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연구회 서길수 회장. 그는 북한지역의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데 남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오마이뉴스 김태경
최근 중국정부가 우리 고대사 가운데 한 부분인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음이 알려져 한중 양국의 고대사학계가 벌집 쑤셔놓은 듯한 형국이다. 이 문제는 자칫 양국간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5개년 계획을 수립, 본격 역사왜곡 작업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 동북지방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항상 중국 왕조와 조공관계를 맺고 있었다며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더 나아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구려를 계승한 것으로 알고있는 발해도 중국의 지방정권이며 고조선 역시 중국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라고 강변하고 있다.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한민족의 역사는 약 2000년으로 줄어들게 되며, 활동공간도 한강 이남으로 축소된다.
더구나 올해 7월 북한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던 평양지역 고구려 고분군 63기가 중국의 방해로 등록이 좌절됐다. 중국은 거꾸로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집안(集安)과 환인(桓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한 상태다.
<오마이뉴스>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중국 집안(集安)지역 일대를 둘러보고 온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회장(서경대 교수)을 만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서 회장은 "고구려 역사를 잃으면 고조선사와 발해사도 잃게 된다"며 "북한이 지금 6자회담 등으로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어려운 형편인 만큼 북한이 신청한 평양 인근의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에 남한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이어 "원래 금년초까지만 해도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등록은 쉽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됐다"며 "지난 7월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중국의 방해 등으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의 대응자세에 대해 서 회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년 7월 재심의를 목표로 북한과 중국측이 제출한 신청내용이 무엇인지 한국정부는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북한이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남한정부마저 중국과의 외교마찰을 이유로 나서지 않는다면 내년에 북한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이 간단치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한국 외교통상부의 입장은 한·중사이에 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있었으면 하는 것 같다. 23일 북한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신청과 관련해 세미나를 하면서 외교통상부에도 연락했는데 전화 한 통화 없었다"며 "한국 외교관들이 조용조용 중국과 외교적으로 말썽없이 타협하려는 자세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서 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 | 서길수 교수는 누구? | | | | 서경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경제사학을 전공한 서 회장은 지난 1994년 6월 고구려연구회를 설립, 고구려 연구와 관련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고구려연구회는 95년부터 이제가지 8번에 걸쳐 고구려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26번이나 국내 정기학술대회를 열었다.
특히 서 회장은 지난 1986년 처음 중국을 방문한 뒤 고구려사에 매료되어 그동안 고구려 역사와 관련된 1만여장의 슬라이드 필름, 50시간분의 동영상 필름을 확보할 정도로 '발로 뛰는' 고구려 연구를 해왔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한 5년 시간이 있다면 동아시아사를 다시 쓰고싶다"고 덧붙였다. '중국사=동양사'라는 중국중심적 역사인식 구도를 깨지않으면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포함되느냐 아니냐'라는 식으로 자꾸 '귀속문제'로 환원시키는 중국의 의도에 말린다는 것이다. / 김태경 기자 | | | | |
- 최근에 중국에 갔다온 것으로 알고 있다.
"11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갔다왔다. 최근 집안의 모습을 다시한번 살펴보고, 중국 정부가 나를 입국시켜줄 것인가를 알아보려는 목적도 있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물일 경우 입국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편집자주)
-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라고 주장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나.
"1980년 이전까지는 중국의 모든 역사책이 고구려를 한국사라고 했다. 진위푸나 리원신 같은 중국 학자들이 고구려사를 중국사라고 주장하는 정도였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과 중국이 고구려 유적을 공동발굴해 북한이 유물을 가져왔을 정도였다."
- 그런데 중국의 태도가 왜 바뀌었나.
"1970년 북한이 <조선전사>를 발간했다. 그런데 이 책이 주체사상에 맞춰 철저하게 대외투쟁을 강조하면서 '만주는 우리땅' 식의 내용이 들어갔다. 여기에 1980년부터 중국이 개혁개방을 한 뒤 학자들이 자유롭게 학문을 하면서 중국 동북지방 학자들사이에 고구려 연구가 시작됐다. 1985년까지만 해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는데 1993년부터 중국인 고구려 연구자가 갑자기 많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 중국의 고구려 연구가 본격화된 때는 1990년대란 말인가.
"1993년 북한도 참가한 제1회 고구려 국제학술대회가 중국 집안에서 열렸다. 이때 중국 학자인 쑨진지(孫進己)가 '고구려사는 중국사'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이에대해 북한의 역사학자인 박시형 선생이 '국경이 바뀌었다고 역사가 바뀌냐'고 반박했고…. 이 대회가 끝난 뒤 이른바 '애국적' 중국인들이 고구려사를 급격하게 연구하기 시작했고 연구성과가 봇물터지듯이 나왔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동북공정은 2002년 2월부터 시작됐다. 지난 2001년 북한이 평양 인근의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했다. 2001년 말 중국 문화부 부부장이 중국에도 고구려 문화재가 있으니 같이 신청하자고 했으나 북한이 거절했다. 이렇게 거절당하자마자 중국은 2002년 2월부터 동북공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재중동포(조선족)에게 '삼관(三觀)교육'을 시작했다. 삼관이란 조국관·민족관·역사관을 말한다. '조선족은 중국민족이다, 조선족 역사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다'라고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재중동포들의 반발이 심해서 요즘은 주춤한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안 소수민족이 55개인데 이른바 삼관교육을 받은 민족은 재중동포가 유일했다. 삼관교육이 동북공정하고 맞물려 돌아가는 것도 문제였다."
- 중국이 이렇게 하는 의도는?
"남북 통일에 대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재중동포들이 앞으로 만주땅을 회복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니 이를 막자는 것으로 보기도한다.
중국은 일단 남북통일 뒤를 우려한다. 지금도 '만주는 우리땅'이라는 소리가 나오는데 통일 뒤는 더할 것이다. 특히 주한 미군이 남북 통일뒤에도 주둔할 경우 미국이 이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중국으로서는 아주 부담된다."
- 중국 중앙정부 차원에서 동북공정을 진행하는데….
"중국은 지난해부터 집안과 환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준비를 했다. 북한이 신청한 평양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확정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고구려사의 이른바 '귀속문제'는 동북지방의 문제였는데, 동북공정을 시작하면서 중국 중앙정치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중국은 집안과 환인을 세계문화유산으로 금년 2월에 신청해 9월달에 심사를 받았다.
중국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www.chinaborderland.com)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가장 큰 사업이 동북공정이다."
▲이전과는 달리 유리막을 쳐 외부와 차단된 광개토왕비.서길수
- 중국이 신청한 집안과 환인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
"세계유산위원회(WHC) 회의가 내년 6월에 중국 쑤저우에서 열려 이 문제를 확정한다. 현재로서는 등록되는 것이 거의 확실해보인다. 회의 자체가 중국에서 열리는데다 참가국이 21개국에 불과해 이 정도면 중국 외교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것이다."
- 그럼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가정할 수 있다. 북한이 먼저 신청했으니 북한만 되는 경우, 중국만 되는 경우, 북한과 중국 다 되는 경우, 두 곳다 안되는 경우 등이다. 그러나 북한만 되는 경우는 없을 것 같다. 만약에 중국이 신청한 것만 등록된다면 온 세계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알게될 것이다. 이런 인식을 깨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다."
-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외교통상부가 열심히 해야한다. 유네스코에 외교통상부 실무자가 파견되어 있다. 이 파견관이 할일이 많다. 북한과 접촉하는 것도 이 사람이 해야한다. 그런데 한국 외교통상부의 입장은 한·중사이에 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23일 북한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신청과 관련해 세미나를 하는데 외교통상부에도 연락했는데 전화 한 통화 없다.
조용조용 중국과 외교적으로 말썽없이 타협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옛날 고려 때 서희 장군이 소손녕과 영토싸움 하는 정도의 상황이 벌어졌는데, 한국 외교관들이 말썽없이 지내기만 바라는 것은 잘못됐다."
| | 북한 고구려 고분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왜 좌절됐나 | | | | 북한이 신청했던 평양 인근 고구려 고분 63기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은 올해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WHC) 제27차 총회에서 무난한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7월 3일 세계유산위원회는 북한 지역의 고구려 고분 등재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문제는 내년 7월 중국 쑤저우에서 열리는 WHC 제28차 총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이 때는 중국이 신청한 중국 환인과 집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문제와 함께 논의된다.
원래 북한 고구려 고분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신청은 히라야마 이쿠오 일본 유네스코 친선대사 등 일본 인사들이 중심이되어 추진해왔다. 유네스코 조사단은 지난 2001년 등록 후보인 평양지역의 진파리고분군(1∼9호), 솔매동고분군(11∼15호), 강서 고분군, 쌍영총 등을 현장 방문해 영문 보고서를 내고 벽화가 '완벽하다'고 평가를 내렸다. 이 고분군들은 동아시아인들의 생사관의 변화를 보여주고, 서기 3∼7세기 인류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설명하는 탁월한 예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올 7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를 얼마 앞두고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북한 벽화고분의 보존상태가 좋지않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는 이코모스 소속 중국인 학자가 작성했다.
이코모스의 보고서는 △만주지역의 비슷한 고구려 분묘와의 비교연구가 있어야하고 △고분의 원형이 훼손되어 진정성 평가가 필요하며 △고분이 공개되지 않아 추가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었다. 또 중국과의 공동등록을 권유했다.
북한 고분들의 세계문화유산등록이 좌절되자 당시 한국 문화재청 관계자는 "각국 대표들이 벽화고분의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했으나 실사보고서의 부정적 평가와 만주 쪽 고구려 벽화고분의 동시 등재를 주장하는 중국의 견제가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 | | | |
-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한마디로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되면 평양도 중국 것이 되고, 을지문덕 장군도 중국사람이 된다. 고조선사와 발해사까지 중국으로 넘어간다. 중국은 하나라와 은나라의 연대를 확정하기 위해 200명의 인력을 동원해 국가적 사업까지 벌였는데 한국은 그런 감각조차 없다."
- 동북공정이 구체적으로 진행된 사항을 말해달라.
"공사를 하는 동안 이전과는 다르게 현역군인들이 경비를 섰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검문소에서도 현역 군인들이 삼엄하게 경비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이유를 '유랑민들이 와서 고구려 유적을 폭파할 수 있으니까 군인들이 지켜야 한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유랑민은 아마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