가 그동안 돈을 주고 성을 사면서 상대 여성에게 주었을 모멸감과 인간적 존엄성의 상처를 되새기며 모든 것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 여성들의 상처에 비하면 내가 겪을 일들은 하찮은 것일 게다.

이 짧은 반성문 하나 쓰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창 밖에는 어느새 짙은 어둠이 내려 앉았고, 비도 여전히 내리고 있다. 끊었던 담배가 많이 생각난다. 많은 후회와 두려움이 뒤섞여 머리가 멍하다. 무엇보다도 지금 무척이나 외롭다.

“다시는 돈을 주고 성을 사지 않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사실, 이 ‘반성문’은 지난 11월 27일 작성한 것이다. 그동안 이 반성문을 ‘제출’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낮에 걸으며 결심을 했다가도 저녁이 되면 그냥 말자 하는 생각이 반복됐다. 어젯밤 한 여자 후배와 이 문제로 몇 시간 동안 전화통화로 상담을 했다. 후배는, 나처럼 반성하는 남자가 한명이라도 생긴다면 내 결심과 반성문은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앞으로 나를 감시하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후배의 조언이 컸다. 고마움 전한다.)

"그동안 많은 신뢰를 보내준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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