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권우성
피고측 변호를 맡은 서 변호사는 변론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비자금 조성에 협조할 수밖에 없는 기업 처지'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2002년 7월에 제출된 '피고측인 삼성그룹의 뇌물제공과 관련한 준비서면'을 통해 그는, "피고 이건희로서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선택을 한 것이고, 국가 최고 통수권자가 대부분의 대기업에 뇌물을 요구하여 요구받은 모든 기업이 뇌물을 공여하는 상황에서 이를 회피할 기대 가능성도 없었다"라고 강변했다.
그는 또 "만약 그때 삼성그룹만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뇌물 요구에 응하지 아니하였다면 삼성그룹은 살아남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 결과 사상 초유의 수익을 거두는 현재의 삼성전자는 존재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2년 같은 해에 그는,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의 비자금 요구에 시달리는 '기업의 고충'을 호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 '기업의 고충'을 악용하여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기업들로부터 뜯어낸 것이다.
"삼성측의 비자금 상납은 강요에 의한 행위"라고 항변하는 그는 동시에 '기업으로 보면 뇌물은 투자다'라는 논리를 펴며 정경유착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위 준비서면에서 그는 "뇌물이란 성질상 공무원의 직무에 관하여 그 뇌물 가액 이상의 유리한 처분 등 대가를 얻기 위하여 제공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회사에서 제공된 금원 자체가 손해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2002 대선에서 비자금을 상납한 기업들은 비자금이라는 '투자액'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질 것을 기대할 수 있으며, 이는 기업 입장에서 손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가진 그가 '삼성그룹 계열사의 임원'이자 '당선 유력한 대선 후보의 자금책'으로서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정경유착을 주도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서정우 변호사, 경우에 따라 배임죄 적용 가능
그렇다면 서정우 변호사에게는 어떠한 법적 처벌이 가능할 것인가.
송호창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는 다음과 같은 법적 소견을 내놨다.
"현재까지 정치자금법 위반 죄 적용은 거의 확정적이다. 또한, 삼성 쪽에서는 152억 원의 비자금이 이건희 회장 개인의 돈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계열사에서 자금이 동원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삼성계열사들로부터 자금이 동원되었고 삼성중공업의 돈도 여기에 포함되었다면, 이사로서 회사 돈을 유용한 셈이니 특경가법상 '배임죄'와 '횡령죄'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삼성중공업의 돈은 포함되지 않았다 해도, 다른 계열사의 비자금 조성을 안팎에서 조장하고 협박까지 했다면 '배임교사죄'가 성립될 수 있다."
앞으로 구체적인 사실들이 밝혀짐에 따라 서 변호사에게 적용될 죄도 확정되겠지만, 적어도 고등법원 부장판사까지 지냈으며 대기업의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던 그의 불법 비자금 조성 행위는 '도덕불감증'을 넘어 '범죄불감증'으로 비난받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