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이란 흙·나무·종이·헝겊이나 고무·셀룰로이드·비닐 등으로 사람의 형상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생활용구 ·집 등을 입체적으로 공간에 표현하는 조형미술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형은 오래동안 미술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저 인형이라 함은 오직 어린이들의 놀이감이나 여성 취향의 생활취미 정도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인형이라는 용어를 미술사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술교육에서도 인형은 개념화 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인형이 미술의 한 장르로서 또는 미술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인형과 조각의 기원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애초 선사시대에 조각이니 인형이니 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형 행위는 대부분 풍성한 포획을 기원하기 위한 것과 다산과 관련된 주술적 의식에 필요한 행위였다.
선사시대 미술의 주제는 동물이며, 그 출발은 조각이었다. 회화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인간이 바위나 나무에 금을 새기거나 어떤 형태를 쪼아 만들어냈던 것이다. 따라서 그림은 조각보다 훨씬 나중의 것이라고 보는 것이 미술계의 통념이다. 무엇인가를 빚거나 새기는 것은 직접적인 사실의 모방인데 반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삼차원의 감각을 추상적인 이차원 평면으로 옮기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인간을 본뜬 상(像)이 최초로 출현한 것은 구석기시대 오리냐크문화기(BC 25000년경)이다. 이 문화기의 예술작품으로 인류사상 처음 출현한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비롯, 여성의 흉부나 둔부 등 신체의 특성을 강조한 인물상이 유럽에서부터 시베리아에 걸친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구근 모양을 한 윤곽, 묵직하게 달린 가슴과 부푼 배의 생생한 입체감과 한 손에 쥐어지는 작은 크기에서 유추해 풍요의 상징으로서 주술적인 기능을 가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임신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재현하고자 했던 여인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보는 현대인들의 시각이 과장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TV를 통해 아프리카나 남미 지역의 원시 생활 가운데 그와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인간은 아주 원시시대에서부터 스스로의 몸을 재현해야 할 중요한 주제로 생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현재 발견된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조형물로 조각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조각과 인형을 모두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입체 조형물이라 볼 때, 이를 인형의 기원으로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인형과 조각의 기원은 동일하며, 즉 이 둘은 하나의 아버지에서 파생된 형제지간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기원에서 출발한 이 입체조형은 이후 문화의 발달과 인간의 의식이 다양화되면서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조각은 건축과의 만남을 통해 건축의 미적 기능을 수행면서 대형화되고, 인간의 모습 재현에 충실했다. 그러다 근세에 와서 조각은 인간 모습의 단순 재현에서 벗어나 추상적이고 비구상적인 다양한 형태의 조형예술로의 발전을 모색했다.
반면 인형은 원시적인 주술적 기능을 계속 수행하는 동시에 가정으로 들어가 어린이와 여인들의 놀이의 일부로 전락했다. 한정된 크기와 인간과 인간 주변의 존재하는 동물과 기타 물건의 형태로 재현됐으며 근세에 사회가 산업화 되면서 상품으로 보급되었다.
최근에는 예술의 개념이 확장돼 산업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예술이 특정 계층의 틀에서 벗어나 보편화되면서 조각은 소형화되어 생활의 틀로 들어왔다. 또 인형은 미술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렇듯 인형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한 부분으로 함께 해 온 문화적 산물이며, 조형적 가치를 지닌 미술이다.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인형은 미술이라는 틀 속에서 인지되어야 하며, 미술로서 연구되고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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