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5년만에 '서울신문'으로 컴백

3일 임시주총서 의결... 노조 "겸허히 수용하되 감시 고삐 죌 것"

등록 2003.12.03 17:16수정 2003.12.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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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 사옥 전경
대한매일 사옥 전경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한매일>이 과거 <서울신문>으로 되돌아간다. 지난 98년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꾼지 불과 5년만이다.

대한매일은 3일 오전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2004년 1월 1일부터 <서울신문(THE SEOUL SHINMUN)>으로 제호를 바꾸는 한편, 회사 이름도 '서울신문사'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인터넷 대표 주소 역시 www.seoul.co.kr로 바뀌게 된다. 새로운 서울신문은 이전 대한매일신보의 지령과 창간 기념일(7월 18일)을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대한매일은 이로써 5년만에 두 번이나 제호를 변경하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기게 됐다.

채수삼 사장은 이날 주총 인사말에서 "신문 인지도를 높이고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기 위해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채 사장은 이어 "앞으로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의 정체성을 계승하면서 지면쇄신과 차별화 등을 꾀해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경형 제호변경준비위원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정신이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꿔 옛 서울신문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냈다"고 평했다. 이 위원장은 또 "이제는 친근감 있으면서 현대적이고 전통을 내포한, 세계화 시대에 한국을 상징하는 수도 이름인 '서울'이라는 제호를 다시 채택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98년 당시 서울신문은 '서울신문사 뿌리되찾기 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제호 변경 작업을 벌였다. 당시 서울신문은 "서울신문 제호가 가진 '권력의 나팔수'라는 이미지 때문에 독자 확보에 애로가 크다"며 "일제에 항거했던 <대한매일신보>가 서울신문의 뿌리가 됐던 점을 감안했다"고 배경을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8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차일석 서울신문 사장을 비롯해 윤흥렬 전무, 김삼웅 주필과 가진 만찬에서 제호변경을 권유한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첫번째 제호변경 과정에서 실시된 사내 설문조사 결과, 74%의 구성원들이 반대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당시 반대론자들은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대한매일'은 과거회귀적인 제호"라고 비판했다.


노조 등 "제호 변경, 본질적인 혁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제호변경 역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노조를 비롯해 일부 구성원, 특히 <대한매일> 제호 시절 입사한 젊은 사원들은 "관제언론을 상징하는 서울신문의 부활이 지금 시기에 바람직한 것인가"라고 비판을 제기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한매일지부(위원장 임병선) 집행위원회는 "제호변경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방법론이 될 수 없다"며 줄곧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다. 근본적인 혁신이 선행되거나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달라질 게 없다는 판단이다.

대한매일지부는 지난달 26일자 노보를 통해 내부의 단면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노조는 11월 17∼18일 실시된 사주조합원 투표에서 제호변경 찬성비율이 72.7%에 이른 것에 대해 "절망감과 혼돈스러움을 느껴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노조는 "변화에 대한 사원들의 욕구가 집중된 것"으로 투표결과를 분석했다. 채 사장과 새 경영진을 믿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느냐는 정서가 높은 찬성률로 연결됐다는 해석이다.

노조는 "사원 다수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며 "제호변경 투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되 견제와 감시의 고삐는 더욱 죌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사원주주들의 뜻을 따르는 것과 별개로 제호변경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이다.

또 "이번 투표결과가 경영진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할 필요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고 강조한 노조는 "자칫 경영진이 사원들 지지를 핑계로 대세를 장악했다고 오판하고 '예스맨'들로 공조직을 채우고 지면을 사유화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경영진에 아첨해 자신의 안위나 입지를 도모하는 중간 간부부터 격리시키겠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박록삼 대한매일지부 노조 공보위 간사는 지난달 26일자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을 통해 "대한매일로 이름을 바꿀 때는 '부끄러운 과거를 벗고 민족정론지의 뿌리를 찾는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라며 "대한매일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대의명분을 창조하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매일, '영광과 상처' 100년사
5년만에 제호 두번 변경

<대한매일신보>는 대한제국 말인 1903년 양기탁-베델에 의해 민족지로 창간됐다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 문을 닫았다. 이후 1909년 일제 통감부가 <대한매일신보>를 인수, <매일신보>로 제호를 바꿔 재발행했다. 조선 총독부는 일어판 기관지 <경성일보>에 <매일신보>를 통합했고, <매일신보>는 결국 한국어 기관지로 전락한 것이다.

1945년 해방 뒤 한동안은 사원자치위원회가 운영하다가 같은 해 10월 10일 미군정 당국으로부터 정간 처분을 당했다. 이 정간과 함께 <매일신보>라는 제호는 없어지게 됐다. 이후 정부가 매일신보의 건물과 시설, 인력 등을 인수해 <서울신문>으로 바꾸고 11월 23일자부터 속간했다.

초대 임원진은 사장 오세창, 주필 이관구, 편집국장 홍기문 등이었다. 1949년 동해주 반공사건의 기사 시비로 5월 3일 발행정지처분을 당했다가 6월 20일 속간하면서 공보처 지시·감독을 받게 되었다. 1959년 3월 23일부터 <매일신보>로부터 계승해 온 지령을 버리고 <서울신문> 창간 이후부터 지령으로 다시 환산해 새 지령을 썼다.

1950년대에는 정부의 기관지로써 자유당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다가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시위대가 사옥과 시설을 불태워버려 일시 정간하기도 했다. 재정난으로 1961년 5월 9일 휴간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인 12월 22일에 다시 속간했다.

<서울신문>은 70~80년대를 거치면서 대표적인 관제언론으로 자리잡았으며 '권력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이후 89년 노조가 26일간 장기파업을 통해 민영화 단초를 단체협약에 반영한지 12년만인 2002년 1월 15일 사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민영화를 이뤘다.

현재 <대한매일>의 최대 주주는 우리사주조합(39%)이고 다음으로 재정경제부(30.49%), 포스코(22.4%), KBS(8.08%) 등이다. <대한매일>은 사원들의 손으로 사장을 직접 뽑을 수 있는 사원주주 회사이다. <대한매일>은 또 노사 합의로 2000년 10월 18일부터 편집국장 직선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치러진 2기 직선 편집국장 선거과정에서 한 후보가 서울신문으로 제호 환원을 공약한 데 이어, 현재 김영만 편집국장이 취임 직후 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자 제호 복귀 문제가 재부상했다.

또 사원 투표로 지난 7월 선임된 채수삼 사장이 10월 '제호변경을 통해 회사 생존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공표하면서 제호 복귀 절차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대한매일에서는 △대한매일의 낮은 인지도 △발음의 어려움 △네글자 제호의 불편함 등과 더불어 △서울신문이 서울을 대표하는 '밝고 따뜻한 이미지'라는 점 등이 변경사유로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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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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